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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Feb 05. 2023

[협재]하나만 투어: 잔잔한 바다가 돌아왔다.

(삼인삼색 삼남매와 함께하는) 삼삼한 제주여행기 3탄


포기했다.


오늘은 협재의 마지막 날, 꽉 찬 일정으로 보고 싶은 것을 다 보려고 대절택시를 예약했다가 결국 취소했다. 갑작스러운 피로감에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오고 몸이 천근만근 힘들어져서 욕심을 버렸다. 간소한 일정으로 다시 조정한다.


따로 또 같이 3+1 투어


엄마 : 애들아, 미술관 갈래?

애들 : 아니. 싫은데요.

엄마 : 그럼 막내랑 화조원(체험형 동물원) 갈래?

애들 : 네~

엄마 : 그럼 엄마는 미술관, 너희들은 화조원 가는 건 어때?

애들 : (조금 고민하더니)응. 좋아요.

엄마 : 엄마가 택시 불러줄 테니 다녀와. 각자 용돈은 만원이다. 12시에 우동집에서 보자. 11시 30분에 돌아오는 택시 보낼게. 타고 와.

애들 : 네~


 예전에는 미술관을 억지로 데리고 다녔다. 가서 뭐라도 보고 느낄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아이들은 지루해했고 10분 만에 휙 둘러보고 나와서 언제 가냐고 졸라대곤 했다. 나도 불평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느라 집중도 못하고 기다리는 아이들이 신경 쓰여 대충 보고 급하게 나오곤 했다. 이번엔 미련 없이 깔끔하게 각자 보고 싶은 걸 보기로 했다. 결과는 성공! 아이들도 나도 나름의 시간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따스한 작별인사를 해 준 협재바다.


 소문난 우동집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각자 즐거운 경험을 하고 다시 만났다. 막내는 상기된 표정으로 앵무새, 알파카, 토끼, 독수리 등  동물들을 본 경험을 만나자마자 속사포처럼 이야기하느라 숨이 차 보인다.


아침에 예약대기를 하고 간 맛집이라고 소문난 우동집. 아니 근데 우동집이 이렇게 근사할 줄이야. 통창에 협재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동집이 이리 멋질 일인가. 음식을 기다리는 내내 예전처럼 잔잔해진 협재바다를 원 없이 감상한다.

수우동 통창으로 들어온 협재바다
아이들도 즐거운 따스한 겨울바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나와 협재바다를 맞으러 얼른 나간다. 잔잔해진 파도가 어제와 사뭇 다르다. 낮게 일렁이는 파도는 아이들 마음까지 사로잡아 버렸을까. 아이들은 한 동안 바다에서 즐겁게 논다.


각목으로 때리려는 거 아님 주의, 동생이름 써주는 세상 다정한 오빠


느리게 걸으며 발도 담가보고 나뭇가지로 이름도 써가며 나름대로 겨울바다를 즐긴다. 내일이면 우리가 떠나는 걸 알았는지 협재바다가 이렇게 순한 맛으로 다정하게 작별인사를 해줄 줄이야. 살짝 감동했다. 게다가 오늘은 아이들도 순하게 잘 따라준다. 무리한 일정도 하지 않고 억지로 미술관을 끌고 가지 않은 게 신의 한 수였나 보다. 조금 더 바다가 보고 싶어 진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카페를 찾아가 자리를 잡는다.


에머랄드빛 지붕위로 에머랄드빛 바다가 보인다.
동물원에서 입양한 앵무새 한마리로 행복한 막내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그대로 둔다. 지금까지 여행이 어땠냐고 물으니 큰 딸은 고민 없이 좋다고 말한다. 장난기 가득한 아들은 배고프고 힘들었다며 죽는소리를 하고 막내는 엄지 척! 이 정도 반응이면 10점 만점에 8, 9점 정도는 되는 셈이다.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각자의 스타일로 실컷 쉬고 난 뒤, 마지막 일정을 하러 간다.


한림민속5일장

오늘은 한림민속5일장이 는 날이다. 작고 소박한 시장이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미리 준 용돈으로 무엇을 살까 고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다. 여유로운 일정이라 아이들을 재촉할 필요가 없어  좋다. 각자 저녁으로 먹고 싶은 것을 한 가지씩 사서 두 손 가득 들고 낑낑대며 돌아온다.  



같은 것도 다르게 보는 비밀


같은 바다지만 네모의 틀을 어느 방향에 두고 보느냐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다르다. 같은 아이들이지만 그제는 고기를 뜯는 모습이 밉고 어제는 귀엽다. 아이는 그대로인데 그 모습을 보는 엄마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한 건 아닌지 뒤늦은 반성을 해본다. 아이들 뿐일까.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게 하고,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고, 아직 뭐가 좋은지 이해가 안 되는 지루한 것들을 강요하고 하자고 하면 좋을 사람이 어딨을까. 워낙 불안한 시기이기도 하고 삐딱하게 세상을 보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특별한 를 편안하고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는 내 맘의 여유를 찾는 게 먼저였던 게 아니었나 생각한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협재바다 풍경을 마음에 담고 떠난다. 그리고 지나치며 만난 제주사람들의 따뜻한 친절함도 기억한다. 뚜벅이에 식솔이 많아 택시기사님들의 친절이 특히나 잊히질 않는다. 하루종일 원하는 행선지에 정확하고 안전하게 그리고 아이들 맞춤형 설명까지 더해주신 젠틀한 대절택시 전*민 기사님. 미술관 가는 길에 우동집예약하러 잠깐 들러도 친절히 응대해 준 기사님, 이 기사님은 오는 길에 또 뵙게 되어서 더욱 반가웠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은근한 인정을 전해주며 말을 걸고 도움을 요청드리면 금방 무장해제되어 인정넘치는 모습으로 여행의 또다른 재미를 더해주시곤 한다.


한층 친근해진 사춘기 여행 친구들, 엄마가 좋아하는 최애 스팟을 알아서 먼저 자리 잡아주는 큰 딸, 세상 시크하고 표현은 안 하지만 엄마가 없으면 동생들을 살뜰히 챙긴다. 겉으론 툴툴대고 엄마 놀리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 둘째는 늘 엄마만 보는 엄마바라기다. 진짜 엄마가 힘들 때는 제일 먼저 도움을 요청하게 되는 엄마의 빅히어로. 엄마를 좋아해서 바라는 게 더 많다는 걸 알면서도 그 욕구를 충분히 다 채워주기엔 늘 모자란 엄마다. 귀염둥이 막내는 그저 여행의 모든 순간을 신나게 즐겨준 내 삶의 비타민이다. "엄마, 너무 재밌어. 오늘이 최고의 날이야. 진짜 최고야!"를 연발하니 안 이뻐할 수가 없다.


협재의 마지막 저녁, 내일 아침 일찍 공항에 가야하니 일찍자라고 했음에도 아이 셋은 한 침대에 누워 뭐가 재밌는지 깔깔대며 노느라 신이 났다. 아이들도 떠나는게 아쉬워서 일까. 한층 친해진 모습이 보기좋고 이쁘다. 낯선 곳에서 보면 늘 같이 사는 사람도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위기의 순간에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새롭게 보이는 사람이 있고,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즐겁게 대처하고 어떤 이는 반대로 불평하고 다른 사람 탓을 하기도 한다. 우리 가족은 이번 여행에서 어떻게 서로를 다르게 보게 되었을까. 한 동안 침대서 놀다 조용해진 삼 남매가 어제보다 더욱 끈끈해짐을 느낀다. 나 또한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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