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곡한 거절 vs. 대담한 결심

투고 또 투고 (2)

by 화요일
안녕하세요!
저희 출판사에
보내주신 원고, 잘 받았습니다.

저자님의 경험에서 나온 내용이라
관심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바로 집중할 수 없는 원고는
작가님의 소중한 콘텐츠임에도 불구하고
수용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많이 아쉽지만,
저희가 좀 더 성장한 후에
인연 맺기를 희망하며
이번 원고가 좋은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널리 퍼지길 기원합니다.


너무나 완곡해서 "거절" 의도를 한참 더듬어 읽은 후에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차라리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으면 나았을까. 홧김에 허공에 욕이라도 던지고 싶은 데 그마저도 할 수가 없다. 자존감이 땅에 콕 처박힌 요즘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지난 한 달 동안 200여 곳이 넘는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했다. 혹시 모를 출판 승인 메시지를 기대하며 매일 메일함을 열며 아침을 시작하는 일상이 한 달이 넘었다. 하지만 기다리는 메시지는 없다.


Green Light도 있었지만.


지난달 말까지만 기다리기로 스스로 약속했었다. 마땅한 응답이 없으니 출판사가 100% 투자하는 기획출판은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자비출판을 알아보기까지 했다. 멘털붕괴가 진행 중인 와중에 이젠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잡아가는 지인과 톡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지인이 말한다. "다 그래요. 포기하지 말고 한번 더 여기저기 막 투고해 봐요." 그 한마디에 희망을 낚아 올려 주말 동안 새로운 출판사 150군데나 다시 투고했다. 그리고 이튿날 월요일 아침, 나에게도 "OK" 메시지가 왔다.


윤작가님, 아니 어떻게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해내셨습니까?
저희가 인세 10% 드릴 테니 출판합시다.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출판사 사장님 A 씨가 직접 전화를 주셨다. 이 얼마나 반가운 말인가. 초보작가에 인세 10%, 대박이다. 단, 초기에 작가가 70% 할인된 가격으로 200권 정도 사달라는 단서를 붙였지만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기쁜 마음에 당장 계약하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다. 흥분된 마음을 가다듬고 일주일 정도 혹시 모를 다른 출판사의 연락도 기다려보고 긍적피드백을 준 출판사에 대해 더 알아보기로 한다. 이후, 2군데 출판사에서 긍정의 메시지가 왔다. 그러나 한 군데 출판사는 책은 잘 만들겠지만 1쇄 출판에는 인세를 줄 수 없다고 했고 다른 한 군데는 출판사의 규모도 작고 최근 출판된 책이 1.2권 정도인 영세한 업체였다. 마침 그 주 금요일쯤 처음 긍정피드백을 주신 A사장님께 전화가 다시 왔다. '당장 계약할게요.' 하고 싶었지만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침착하게 대답한다.


네. 사장님.
그런데 제가 계약서를 보고 싶어서요.
간략하게 내용 작성해서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그걸 보고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몇 시간 후, 계약서가 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작가가 200권은 작가가 70% 할인된 가격에 사고 (이건 이미 말했던 부분) 거기에 더해 첫 500권이 팔릴 때까진 인세를 주지 않겠다고 쓰여있다. 100만 원을 요구하는 문구도 있었고. 황당하고 참담했다. 속상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궁금하고 이상한 부분을 찾아 메모도 하고 주변 지인들의 의견도 묻는다. 이런저런 의문점을 더해 답변을 요청하는 메일을 다시 보냈다. 잠시 후 사장님이 다시 전화를 하셨다. 지금은 컴퓨터로 문서를 확인할 수 없으니 말로 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궁금한 점을 꼼꼼히 묻자 "저희도 먹고살아야죠."를 연발한다. 그러다 결국 "그럼, 다른 좋은 출판사 찾아서 하세요!"하고 전화통화가 끝났다. 아. 이건 뭐지~?



오히려 감사한 거절메시지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투고한 출판사의 반응은 다양했다. 이메일주소 오류 때문인지 전송실패 10 여건, 읽지도 않는 곳이 20%, 읽었지만 답이 없는 곳이 절반, 접수되었다고 친절하게 응답한 곳이 10%, 거절메시지를 보내준 곳이 또 10% 정도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거절메시지를 준 곳이 고맙기까지 하다. 적어도 한 번은 내 원고를 본 것이고 편집자들과 함께 고민했을 것이고 초보작가가 상처받지 않도록 정성스레 단어를 선택해 답장을 보낸 것 아닌가. 출판은 좌절되었지만 원고를 읽고 고민해 준 과정이 새삼 고맙기까지 하다.



거절과 무응답의 의미


솔직히 김칫국을 마셨다. 전자책만 출판하면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쏟아질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 환상은 비참하게 깨졌고 출판사의 거절과 무응답, 무리한 조건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1. 글이 아직 부족하다.

2. 잘 팔릴 것 같지 않다.

3. 타겟층이 모호하다.


혼자서 고민도 해보고 지인들과 얘기도 나눠보면서 약 3가지 정도 원인을 찾아냈다. 실은 원고를 쓰면서도 1.3번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 이 두 가지를 이유로 거절했다면 인정한다. 문제는 2번, 이건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마케팅과 판매를 전담하는 출판사의 촉 혹은 직감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잠재고객을 알아내고 얼마나 팔릴지 짐작해서 책을 인쇄하고 재고를 소진해야 하므로 출판사 입장에서는 2번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정신줄을 부여잡고 다시 생각해보니 낙담할 이유는 별로 없었다. 부족한 글은 멈추지 않고 계속 배우고 쓰면 될 것이고 정확한 타겟층은 다양한 사람들과 슬로리딩했던 경험 중에서 한 집단을 공략해서 다른 각도로 써보면 될 것이다. 거기에 잊지말아야 할 것은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보다는 독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관찰하고 쓸 것, 즉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출판사의 거절이 존재의 부정이 되지 않도록


하루 한 두 곳씩 꼬박꼬박 거절메시지를 받는 건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나라는 사람이 부정되고 내가 한 경험과 이야기가 무의미하고 별 볼 일 없다는 극단적인 생각으로 나를 끌고갔다.


하지만 출판사 투고는 새로운 도전을 의미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아감을 자청한 것이다. 그런 도전을 하지 않았으면 좌절할 일도 상처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고 늘 같은 상태로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허나 그것은 배가 만들어진
목적은 아니다.



땅바닥에 떨어진 내 자존심은 이렇게 좌절을 고함으로써 끝이 날 것이고 실패는 했지만 세상에 해를 끼친 것은 없다. 실은 부족한 내 글이 종이책으로 나온다는 것은 엄청난 자원낭비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전자책을 먼저 쓴 이유도 있었다. 덜 준비된 글로 더 많은 자원을 낭비하기보다는 천천히 글이 무르익었을 때 순리대로 출판을 하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행여나 꼭 출판하고 싶다면 자비출판이나 "부크크"를 통한 재고 없는 POD(Publish on Demand, 고객주문에 따라 책을 만들어주는 서비스)출판도 고려해보려고 한다.



그래도 계속 쓴다.


다시금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 은유가 지은 <은유의 글쓰기 고민상담소>를 꺼내 들고 교과서처럼 받아 적으며 공부하고 있다.


글 쓰는 고통보다
글을 안 쓰는 고통이 클 때
작가는 계속 쓰게 된다.


이 말에 꽂혔다. 그 모든 이유를 뒤로 하고도 글 쓰는 것이 안 쓰는 것보다 행복하고 마음이 편해졌다. 이렇게 공공연하게 출판사의 러브콜을 못받았다고 소문내고 있는 걸 보면 그 증세가 심각하다.


좌절하지않기로 결심했다. 종이책은 아직 없지만 스스로 제작한 자랑스러운 전자책이 있고 앞으로 계속 것이고 나아질 것이니 속상해하지 않기로 세뇌한다. 내 인생이 계속되는 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고 글쓰기는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내 안의 명령이다. 누가 뭐래도 내 계획과 의도대로 내 삶을 꾸려갈 예정이다. 실패냐 성공이냐의 결정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하려고 한다. 거듭된 출판사의 거절은 실패가 아니라 과정일 뿐 나를 더 나아지게 하는 재료로 사용해보려 한다. 약해지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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