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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Nov 12. 2023

[화담숲]하나만 투어: 가을엔 여기! 화담숲

아름다운 계절을 잡고 싶은 욕심

온 나라가 총천연색으로 아름다움뽐내는 계절. 이 시간을 잡고 싶은 마음에 이 즈음, 특히 더 아름답다고 소문난 이곳, 화담숲. 예약하기 힘들다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이트에 접속했다. '헉! 그런데 이게 웬일이여. 자리가 있다. 땡잡았네.' 누구한테 뺏길세라 광속으로 표를 매한다.


나들이의 기본은 체력

갑작스러운 가을 소풍들뜬다. 토요일 하루, 병원에서 침도 맞고 뜨끈한 전기장판에 허리도 지지면서 푹 쉰다. 놀아본 사람은 안다. 제대로 놀려면 체력이 필수라는 걸. 지난주엔 시험문제를 내느라 목, 어깨, 허리까지 통증이 내려와 컨디션 난조를 보인 터라 이 정도의 휴식은 해두어야 다. 열심히 놀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정성과 노력, 치밀한 계획은 필수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숲, 화담

화담숲 홈페이지 자료화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다의 뜻을 가진 화담숲은 LG상록재단이 공익사업의 일환으로 설립하고 운영하는 수목원이다. 2013년 경기도 광주시에 약 5만 평의 면적으로 개원하여 16개의 테마원과 국내 자생식물과 도입식물 4000여 종을 수집하여 전시하고 있다. (출처: 화담숲 홈페이지)


가을이 가을 했다.

산책로를 따라 숲길을 걷는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차마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나뭇잎의 빛깔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산기슭으로 흘러내리는 실개천의 물소리가 청량감을 더한다. 말없이 걸어도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은 길. 우리 집 막내, 자칭 다람쥐씨는 물 만난 고기다. 팔짝팔짝 뛰어다니며 돌도 줍고 나뭇잎도 모으며 에너지를 한껏 발산한다. 가을 숲에 가을 하늘에 숲길을 뛰어다는 다람쥐까지 가을이 한창이다.


화담숲 날다람쥐씨


곧고 하얀 우수에 찬 자작나무숲

울긋불긋 단풍숲길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어느덧, 흰 나무기둥이 멋스러운 자작나무숲에 이른다. 이파리도 없이 가느다랗고 야리야리한 팔목 같은 가지가  푸른 하늘과 맞닿아있으니 그 모습이 조금은 쓸쓸해 보인다. 대쪽같이 하늘로 쭉뻗은 모습이 결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신념 같기도 하고 고집 같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초연해 보이는 걸까. 다정한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덧 우수에 찬 외로운 가을산이 되었다.


곧고 흰 가느다란 나무기둥, 자작나무숲


삐딱한 아름다움, 소나무숲

넌 왜 그렇게 꼬였니?
너는 얘가 왜 그렇게 꼬였니?
매사에 그렇게 삐딱하게만 보고


울통불퉁 제 멋대로 생각하고 반항하는 아이들을 꾸중하는 말이다. 그런데 소나무 숲에는 꼬이고 삐딱한 나무들이 주인공이다. 제 멋대로 뒤틀리고 꼬 나무들의 모습이 흡사 예술작품처럼 멋지다. 곧게 뻗은 자작나무가 모범생스타일이라면 꼬이고 엉킨 소나무는 흡사 반항아 모습이다. 그런데 두 나무 모두 나름의 멋으로 숲길을 채우고 있다. 아이들도 무조건 바르고 곧게 자라라고 혼내기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것일까.


흘러내리는 냇물처럼 거스르지 않기

 지루할 법도 한 산책길은 때때로 들리는 물소리와 산새들의 지저귐으로 경쾌한 리듬을 더한다. 아래로만 흐르는 물줄기는 결코 부끄러움 없이 당찬 소리를 내며 아래로 아래로 모여 흐른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이 오늘의 중요한 사명인 듯 거침없이 그날의 물줄기를 아낌없이 내리꽂고 묵묵히 흘러간다.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것을 품는 호수의 바람

산을 휘감아 천천히 돌아오는 산책 코스의 끄트머리쯤에서 호수를 만난다. 위에서 내려온 모든 것을 품은 호수물는 고여있지만 맑다.  졸졸졸 흐르실개천의 물소리도 바람에 부딪히던 나뭇잎의 바스락 거림도 들리지않는 잔잔한 호수. 호수는 그 투명한 표면으로 변덕스러운 하늘도 나풀거리는 나무도 시끌벅적한 카페도 있는 그대로 따뜻하게 비춘다. 철부지 자식의 투정을 받아내는 어머니의 마음이 그랬을까. 세상풍파의 무게를 짊어진 아버지의 마음이 그랬을까. 자연만물의 어버이처럼 호수에 깃든 풍경이 넉넉한 대자연의 품을 연상하게 한다.


그저 편하게 넉넉하게
쉬다 놀다 가렴!




이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것일지라도

돈 많은 재벌가가 그의 돈으로 더 큰 백화점을 짓거나 더 높은 건물을 올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건물도 백화점도 아닌 숲을 만든 그의 결심이 새삼 크게 느껴진다. 멸종위기종인 민물고기를 살려내고 기후위기로 위태로워진 식물들을 키워내는 일에 자본을 투자한 그의 선택에 문득 고마운 마음까지도 든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자연은 야생의 상태로 그대로 가만 놔두기를 바랐을까. 아니면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가 이렇게 곱고 멋지게 가꾸어 인간과 소통하기를 바랐을까. 깊고 깊은 자연의 본심을 알 수는 없으나 소비할 것을 만들지 않고 섞지 않고 버려질 것을 만들지 않고 자연을 살리는 숲이라는 상품을 만들어준 그 어떤 분의 대단한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자연과 바람과 빛과 나무와 물과 호수와 다람쥐 한 마리와 마음을 열고 말을 건넬 수 있었던 위대했던 대화의 긴 여운을 미약한 글이라도 남겨 붙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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