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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Dec 12. 2021

299,000원짜리 달콤한 유혹

우정의 글쓰기

공과 사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 일을 잘하는 비결이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일터에서 사적으로 친한 친구를 만나는 것은 위험한 것이라고. 물론, 이것 저것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난감할 때도 종종 있지만,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일종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귀이 여긴다. 즐거운 사건이 있다면 더욱더.


"아니, 둘은 쌍둥이 같아"

지난 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던 한문 샘 L과 나를 두고 지나가던 누군가가 하는 말이다. L샘은 나에겐 언니로 어딜 가든 최고의 무기인 유머와 친화력으로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샘이다. 나는 그에 비해면 뻣뻣하고 무덤덤한 스타일. 등치가 비슷하고 늘 붙어다녀서 그런지 종종 쌍둥이 같다는 말을 듣곤 했다. 그 분과 내가 친해지게 된 것은 정말 힘들었던 중2 담임을 옆반에서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힘들면 신세 한탄하며 술 한잔, 속상해서 한번, 그냥 기분이 우울해서 차 한잔... 먹는 걸로 풀어서 풍만해지는 몸매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가 여름방학 때쯤 정말 스트레스가 하늘을 친 것. 악마의 속삭임이 시작되었다. "샘, 우리 대만 갈까요?" " 오, 정말. 좋아, 언제?" 소셜커머스에서 반짝 299,000원짜리 여행상품이 내 눈에 구원의 손길처럼 확~들어온 것. 이 가격에 숙박과 비행기표가 해결된다니... L샘께 주저 없이 톡을 보내고 며칠 후, 그녀와 나는 진짜로 김포공항에 있었다. 결혼 후 아이 없이 가는 홀가분한 첫 번째여행이 엉겁결에 진짜로 이루어진 것.  그때의 흥분과 재미는 거의 10년 전 일인데도 가격도 일정도 들른 가게도 다 기억할 정도로 생생하다.

먼저 공항 면세점에 들러 우리의 탈출을 자축하는  크로스백을 하나씩 커플로 사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비행기에 탄다. 즐겁다. 신난다. 재밌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남편은 충격, 아이들은 당황했지만 그때는 그냥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던 때였다. '미안해요~남편'


대만에 도착하고 호텔에 짐을 풀고 구석구석 여기저기 도시를 탐색한다. 밥하느라 까칠한 손톱에 네일아트를 받아볼까 하고 들어 간 네일숍. '어. 근데 이를 어째. 손의 움직임이 곰손인 나보다 못하다' 흔들흔들 비뚤비뚤 매니큐어 붓을 바르는 손놀림이 그렇게 불안하고 어설프기 이를 때가 없다. 허나 너무 친절하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 우리도 바보처럼 웃고만 있을 뿐. 지금도 하늘색 매니큐어만 보면 그 어눌한 손놀림이 생각난다. '역시 손재주는 대한민국이 최고야' 엄한 순간에 국뽕이 차오른다.


그리곤 그간의 여독을 풀러 눈앞에 보이는 마시지샾에 간다. 맛사지사 두 명이 킥킥 웃더니 영어로 더듬더듬 "You sisters??"이런다. 이쯤 되면 국내외의 사람들이 우리가 닮은 것을 인정한 셈이니 받아들여야 하나. 근데 우리만 등치는 비슷할지 몰라도 성격도 스타일도 정말 다르다니까요. 항변해봤지 소용없다. 믿거나 말거나~^^


저녁이 되어 야시장을 간다. 스린야시장이라고 온 갖가지 것들이 모여있는 시장. 나는 어딜 여행 가든 지역에 있는 시장엘 꼭 간다. 역사적 장소나  유명한 명소를 가는 것도 좋지만 그 당시 거기 사람들이 먹고 쓰고 마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생동감 있는 장소가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자랑은 망고빙수. 근데 빙수가 오목한 그릇에 쌓여 나오는 게 아니라 평평하고 넓은 접시에 산처럼 우유얼음이 갈려 나오고 툭툭 무심하게 잘라서 뿌짐하게 올려놓은 망고, 그 위에 연유를 듬뿍 뿌려 나온다. 심플하고 토속적인 모습이지만 그 맛이 일품이다.

스린야시장 망고빙수 (인터넷캡쳐)

다음 날은 2박 3일 일정의 하이라이트다. 온전히 꽉 찬 하루가 있는 날.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기암괴석이 유명한 '아류'를 간다. 자유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맞춰 L샘도 덩달아 고생이다. 종이에 행선지를 한자로 적어 버스 안 현지인에게 물어물어 도착한다. 이 와중에 L샘이 한문 전공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게다가 우리가  만난 대만 사람들은 하나같이 착하고 친절했다. 우리가 내리는 지점도 기억했다가 내릴 때가 되니 다시 한번  정확히 일러준다. 아류의 기암괴석보다 현지인 도움으로 어렵게 찾아간 여정이 더 잘 기억나는 건 자유여행만의 매력이다. 돌아오는 길에 멀고 먼 지우펀을 대중교통으로 돌고 언덕배기 커피숍서 운치 있게 차 한잔 하고 돌아온다.


지금은 기나긴 코로나와의 전쟁으로 외국여행은 꿈도 못 꾸지만, 대만 여행 이후로 L샘과 나는 애들을 데리고 상하이, 영월 등 많은 곳을 같이 다니며 여행친구이자 육아 동지로 학교 동료 이상으로 마음을 나누며 지냈다. 여행지 곳곳을 다니면서 생긴 시트콤 이상의 에피소드가 우리에겐 재미난 추억으로 남아있다.

며칠 전 어렵게 시간을 내 오래간만에 쌍둥이 같은 두 사람이 만났다. L샘은 대만의 매니큐어 같은 색 티셔츠를 입고 나타나셨고^^. 시간은 흘렀어도 언제나 그대로다. 서로의 이야기에 금방 공감하고 이해하고 눈물짓고 그러다 웃고 그렇게 몇 년의 시간 차를 잊는다. 우리의 추억이라는 보물 창고에서 에피소드를 꺼내 소환해내며 웃고 제법 큰 아이들 이야기에 공감하며 끄덕인다. 학교도 지역도 멀어졌지만 우린 몇 시간 만에 또다시 공감능력 100% 쌍둥이 자매로 변신했다.

충동구매 299,000원짜리 찐 자유여행의 추억은 유효기간이 없는 초콜릿처럼 달콤한 휴식이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몰래 꺼내먹을  같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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