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짐을 정리하고 체크아웃을 한다. 호텔 프런트에 짐을 맡기고 어제 갔던 해리단길을 다시 찾는다. 눈여겨본 브런치집을 찾아가 보려고 한다. 셋 다 출근에 익숙한 아침형인간인지라 9시가 되기도 전에 스탠바이다. 문제는 문을 연 가게가 별로 없다는 것. 그래도 상관없다. 어슬렁어슬렁 동네 구경하면 되니까.
Off on 브런치맛집
기대에 찬 아줌마 셋의 감성 터지는 골목투어는 무리였을까. 갑작스럽게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미리 생각해둔 곳을 허겁지겁 찾아갔으나,오픈전이라 밖에서 대기하라는 매정한 통보를 해온다.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을 물색. 앗. 다행히 길가에 자그마한 브런치 카페가 보인다. 선택의 여지없이 그냥 빠르게직진, 문을 열고 들어간다. 다급하게 들어온 곳인데도 앤티크 한 인테리어와 따스한 분위기가 나름 멋스럽다. 자리를 잡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식사니먹고 싶은 것을 하나씩 과감하게 시키자고 강력한 눈빛교환까지 한다.눈치 따윈 보지 않고 각자 먹고 싶은 걸 하나씩 주문한다.
따뜻하고 여유로운 한 끼
우아. 순서대로 하나씩 나오는 메뉴들의 때깔이 영롱하다. '에그인헬'이름도 무시무시한 음식은 맛도 무시무시하다. 처음 본 비주얼이지만 어디선가 먹어본 맛 같은 느낌적인 느낌. 피자소스에 달걀 넣고 치즈 넣고 빵에 찍어먹는 느낌, 새로웠다. 이렇게 여유롭게 먹는 아침식사는 왠지 모르게 더 좋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뭘 먹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여유로움은 정확히 기억한다. 출근 전 긴장감에 늘 바쁜 아침시간만 보내다가 느리적느리적 게으르게 먹는 여유로운 식사 한 끼가 주는 달콤함이란.
두 시간 남짓 여유로운 브런치를 즐기고 산책 삼아 골목 구경을 한다. 구름 낀 하늘, 회색빛 풍경, 아직 영업개시도 안 한 가게들이 많지만 대한민국의 아줌마 셋이 모였다. 전혀 개의치 않는다. 기웃거리며 문도 안연 가게 안에 코를 처박고 구경하고 사진을 찍어대며 관광삼매경이다. 이렇게 작은 가게들과 소박한 풍경이 있는 아기자기한 골목이 좋다. 각자 다른 이야기로 우리를 유혹하듯 상기된 분위기에활기가 넘친다. 손님맞이 준비로 분주한 몸짓이 보이고 고소한 빵냄새가 코끝을 홀리기도 한다. 향긋한 커피 향이 좁은 골목에 퍼져나가면 환대의 초대장이 온몸 깊숙이 도착한다. 어느 가게든 문을 열고 들어가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도 될 만큼 온기가 넘친다. 이런 살아있는 매력이 골목에는 넘친다. 활기 넘치는 핫 플레이스의 에너지를 듬뿍 받고 아쉬움을 뒤로 한채 이 여행의 끝, 마지막 행선지인 기차역으로 간다.
결국 K교사는 컨디션 회복에 실패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어제보다 힘든 기색이 더 역력하다. 변경이 되면 좀 더 빠른 기차표로 바꿔서 빨리 집으로 가자고 제안한다. 모두 오케. 다행히 빠른 기차표를 구하고 가슴을 쓸어내린다.드디어 부산역의 부산스러움을 뒤로하고 플랫폼을 향한다. 저 멀리서 속력을 내며 열차가 내게로 다가온다. 새 학기 복직 날짜가 다가오듯 자뭇 압도적인 속도로 다가오는 열차가 두렵다. 그래도 단출하고 편안한 여행 덕분에 좀 더 가벼워진 마음이다. 기차에 폴짝 올라탄다. 기차는 잠시 멈추었다 다시 속력을 낸다. 잠시 멈추었던 내 인생의 기차도 이 기차처럼 달리기 시작하겠지. 아무쪼록 이번 학기, 긴 여행도 순항하길 기도하며 점점 빨라지는 열차에 나를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