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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Dec 20. 2023

[타이페이]하나만 투어: 뜻밖의 행운, 뜻밖의 반응

세 모녀 타이페이 방랑기(1)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대만에 오기로 한 데는 큰 이유는 없었다. 실은 6개월 전부터 호주, 독일, 대만 세 곳의 비행기표를 예약해 두고서 무료 취소가 되는 기점까지 고민했다. 진짜 가고 싶었던 곳은 유럽이었는데 겨울이고 너무 긴 일정(약 3주)의 비용과 짐을 감당키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눈물을 머금고 취소. 호주는 날씨도 좋고 치안도 좋지만 자연 말고는 별로 할 게 없어서, 그리고 넓은 땅을 다니려면 차가 필수인데 내 운전실력이 늘 초보라 아웃. 그래서 선택한 대만. 가깝고 교통 좋고 큰 딸 1호의 중국어 실력도 키워줄 겸, 그리고 막내가 대만 어딘가에 있는 인어공주를 보고 싶다는 그 말에 대만으로 최종낙찰!


각설하고 내가 어딘가를 가고 싶었던 이유가 제일 컸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기억도 안나는 어느 카드광고 카피서 나온 말인데 이 말처럼 난 늘 힘든 한 학기를 마치고 나면 보상처럼 어딘가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났다. 그래야 뭔가 끝냈다는 느낌이 확실히 들곤 했다. 제법 돈이 많이 드는 루틴이지만 효과는 있었다.



여행이 일이 되지 않게

무엇보다 학기말쯤 되면 늘 같은 일상의 무게가 감당키 어려웠다. 일하고 밥 먹고 사는 게 든든하게 내 삶을 지켜주기도 하지만 다 살아내고 나면 버거웠다. 그리고 뭔가가 차올랐다. '떠나고 싶다.'라는 생각이. 여행은 두 번째 삶을 허락한다. 곧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니 부담 없이 새로운 환경을 즐길 수 있다.  낯선 곳에 가면  늘 같았던 일상이 흩트러지고 새로운 미션이 내게 주어진다. 밥하고 설거지 하고 방청소하고 학교에선 문서처리하고 가르치고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상'오늘은 어딜 가서 뭘 하고 뭘 보고 뭘 먹을까'라는 새로운 미션으로 바뀐다. 누군가에게는 낯섦이 부담이지만 나에게는 설렘이다. 그래서 난 계속 여행을 한다. 그것도 자유여행, 프리스타일로. 정보를 알아보고 루트를 짜고 일정을 완벽하게 준비하면 좋지만 그렇게 하려면 또다시 일이 된다. 그래서 나는 완벽함을 버리고 적당함을 추구한다. 가장 중요한 비행기, 숙소, 봐야 할 곳 하루 한 개 정하고 끝! 나머진 흘러가는 데로.



나에게도 이런 일이~!

딸 둘과 세 모녀가 비행기에 탔다. 각각의 캐리어에 짐을 싣고. 뭘 샀는지 뭘 준비했는지 묻지도 않고 '각자 짐 1개만' 싸라는 얘기만 했을 뿐이다. 새벽부터 분주히 움직여 도착한 대만, 아무리 무계획이라도 이번에는 미리 준비한 게 있다. 제법 당첨률이 높다는 대만 여행지원금! 대만에 입국하는 개별여행자에게 주는 복권형태의 지원금인데 당첨되면 5,000대만 달러, 약 20만 원 정도를 숙박, 편의점 일부 상점등에도 이용가능한 교통카드로 지원한다.


https://naver.me/xUtL9K2w

대만여행지원금 모바일 신청페이지

셋 중 한 명이라도 되면 어딘가 싶어 잽싸게 신청했다. 그리고 대만도착, 길고 긴 대기행렬의 끝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줄을 선다. 큰 딸 꽝! 막내딸 꽝! 과연 나는?

앗싸! 당첨이다.

기분이 좋다. 한국선 그 흔한 천 원짜리 복권도 안되더구먼 역시, 사람을 넓게 크게 살아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당첨의 기쁨을 즐긴다. 교환카운터에서 상금이 담긴 이지카드(우리나라의 교통카드 같은) 수령하고 기뻐서 말한다.


"막내야. 엄마 당첨됐어. 너무 좋지?" 그런데 막내가 표정이 이상하다. 잔뜩 골이나 있다.

"엄마, 미워. 싫어. 엄마만 당첨되고." 아니 이게 무슨.

 "이건 엄마가 정한 게 아니고 그냥 뽑기야. 이걸로 맛난 거 같이 사 먹자." 어르고 달래는 이상한 시추에이션 뭐지?


큰 딸은 "엄마 당첨됐어. 좋겠지?"라는 말에 "응. 축하해" 시크하고 건조한 답만 돌아온다.


새옹지마라고 했나. 복권당첨은 앞으로 있을 이 둘과의 험난한 여행을 예상이라도 한 듯 미리 입금된 위로금인가. 기쁜 일에 기쁘다고 말하지 못하고 축하는커녕 심통과 시크함으로 반응하는 두 딸. 가족과 기쁨을 충분히 나누지 못한 나는 조용히 누워 새벽 댓바람부터 이렇게 브런치에 처량하게 주저리주저리 그 여운을 전하고 있다.


앞으로 나,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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