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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Dec 22. 2022

어쩌다 마주친 호주

The 7th 백. 백. 백일잔치 × 호주에서 만난 여인

언니, 나 근데 질문 있어.
언닌 자기 개발서 안 읽는댔잖아.
왜 그런 거야?


그녀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하곤 한다. 살면서 생기는 궁금증을 그냥 쉬이 허투루 넘기질 않는다. 아이처럼 순수한 호기심이 살아있고 당당하게 묻고 답을 찾아가는 그런 그녀의 당찬 모습을 난 좋아한다.


그녀를 만난 건 2004년 겨울, 호주에 봉사활동을 갔을 때이다. 막 교사임용에 합격하고 하나씩 하고 싶었던 것을 도장 깨듯 해나가던 시절이었다. 그중 하나 해외여행 아니 해외경험을 하는 것. 단순히 여행만 하는 것아니고 여행지에 사는 사람처럼 직접 살아보고 경험을 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영어실력까지 덤으로 늘리고 싶다는 큰 꿈을 갖고 호주에 다.


근데 이게 웬일~~?? 벤디고라는 작은 도시, 봉사자들의 숙소에 도착해보니 한국인들만 약 10명, 외국인리더가 2명이었다. 게다가 내가 제일 나이가 많고 ㅜㅜ.


그래도 나는 재밌게 지냈다. 그곳에서의 봉사활동은 아주 단순한 환경보호활동이 주요한 일이었다. 주로 산이나 숲에서 쓰레기를 줍거나 울타리보수 작업 등을 했다. 그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겪고 얻었다. 

 

우리가 꼭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선입견

그곳에서 만난 10명의 한국인은 다들 개성이 대단했다. 그중 한 명은 대학교1학년에 영어를 진짜 못하는 초급단계 수준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사람은 자신감만은 만렙이라 "아니, 왜 우리가 꼭 영어를 배워야 하지? 쟤네들이 한국말을 하면 되잖아."라는 식의 태도로 밤마다 호주친구들을 앉여놓고 한국어를 가르쳤다. 술 한잔 마시며 "건배"를 가르치고 밥 한 번 먹으며 "맛있다."를 가르치고 근데 한 달 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한국어를 배운 호주인의 한국어 실력보다 한국어를 가르친 한국친구의 영어실력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다. 이때 깨달았다. 진짜 실력은 자신감에서 나온다는 걸. 그 친구의 패기를 보며 나는 머리에 띵~하고 한 대 맞은 것 같은 사고의 전환을 했다. 늘 약자인 것처럼 영어를 못하는 나 자신을 자책하기보다는 "난 어차피 외국인인데 영어 좀 못할 수도 있지. 그런데 외국인들은 왜 우리나라에 여행 오면서도 한국어를 안 배우지? 그건 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영어에 대한 사대정신이 나에게도 잠재되어있음을 깨달은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XL들의 천국, 백화점에도 큰 사이즈가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키도 크고 덩치도 컸다. 특히나 작고 야리야리한 고전적인 여인상이 미의 기준으로 추앙받던 시절에는 나의 독특한 외모가 상당히 이물스럽고 부담이 됐다. 백화점에 가도 사이즈부터 체크하고 옷을 고르고 작은 옷들만 앙증맞게 마네킹에 입혀진 매대는 내 세상이 아닌 듯 범접하지도 않았다. 44~66 사이즈 여자들만 존재하는 것처럼 옷을 만드는 세상에 적잖이 분노가 쌓여가고 있었다.

그런데 호주에 오니 왠욜~~ 드레스도 XL가 수두룩하다. XL 뿐 아니나 XL앞에 숫자가 무한대로 한없이 올라가며 적혀 있었다. 천국을 만난 기분이었다. 게다가 직원들이 돌아다니며 이것 어때요? 저것 어때요? 묻지도 않고 내 맘대로 옷을 골라 널찍한 피팅룸에 들어가 하루종일 옷을 입고 고르고 하며 한국에서는 누릴 수 없는 큰 호사를 누렸다. 굳이 옷을 사지 않더라도 공주처럼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으며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한달 호주여행 후에 남은 건

2004년 호주여행을 하고 나에게 남은 건 그때 찍은 사진도 그때 산 드레스도 아니다. 자유롭게 산이며 바다며 같이 여행하던 친구였다. 나이를 초월한 친구, 그녀는 지금도 뭔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나에게 전화를 걸곤 한다. 아이를 같이 키우는 엄마로, 맞벌이하는 아내로, 대한민국의 평범한 며느리로 사는 것에 대한 궁금증과 비합리성을 맞닥뜨리면 전화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토론하듯 이야기한다. 그래도 안되면 만나서 열띤 대화를 하고. 이렇게 치열하게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며 사는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그냥 주어진 데로 살면 되는데 우린 왜 작은 것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며 사는 거지? 괜한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그녀와 나

나의 백. 백. 백일잔치에 소환되어 온 그녀. 그날도 이런저런 궁금증에 짧지만 굵은 값진 시간을 보냈다. 각각 경기도의 남쪽, 북쪽에 떨어져 사는 물리적 거리에도 우린 만나면 늘 예전 호주 해변가에서 닭뼈로 샐러드 퍼먹을 때처럼 여전히 진지하다. 일하며 살림하는 엄마에 대한 너무 많은 기대에 분노하고, 천편일률적인 대한민국 교육시스템에 분노하고 변하지 않는 후진국형 정치에 대해서도 분노하고 20대 청춘처럼 팔딱이며 각성된 상태로 답도 없는 고민들을 몇 시간이고 하고 또 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런 고민을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그녀가 있다는 것. 호주 벤디고가 아닌 서울 한복판에서 해남서 공수해온 재래김을 한 보따리 챙겨 오는 그녀가 있기에 난 외롭지 않다. 오늘도 난 그녀가 추천해준 유일무이한 명의가 있는 병원서 편히 치료를 받고 있다. 도대체 우린 호주 벤디고에서 무엇을 나누고 온 것일까. 그 끈끈한 힘에 다시금 편안함을 느끼며 달큰 빠삭한 재래김을 한입 부셔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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