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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Aug 21. 2023

[부산]하나만 투어 (2)

부산여행

부산의 두 번째 날.


어제저녁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K교사는 다행히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한낮의 무더위는 피하고 싶어 부랴부랴 아침 일찍 챙겨 나온다. 오늘은 온전한 하루를 가진 날. 부자가 된 기분이다. 첫 번째 코스는 부산하면 떠오르는 음식, 돼지국밥을 먹으러 간다. 벌써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여행와서도 다들 참 부지런하다. 우리도 질세라 꼬리끝자리를 잡고 줄을 선다. 20분 정도나 기다렸으려나. 자리가 나고 주문을 한다. 뽀얀 국물에 푸짐한 고기와 순대가 먹음직스럽게 나왔다. 밥과 뜨거운 국물이 만나면 퍼지는 식감이 싫어서 고기는 고기대로 밥은 밥대로 따로 맘대로 먹기 시작한다. 국밥을 휘휘 저어 새우젓에 고기한점을 찍어 잎에 넣는다. 졸깃졸깃하고 맛나다. 깍두기와 싱싱한 양파까지 쌈장에 번갈아 찍어먹으며 밥한릇을 야무지게 뚝딱 해치운다.


' 소원을 들어주세요.' : 해동용궁사

 

 무더운 오후가 되기 전에 택시를 잡아타고 해동용궁사로 향한다. 바다와 맞닿은 비탈산 위에 아슬아슬하게 용궁사가 자리 잡고 있다. 어디서 왔는지 10시도 안 된 아침인데 해외 각국의 여행객들로 가는 길이 북적북적하다. 산기슭으로 난 계단을 한참 내려오니 바다풍경을 마주하고 있는 사찰드디어 눈에 들어온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모습이 한없이 고요하다. 사람들은 계속 드나드는데 탁 트공간 앞에 시간이 멈춘 것 같다. 거기에 바닷바람까지 시원하게  불어오니 여기서 잠깐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대웅전 앞에 아무 데나 걸터앉아 한 동안 물멍한다. 느릿느릿 여행이라 생각 없이 필요한 만큼 쉬어갈 수 있어 더없이 좋다. 그렇게 한 동안 바다에 먼 시선을 드리운 채 앉아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바람과 소원을 바닷바람실어 보낸다.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며 소박한 시간을 즐기다가 12시가 되었을 무렵,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다.



조용한 바다의 맛, 송정해수욕장

다음 행선지는 송정해수욕장, 기장에 있는 해동용궁사에서 차로 15분 거리다. 택시를 타고 오는데 해변 드라이브 코스가 멋지다. 감성적인 카페와 맛집들이 늘어서 있고 조용한 바다도 함께 펼쳐진다. 우린 미리 정해둔 퓨전한정식집 "소옥"으로 간다. 깔끔한 2층 건물에 1층은 식당, 2층은 대기실이다. 주문을 하고 대기실에 올라오니 이것은 무엇? 대기실이 카페 못지않게 뷰맛집이다. 통창으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니 창문이 액자인 듯 인물도 풍경도 이뻐서 어디에 카메라를 대도 그림 같은 작품이 나온다.


영롱한 자태, 감태주먹밥과 갈비찜

호출을 받고 자리에 앉아 잠시 기다리니 눈이 호강하는 비주얼의 음식이 순서대로 나온다. 초록색 감태에 굴려 핑크색 소스를 품은 꽃 같은 형태의 음식  주먹밥이라니. 먹기아까울 정도로 이쁘다. 담백한 주먹밥에 달콤 짭짜름한 고기한점 넣으니 천상의 맛.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맛있는 음식은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잠시 멈춤 : 갤러리 투어


내 여행의 프라이빗 코스는 언제나 미술관이다. 마침 해운대 해변옆에 있는 이배의 작품을 보러 조현갤러리를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대한 작품이 압도적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숯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화가라는데 실제로 작품을 본 것은 처음이다.


 작품은 딱 4점인데 위치한 공간과 조명이 알맞게 어우러져 더욱 멋진 예술작품을 만들어냈다. 더위에 지친 여행길에 잠시 시원한 갤러리에 들어오면 작품이 주는 에너지 때문인지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여행을 온 듯 낯선 청량감을 느끼곤 한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묵직한 작품들 사이에서 잠시 다른 세상을 느끼며 한숨 돌리며 아무 생각 없이 쉬어간다.


깊은 쪽빛, 여름밤.

갤러리투어를 끝으로 오후 일정을 마치고 자체 시에스타(스페인어로 낮잠) 시간을 가졌다. 이번엔 해운대 야시장 골목으로 가본다. 뭐 맛있는 게 있나  동네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휘적휘적 걸으며 동네를 어슬렁거린다. 아기자기한 소품가게와 횟집, 먹음직스러운 분식집을 구경하며 당기는 데로 길거리음식을 한두 개씩 사 먹으며 주전부리로 저녁을 때운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동네골목을 돌아다니며 다다른 곳은 또다시 해운대 바닷가. 그런데 오늘 하늘색이 너무 깊다. 이 색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쪽빛 모시 (출처: 킨디고 Kindigo 블로그)

우리나라 전통염색으로 만든 색, 쪽빛을 닮았다. 옛사람들도 이런 하늘빛을 보고 비슷하게 만들었으려나. 푸른빛이 이다지도 고급스러울 일인가. 그냥 파랑이 아니다. 쪽빛 닮은 하늘 색깔의 매력에 흠뻑 빠져 너도나도 한동안 말없이 카메라만 눌러댔다.



해리단길을 아시나요?

동행인 K교사는 계속 소화가 안되고 속이 불편한 나머지 이른 귀가를 하고 말았다. 아쉽지만 여행보다 건강이 먼저다. 일행이 다 함께 하지 못해 아쉽지만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긴 아까 L교사와 나는 해운대 반대편, 젊은이들에게 ''하다는 해리단길을 찾아간다. 어둑 컴컴한 골목에 주택가를 개조한 카페와 상점, 식당들이 보인다. 그중  흡사 유럽 골목의 한 귀퉁이를 닮은 듯한 카페에 용기를 내 들어가 본다. L교사가 복직기념이라며 통 크게 쏜 음료 한 잔을 홀짝홀짝 마시며 부산의 마지막 밤을 새긴다. 이렇게 같이 할 친구가 있어 더없이 든든한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여행은 편한 사람과 편하게 다니는 게 진리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참 인복이 많다. 여름밤 뜨거운 열기와 가끔 스치는 바람에 고마운 마음도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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