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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Aug 06. 2023

당신의 식욕은 아무 잘못이 없다.

먹방-사피엔스-박완서의 연결고리

이번 <달밤산책> 독서모임에서 이야기 한 책은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 인류의 진화과정을 영민하게 해석한 책이다. 나도 모르게 밑줄을 수십 개씩 긋게 되는 아주 얄밉도록 똑똑한 책이다. 이번 모임에서 우리의 이목을 끈 것은 "식탐". 현대사회의 물질적 풍요 속에서 다양한 먹거리들이 화려한 자태로 우리를 유혹하는 세상, 돈만 있다면 식도락(食道樂)을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태평성대다. 그럼에도 우린 먹는 것에 더 큰 집착과 욕심을 부리는 아이러니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왜일까.


남이 먹고 있는 걸 수십만 명이 보고 즐기는 시대


요즘은 먹방(는 방송)이 대세다. TV에서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맛집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이 연일 방송되아이들은 먹방 유튜버들에 열광한다. 남이 먹는 걸 왜 보고 듣고 있는지 좀처럼 이해가 안 되지만, 우연히라도 채널을 돌리다가도 맛있는 음식소개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멈추고 군침을 흘리곤 한다. 새롭고 다양하게 즐길거리들이 즐비한 현대사회에서도 맛있는 것을 탐하는 원초적인 욕구는 거역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것일까. <사피엔스>에서는 '게걸스러운 유전자'이론을 내세우며 원초적 욕구, 식탐을 설명한다.


3만 년 전 전형적인 수렵채집인이 손에 넣을 수 있는 달콤한 식품은 오직 하나, 잘 익은 과일뿐이었다. 무화과가 잔뜩 열린 나무를 발견한 석기시대 여성을 떠올려보자.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타당한 행동은 그 자리에서 최대한 먹어치우는 것이다.
(중략) 우리는 고층 아파트에 살며 냉장고에 먹을 것이 가득하지만, 우리의 DNA는 여전히 아프리카 초원 위를 누빈다. 그래서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통을 발견하면 한 숟가락 푹 떠서 점보 콜라로 입가심까지 하는 것이다.

                          <사피엔스> 유발하라리, 71쪽

늘 실패하는 다이어트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 세 시간도 어려운 것이 다이어트다. 안 먹기로 결심하는 순간, 먹고 싶은 것들의 향과 맛과 식감이 더욱 확실히 떠오르며 나를 유혹하는 건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어금니 꽉 깨물고 안 먹을 거라고 아무리 경건하게 다짐을 해도 자그마한 초콜릿 한 조각에 처참하게 무너지곤 한. 고지혈증, 비만, 당뇨, 고혈압... 무서운 질병이 식탐로드를 가로막아도 참던 식욕이 한번 창궐하면 기어코 먹고야마는 그 엄청난 욕망은 어디서 나오는 까. 똑똑한 유발 하라리가 말해줬다. 너의 식욕은 어쩔 수 없다고. 그건 태초부터 있었던 거라고.


달걀은 달걀로 갚으라는 말

한자리에서 달걀을 백서른 개나 먹는 아저씨도 보았어요. (중략)
그때 저에게 있어서 달걀은 무엇보다 소중한 거였어요. 그런 달걀이 도시 사람한테 마구 천대받고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걸 보니까, 꼭 제가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처럼 분한 생각이 들었어요.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 박완서

식욕을 없애는 방법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박완서의 책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이라는 책의 한 구절을 보면 도시사람의 게임처럼 되어버린 먹을 것에 대한 속상함이 담긴 구절이 나온다. 주인공 한뫼는 닭을 소중히 키워 낳은 달걀을 판 돈으로 수학여행값을 내곤 했는데 도시에서 닭과 달걀은 농촌의 그것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가 소중한 것들이 업신여김 당하는 것을 보았을 때의 속상함에 동생 봄뫼의 닭을 죽이려고 하고 말았다.


우리의 마음속에 시골뜨기보다는
서울뜨기가 더 잘났단 마음이 있으면
걔네들은 으스댈 테고, 시골뜨기나 서울뜨기나 각각 길들인 환경이 다를 뿐 어느 쪽이 못나거나 잘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으면 결코 걔네들은 으스대지 못할 거다.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 박완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먹거리가 우리에게 오는 과정을 모르고 단지 먹을 것으로만 인식하곤 한다. 농촌사람들도 도시사람들이 바쁜 문명사회에서 먹는 것에 많은 관심과 정성을 들일 수 없음을 이해 못 한다. 서로 다른 환경이 만든 무지일 뿐이다. 결국 같은 음식이 우리에게 와도 그것이 준 의미와 역사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상기된다.


소중한 것들의 이야기가 사라진 자리


도시생활이 번창하니 쌀 한 톨, 오이 한 개, 달걀 한 개, 치킨 한 마리... 먹거리가 우리 식탁에 오기까지의 스토리는 좀처럼 전해지지 않는다. 오늘 내가 먹은 달걀 하나는 시골에서 정성 들여 닭을 돌보고 모이를 주고 새벽녘에 몰래 나와 알을 줍는 누군가의 노고와 그것을 닦고 포장하고 운송하고 배달해 주는 유통의 수고와 달걀을 사서 깨고 다른 재료를 더해 요리를 하는 부모님의 사랑까지 더해진 달걀하나다.


음식 하나에 이렇게 길고 따뜻한 역사를 기억하면 어떨까. 누군가가 정성을 다해 전해 준 선물은 포장지도 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소중하게 다룬다. 한 개도 먹기 아까워 아끼고 아끼다 겨우 하나씩 꺼내먹게 되지 않을까. 요즘은 빠르게 먹거리가 배송되고 클릭하나에 문 앞까지 배달되기도 하니, 이런 최첨단 음식 서비스 속에서 먹거리의 수고스러운 역사를 기억하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꼭꼭 씹으며 꼭꼭 기억한다면


TV프로그램에서 건강한 사람들의 장수비결을 언뜻 들었다.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 30번씩 씹어먹으라고 충고한다. 바쁜데 그럴 시간이 어딨어 콧방귀 뀌고 말겠지만. 실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잘 되어야 안 아프고 더 바쁜 일들도 다 제때에 처리할 수 있지 않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 끼를 제대로 먹는다는 것이 곧 다이어트의 엄청난 비법이 될 수도 있겠다. 무릎이 탁 쳐진다.


밥 한 공기, 반찬 한 줌, 우유 한 컵을 마실 때도 급하게 먹어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밥 한 공기가 내게 오기까지의 과정, 콩나물 무침 하나가 식탁에 올라오기까지의 정성, 우유 한 컵이 내손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며 음식을 곱씹으면 어떨까. 천천히 먹으면 배가 부르다는 느낌이 뇌에 더 빨리 도착해서 과식을 덜하게 된다고 한다. 음식  하나가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기억한다는 것은 천천히 먹으며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될 뿐만 아니라 식비도 줄이고 보이지 않는 고마운 손길도 기억하는 훈훈한 식사시간의 여유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전문용어로 일타삼피 정도~^^

 


리틀포레스트가 내 식탁 위에 

김태리가 주연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도시에서 힘든 생활을 하던 주인공은 시골집에 내려가 먹고살기 위해 재료를 구하고 손질하고 준비하는 시간으로 하루를 채운다. 준비하는 과정이 매우 느리고 충만해서 먹고사는 일이 하나의 예술처럼 숭고하게 느껴진다. 소박한 밥상이라도 멋진 작품처럼 고귀해 보이기까지 한다. 특히나 음식을 먹고 씹고 삼키는 소리까지 고요히 다 전해져서 먹는다는 행위가 소중하고 존중받는 시간으로 온전히 느껴진다. 프랑스 사람들은 식사 한 끼를 위해 두 시간 이상을 쓴다고 한다. 그만큼 중요한 시간임을 국민 모두가 인식하고 기꺼이  시간을 투자하고 즐기는 모습이 새롭기까지 하다.


밥상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풍경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 자리에 인스턴트 음식과 밀키드로 먹는 일이 급하게 해치우는 일로 먹는 일이 대체되기도 한다. 불현듯 함께하는 밥상에서 우리가 잃게 된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때때로 빠르게 먹느라고 충분히 씹지 않는 음식물이 켜켜이 쌓이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미처 이해되지 않은 먹거리들이 내 몸에 쌓여 천천히 자신들을 더 잘 알아주길 기다리는 건 아닐까. 아니면 소소한 대화들로 충분히 곱씹어주길 소화시켜 주길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루 삼시 세 끼를 준비하는 정성이 어마어마한 노동력으로만 기억되는 불필요한 과정이 아니라 하루에 한 번쯤은 간소한 식재료의 주선으로 내 몸과 내 밖을 연결하는 꼭꼭 씹어 대화하는 만남의 장이 되길 기대해본다. 운이 좋으면 다이어트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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