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요일 Mar 09. 2023

[북리뷰]콩 심은 데 콩만 나는 게 아니었네?!

[고스톱 고전 읽기] 월든 (6) : 7. 콩밭

나는 식물 키우기에는 뱅이다.


그냥 두기만 해도 자란다는 선인장 다육이, 산세베리아, 홍콩야자 등등 처음에는 싱싱하고 푸르렀던 초록잎들은 나에게만 오면 어느새 누런 색으로 생기 없이 축 쳐지곤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괜한 미안함에 다시는 생명 있는 것을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하곤 한다. 작가 소로우는 정성 들여 콩을 키우고 심고 키우며 나중에는 콩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뜬금없는 고백까지도 한다. 콩이라는 것은 모름지기 밥에 넣어도 먹고 간장 넣어 졸여도 먹고 두부로 만들어 고소하게 김치를 올려도 먹는 식탁의 만능반찬 중 하나일 뿐이지 추호도 키워볼 생각은 한 적이 없다.


콩은 나를 대지에 연결시켜 주었으며
나는 안타이오스처럼
대지로부터 힘을 얻었다.
그러나 내가 왜 콩을 길러야 하는가?
오직 하늘만이 알 것이다.
(p.234)



물만 주면 크는 게 아니었어!


나의 일과는 풀들을 뽑아버리고 콧대 주위에 새 흙을 덮어 격려하며, 이 황색의 흙이 자신의 여름 생각을 쑥이나 개밀이나 피 같은 잡초가 아니라 콩잎으로 나타내도록 설득하고, 그리하여 대지가 '풀!'하고 외치는 대신 '콩!'하고 외치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사람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식물을 키우는 것은 그에 따른 정성과 노동을 요한다. 아침저녁으로 보살피고 김을 매는 하루 일과를 온전히 바쳐야 싱그러운 콩밭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콩밭을 키우는데 숨은 조수들이 있다고 소로우는 말하고 있다. "마른땅에 물기를 공급해 주는 이슬과 비 그리고 척박한 땅에 다소라도 남아있는 생산력이 바로 그것이다.(p.235)" 때때로 벌레와 요동치는 날씨, 우드척의 공격을 받아 키워놓은 콩들이 습격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로우는 고집스럽게도 일체의 고용인을 쓰지 않고 비료나 개량 농기구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다만 그의 손으로만 이 모든 고된 작업을 해낸다. 그는 대신에 콩들과는 더욱 친숙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며 자신했다.


우드척 : 다람쥐과 포유동물


내가 키웠다고 모두 내 것이 아닌 것을


콩을 내가 키웠다고 다 내것은 아니라고 소로우는 말한다. 지나가는 야생동물들, 하늘을 나는 새들의 것도 된다고 박애주의자처럼 욕심 없이 말한다. 지난 <우산> 독서모임에서 아마도 소로우는 부양해야 할 처자식도 없고 평생 농사를 짓지도 않았으니 편하게 말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말했었다. 그래도 소로우의 생각엔 남다른 면이 있다.


이 콩의 결실을 내가 다
거둬들이는 것은 아니다.
이 콩들의 일부는 우드척을 위해서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중략)
 잡초들의 씨앗이 새들의 주식일진대, 잡초가 무성한 것도 실은 내가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닌가? (251p.)


애써 키운 콩이든지 애써 키운 자식이든지 공들여 키운 만큼 결과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진대 소로우는 이런 욕심을 경계하고 숲 속에 사는 다람쥐처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자연의 지혜를 닮으라고 조언한다.


밭농사가 잘되어 농부의 광을
가득 채우느냐 아니냐는 비교적 중요한 일이 아니다.
금년에 숲에 밤이 열릴 것인지 아닌지 다람쥐가 걱정을 않듯 참다운 농부는 걱정에서 벗어나 자기 밭의 생산물에 대한 독점권을 포기하고, 자신의 최초의 소출뿐만 아니라 최종의 소출도 제물로 바칠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251p.)



 밭이나 논에서 자연의 피조물들을 경작해 결실은 그 모두가 인간의 것이 아니고 자연과 나누어야 할 그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연의 것을 인간이 취할 획득의 수단으로 보기만 하는 천한 습성을 버리고 그 욕심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화를 찾으라고 대가 없이 퍼주는 자연이 주는 모든 것들을 알아차리고 감사하라고 말한다.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그리고 토지를 재산으로 보거나 재산 획득의 주요 수단으로 보는 누구나 벗어나지 못하는 천한 습성 때문에 자연의 경관은 불구가 되고 농사일은 품위를 잃었으며, 농부는 그 누구보다도 비천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p.250)



지구는 잘 가꾸어진 하나의 정원일뿐


 가수 이적의 어머니이자 사회학자인 박혜란 여사는 아이는 내가 키우는 게 아니라 믿는 만큼 자랄 뿐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키워내는 의 수고와 어려움을 무시하는 말이라기보다 태양과 같이 공평한 따스함과 믿음으로 아이들을 좀 더 관망하고 지켜보며 아이 스스로의 힘, 자연적인 힘을 신뢰하고 기다려주는 부모의 태도를 강조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경작지는 태양이
매일 지나다니는 길에 내려다보는 멋진 풍경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태양의 눈에 이 지구는 두루두루 잘 가꾸어진 하나의 정원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태양의 빛과 열의 혜택을 이에 상응하는 믿음과 아량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250p.)


 오늘도 아이들은 엄마말을 듣고 영어. 수학 학원엘 간다. 공부하는 학교의 일정을 마치고 또 공부하러 학원에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무겁다. 햇볕을 쬐며 공을 굴리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없다. 학교와 학원이라는 온실 속에서 사시사철 비슷한 과목의 양분을 받고 비슷한 일을 하기위해 준비하며 아이들이 자란다.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아들에게, 태국유학을 가겠다는 딸에게 잠시만 그 소망을 유보하자했다. 대한민국이 만든 정상과 평범의 범주에 아이들을 가두고 재단하는 것이 오늘날의 "키운다"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닌지. 선택의 자유는 있지만 선택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콩이 될 아이도 당근이 될 아이도 고구마가 될 아이도 다 같은 영어, 수학의 볕을 쬐도록 하고 있는 걸까. 결국 학원이라는 온실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나는 야생이 주는 자연 그대로의 양분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닌지.


키우지 말아야 클 텐데 가두지 말아야 자랄 텐데...

나는 무엇이 두려워 같은 무리가 되라고 아이들을 몰아가고 있는 걸까. 소로우는 갈팡질팡하는 나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내가 이 종자 콩들을 소중히 여겨
가을에 수확한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내가 그토록 오래 보살펴온 이 넓은 밭은 나를 진짜 경작자로 보지 않고 밭에 물을 주고 밭을 푸르게 만드는,
보다 친절한 자연의 어떤 힘을 더 따르는 것이다. (251p.)



*출처: <월든> 헨리 데이비드소로우, 은행나무

매거진의 이전글 한 달에 하루, 꽉 찬 세 시간의 기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