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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Aug 12. 2023

[부산]하나만 투어(1)

엄마셋 가출사건

엄마: 7월에 함께 가고 싶은 일정이나
휴가지 있나요?

모두: (조용)...

엄마:  다들 별다른 의견 없나요?
그럼 저는 부산으로 2박 3일 휴가
다녀올게요.


 가족 카톡방에 한 달에 한번 정도 일정을 공유하고 함께 할 가족행사스케줄을 정한다. 한데 이번 여름은 다들 방학일정도 다르고 개학도 다른 데다가 나는 7월 마지막주에 복직이니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뭔가를 함께 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래도 부랴부랴 가족일정을 잡아보려고 물었는데 다들 시큰둥이다. 게다가 중요한 건 나 빼고 어딜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 그래서 과감히 엄마 휴가를 외쳤다.  


그리고 부산에 왔다.

흐린 하늘과 해운대


올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는 부산. 서울은 사상초유의 무더위로 고생이지만 이곳 부산은 7월 중순이 지났는데도 바닷바람도 불고 조금 흐리긴 하지만 상쾌한 느낌이다. 아주 번화한 서울의 명동 같은 거리 옆에 자연 그대로의 바다가 펼쳐진 조금은 신기풍경은 늘 새롭다. 물고기 잡고 오징어 말리는 어촌풍경이 아니라 아주 번화한 한국의 홍콩 같은 분위기라고나 할까. 


엄마 셋만 단출하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같이 근무했었동료인 엄마들만 세 명같이 왔다. 아이들이 얼추 커서 혼자서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수 있고 아빠들도 엄마들의 외박을 눈감아 줄 만큼 신뢰가 가는 멤버 셋이 모였다. 이렇게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나서면 되는 건데 이제서야 편하게 엄마 휴가를 외치게 되다니. 전에는 아이가 어리고 집안 식구들이 마음에 걸려 왠지 모를 죄책감과 미안함들어 나혼자 여행을 간다는 건 생각만 있을뿐 실행하긴 힘든 일이였다. 이렇게  짐, 내 몸만 챙겨 나오는 자유로움이 얼마만인지. 그것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설렌다.


느린 여행을 한다.


하루에 한 두 곳만 들러서 놀멍쉬멍하는 게으른 여행을 한다. 실은 이런 여행스케줄에 익숙해져서 빡빡한 패키지여행은 더이상 엄두도 못 낸다. 특히나이런 여름에는 땡볕에 야외활동은 위험하니 낮잠과 휴식은 필수다. KTX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벌써 2시. 짐을 풀고 먼저 눕는다. 한 학기를 지금 막 마치고 온 두 명은 방학하고 다음 날 짐을 싸서 온터라 피로감이 아직 그대로다. 휴식이 절실한 상황. 서로의 상태를 살피며 조심조심 행선지를 정하고 무리한 일정은 절대 강행하지 않는다.



하루에 한 곳만 제대로 즐기기


해운대를 중심으로 주변만 돈다. 첫날은 깡통시장 한 곳만. 맛집도 한 곳만 제대로. 동행인 한 분의 컨디션 난조로 더욱 느리고 더욱 심플한 일정, 소박한 메뉴 선택으로 유연하게 대처한다.

갈비후라이드를 아시나요?
이름도 후덕한 돼지 갈비후라이드

 지인이 반드시 먹어야 한다고 강추한 갈비후라이드 먹으러 정주행. 먹거리가 즐비한 깡통시장을 한 눈 팔지 않고 잰걸음으로 직진한다. 시장의 끄트머리에 발견한 "깡돼후" 간판. 야심 차게 돼지갈비 후라이드 중자 한 접시를 시키고 생맥주는 500cc 한 잔. 아주 소박하고 심플한 식탁이다. 평소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적은 양지만 소탐대실을 가슴에 새기고 안전한 여행을 위해 조금씩 자주 먹기로 노선을 정한다. 진정한 먹방의 고수는 맛난 음식 하나에만 집중하는 법. 각설하고 일단 한 입 베어문다. 음~ 뭔가 흔히 먹는 치킨과는 다르다. 바삭한 튀김옷은 비슷한데 튀김옷의 두께가 얇고 살은 퍼석한 닭과 식감이 다르다. 쫄깃하고 부드러운 돼지갈비의 속살이 젓가락질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꼭 같이 먹어야 할 환상의 짝꿍이 있었으니 그것치킨무? 아니다. 단돈 천 원짜리 콘샐러드! 이것을 추가해야 비로소 환상의 맛이 완성된다. 여행 다녀온 지 한 참 지나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군침이 도는 건 그만큼 중독성 있는 맛이라는 증거!

깡돼후 콘샐러드  네이버 캡쳐


식후 30분 산책은 필수!

깡통시장 반대 방향, 멀지 않은 곳에 자갈치 시장이 있다. 질척이는 도로에 즐비한 횟집을 지나 현대식 건물에 자리한 자갈치 수산시장을 옆으로 반짝이는 항구가 보인다. 이름하여 남항. 부산 첫날일정을 마무리하는 코스로 제법 운치가 있어 좋다. 막내가 엄마를 찾는 험난한 통화가 이어지긴 했지만 어르고 달래서 가까스로 밤바다 야경을 제대로 누릴 수 있었다. 깡통시장에서 공수해 온 단짠 최고 조합 문어다리를 씹으며 우린 부산 첫 날밤의 으스름 저녁을 시원하게 채운다. 한동안 밀린 수다를 떨다 느지막이 택시를 잡아탄다.  아무쪼록 내일은 동행인 K교사의 컨디션이 나아지길 기도하며 반짝이는 부산의 야경을 차곡차곡 눈에 챙겨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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