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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Dec 23. 2022

시간이 지날 수록 빛나는

The 8th 백. 백. 백일잔치 × 밴드부 <알츠>

  선생님, 저희들 지금 출발합니다.


 제자들이 온다 한다. 2012년 중2 때 밴드부 지도교사로 아이들을 만나고 올해로  11년째이다. 다 큰 제자들을 만난다는 건 언제라도 기쁜 일이다. 내가 굳이 뭘 가르치지 않아도 되고 부담이 없이 술 한잔 혹은 차 한잔 하면서 세상 사는 이야기를 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으니 오히려 더 좋다. 20대 중반에 들어선 아이들은 이제 하나둘씩 직장을 잡고  생업 전선에서 애쓰고 있다. 힘든 시기인 걸 알고 있기에 조촐하게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며 연말파티하자고 말해 둔 터였다.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 둘씩 쏙쏙 도착한다. 한 손에 선물은 하나씩 들고.

100일 파티 기념케이크


 먼저 도착한 *환이가 "선생님 이것 보세요"하며 커다란 쇼핑백을 펼친다. 아주 근사한 케이크가 나온다. "와~멋지다!"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직접 디자인해서 만든 케이크이라고. 이걸 만드느라고 서로 상의하고 준비했을 정성을 생각하니 더욱 감동적이다. 게다가 문구가 아주 굿이다.


Shining Tuesdays


 정말 이쁘다고 고맙다고 말을 전하고 얼른 저녁준비를 한다. 별다른 것도 없지만 얼렁뚱땅 준비하고 차려놓으니 다행히도 한상 가득이다.


청춘의 빛 그리고 그늘


기타 치던 *환이

게눈 감추듯이 저녁을 먹고 케이크와 따뜻한 차를 따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해부터 버거집을 개업하고 운영하는 *환이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니 장사도 잘되고 돈도 잘 버는데 생각보다 신경 쓸 게 너무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힘들 때가 많다고. 서비스 업종에 치솟는 물가에 노동력을 갈아 넣어 장사를 하고 있으니 그 어려움을 내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안타까운 마음에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위로의 말이라도 얼른 건넨다.



드럼을 치던 *찬이는 얼마 전부터 정육점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전 아침에 졸음운전을 하다가 큰 일 날뻔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다 보니 피로가 쌓여 졸음운전을 하게 되었나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베이스를 치던 *는 요즘 형이랑 차를 몰며 택배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겨울이라 날씨도 춥고 길도 미끄러운데 조심하라며 걱정의 말을 건네는데

"선생님, 저희 형 신문에 나왔어요." 한다.

http://www.jeonmae.co.kr/news/articleView.html?idxno=925628

 "오~진짜네. 진짜 훌륭하다." 기사를 확인하고 놀라서 말한다. *서의 형 *우도 내가 가르치고 담임을 했던 아이다. 그런데 벌써 이렇게 커서 훌륭한 일을 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쓰러진 사람을 봤다고 모두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을 텐데 용기 있게 사람을 구한 그의 대담함이 멋지다.


피아노를 치던 *우는 지금 열심히 공부 중이라고. 간호사가 되기 위해 성실히 대학을 다니*우는 지금 병원에 일자리를 구해놓고 1월에 있을 국가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절대음감으로 어떤 곡이든 멋지게 연주하던 그의 손가락이 아픈 환자들을 위해 쓰인다 하 "피아노와 간호사" 왠지 잘 어울린다. 음악을 연주하듯 환자들도 부드럽고 섬세하게 잘 대할 것 같은 강한 믿음이 다.


기타를 치던 *준이는 경찰관 시험에 합격하고 훈련을 마친 뒤 곧 출근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 년 이라는 짧은 시간에 공부를 하고 시험에도 최고 성적으로 합격한 우리 밴드부의 브레인 중의 브레인이다. 절대 긍정의 마인드로 모든 친구들과 두루 잘 지내는 *준이는 아마 어떤 범죄자도 편견 없이 잘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알파벹오타 찾아보세요~ㅋ


보컬 *환이는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영국서 마케팅공부를 하다가 잠깐 들어온 *환이는 문화콘텐츠사업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그는 또한 음악에 대한 열정과 넘치는 끼를 수년동안 갈고닦아 음악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는 현직 뮤지션이자 유학생이다. 혼자서 영국학교를 알아보고 현지숙소며 비용준비를 스스로 다 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대견하기만 하다. 영국현지에서 느낀 불황 그리고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며 외국생활의 자세한 일화도 전해주니 상상하며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음악이 한 잔의 휴식으로 남을 수 있다면

 질풍노도의 시기에 아이들을 처음 만나 20대 중반까지 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는 건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지하연습실

지금은 한 명 빼고 모두 생업전선에서 일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음악으로 만나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을 즐기며 쌓았던 기억들은 우리에게 아스라이 먼 달달한 초콜릿 같은 추억처럼 남아있다. 학교 지하연습실에서 늦은 밤까지 연습하고 초코파이를 나눠먹던 일, 시대회에서 수상하고 도대회까지 올라가 은상 거머쥐었던 가슴 떨리던 순간을 떠올리면 달콤하다. 우연히 길을 걷다 듣는 음악에, 라디오에서 지나치며 들은 노래에도 모두 똑같이 같은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행운이며 축복이다.

도대회출전한 아이들


사는 게 어렵고 돈 버는 게 고달픈 날 것 그대로의 세상에 뛰어든 아이들, 제대로 된 세상지식이나 마음의 준비도 없이 서슬 퍼런 노동시장에서 그들이 겪었을 힘든 순간을 내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중요한 건 한 명도 빠짐없이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 무기력하게 포기하고 앉아서 관망하고 고민만 하지 않고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아이들이 정말 대견하다.


다만 어느 날 맞이하게 될지도 모를 고단한 하루 끝에, 어쩌다 마주칠 현실의 차가운 한숨 끄트머리에 가슴 뛰게 즐거웠던 순간이 있음을 기억해 주길, 그리고 따끈한 차 한잔에 부드러운 노래 한 곡으로 쉬어가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샘의 브런치 구독자가 천명이되면 공연 한번 하자며 호기어린 제안도 던진다. 음악이 길게 뻗어내 주는 휴식의 여운을 절대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먹고사는 일 때문에 너무 많이 다치고 지치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도 담아 한 명 한 명 꼭 안아주며 보낸다. 


늘 빛나는 알츠가 되길~
Shining Al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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