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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Dec 15. 2021

잠깐만요. 씨름부라고요?!

으랏차차 씨름부(1)

 2018년 봄. 학기 초라 여러 가지 업무로 바빴던 때, 한 무리의 건장한 남자아이들이 나를 보며 반갑게 달려온다. 
"선생님. 저희 씨름부 선생님 좀 해주세요!"
"뭐라고. 씨름부?"
"네. 저희가 동아리로 씨름부를 하고 싶은데, 아무도 지도교사를 해주신다고…."
내 비주얼이 씨름에 딱 맞긴 해도 갑작스러운 제안은 너무 황당했다. 얼떨떨하던 차에 씨름부를 해달라고 모인 아이들을 잠깐 쭉 훑어보니 선생님들이 주저하신 이유를 알만하다. 모인 아이들이 대부분 그 학년에서 힘들고 장난꾸러기라고 소문난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다시 물어봤다.
"그래. 너희 진짜로 씨름이 하고 싶어?"
"네!"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근데 왜 하필 씨름인 거야?"
"초등학교 때 해봤는데, 재밌어서요."
"음…. 그랬구나. 알겠어. 그럼 선생님이 할게!"
순식간에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교무실에 들어와 선생님들께 사정을 얘기하니 모두 놀란다."샘. 정말 대단해~! 그거 한다고 했어요?!" 한다.

 요즘같이 떠먹여 줘야 뭔가를 하는 수동적인 아이들이 많은 세상에서 나는 까불이 장난꾸러기들이라 해도 아이들이 이렇게 뭔가 자발적으로 한다고 나서는 적극성이 이뻤다. 그래서 무조건 응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또한, 용기 내 선생님을 구하러 다닐 정도의 노력을 하고 있다면 이 아이들을 믿어도 좋을 것 같다는 왠지 모를 신뢰감이 들기도 했고.

 그런데 막상 일 년에 10회 정도의 수업에 매번 2~3시간가량을 씨름을 익히고 배우는 동아리 시간을 채워야 할 생각을 하니 때늦은 걱정이 다. 마땅한 강사를 구하지 못하면 씨름 동영상이라도 찾아 따라 하기를 시키든지, 내가 같이 모래밭에서 뒹굴든지 해야 할 판. 나는 이처럼 무모하다. 뭔가 정당한 이유와 목적이 생기면 바로 일을 저지르곤 한다. 하지만 나름 나만의 노하우가 있긴 하다. 중요한 결정을 내렸으면 나머지 일은 순서대로 하나씩 단계별로 해나가기. 그러면 아무리 큰일도 작게 쪼개져서 착착 진행된다. 먼저 동아리명부터 정해 본다. 패기 넘치게 '으랏차차 씨름부'. 멋지다. 마음에 든다. 이렇게 무모한 도전이 또 시작되었다.

 멋진 작명의 뿌듯함은 잠시, '그런데 강사를 어떻게 구하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먼저 인터넷 검색창에 전국씨름협회에 찾아 전화해본다. 씨름협회니 강사쯤이야 금방 찾아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으로 통화버튼을 누른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강사 구해줄 있을까요? 여쭤보니 경기도 씨름협회를 연결해준다. 그리고 다시 시흥씨름협회 등등…. 이렇게 몇 단계를 거쳐 어렵게 연락이 닿은 분은 시흥시 씨름협회 사무국장님. 사정을 말씀드리니 흔쾌히 강사를 구해주신다고 한다.

'올레~~~!!, 그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어.'

그리고 잠시 후, 연락이 왔다. 강사님 한 분이 구해졌다고 하신다. 이런저런 서류를 챙기고 강사 채용과정을 모두 마쳤다. 드디어 한고비를 넘긴 것이다.

 그리고 수업 첫날, 학교에 정말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의 주인공 같은 큰 덩치의 어른이 터벅터벅 걸어왔다. 한눈에 봐도 씨름을 하신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속으로 나는 '오케이 저 정도면 외모 점수 합격' 한 참 사춘기에 반항하는 아이들을 제압할 수 있는 비주얼을 갖추신 것에 일단 마음이 놓였다. 수업 전에 이런저런 안내사항을 전해드리고 말씀을 나눠보니 겉보기엔 덩치 크고 어려워 보이시지만 세상 부드러운 큰형으로 아이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실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선생님을 모시고 운동장 구석 모래판에 갔다. 순간 정신없이 멋대로 흐트러져있던 아이들이 '차렷!'하고 모인다. "애들아. 내 이름은 000이고 앞으로 그냥 형이라고 불러. 먼저, 이 모래밭을 다 뒤집어야 해. 삽하고 도구 좀 가져와. 거기 너~!" 선생님이 지목한 아이는 우리 학교에서 힘이 가장 세고 소위 아이들 사이에서 '일짱'이라 불리는 아이였다. '어. 괜찮을까? '하고 아이의 반응이 어떨까 긴장하며 쳐다보는데, 싫은 내색은커녕 "네~!"하고 순한 어린양이 되어 강사님의 지시를 따라 움직인다. '휴~다행이다.' 그렇게 첫 수업이 무사히 끝났다.

 그리고 한 달 한 달 수업이 진행되었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전문성과 친근감이 있는 선생님이 이끌어주시니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싸울 일이 없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역시 애들에게 딱 맞는 선생님은 따로 있어.' 하고 생각한다. 맨땅에 헤딩하듯 수소문해서 섭외한 강사님이 이렇게 찰떡같이 아이들과 맞다니 정말이지 다행이다.

 강사님이 수업하시고 아이들은 열심히 땀을 흘리며 연습을 한다. 나는 구석에 앉아 아파서 못하는 아이들이나 잠시 쉬는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00아. 씨름 재밌어?"
"네. 재밌어요!"
"오. 그래. 다행이다." 말한다.
생각해보면 참 쉬운 일이다. 애들이 원하는 데로 따라가기. 그런데 우리는 가끔 가장 쉬운 이 방법을 버리곤 했었지.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설명을 듣고 씨름판에서 몸을 뒹구는 아이들의 모습이 세상 행복하고 즐거워 보인다.

' 그래, 시작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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