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셋, 삼 남매를 키우면서 때때로 놀란다. 나하고 비슷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아서이다. 딱히 내가 뭘 가르친 적도 없는 데 나랑 비슷한 행동이나 성향이판박이처럼 보이면 너무 신기하고 재밌다.
자신만의 취향이 강한 1호
큰 딸은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 남들이 하는 데로 그냥 따라 하고 휩쓸리지않는다. 좋아하는 스트리머를 보기 위해 새벽 3시부터 대기를 마다하지 않는 대쪽 같은 충성심도 있다. 영어공부는 해리포터로 하고 학교시험과 상관없이 외국어를 즐기는 비범함을 보이기도 한다. 여느 중학생들처럼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고 다양한 외국 영상을 섭렵하며 '두바이여인들'같은 독특한 드라마를 즐겨보고 '피식 대학'을 보고 한국어강의 책을 사고 태국어와 스페인어를 줌수업으로 들을 만큼 다양한 외국어를 얕고 넓게 즐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기보단 자신의 스타일대로 사는 자유인이라고나 할까. 가고자 하는 곳이 있으면 가고 해야 할 것이 있으면 하는 심플한 의사결정을 한다. 외국어를 좋아하고 자기 소신이 강한 것은 딱 나를 닮았다. 그런데 계산이 서툴고 수학을 못하는 것까지 똑같이 닮아버렸네~
눈치가 빠르고 맛을 아는 미식가형, 2호
둘째라 그런가. 삼 남매의 중간에 끼어서 그런지 상황파악과처세가 빠르다. 나랑 다른 점은 나보다 훨씬 영리한 편이라 뭔가 새로운 것을 이해하고 습득하는 능력이 좋다. 가장 닮은 점은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그중에서도 고기엔 진심이다. 고기의 종류를 다 아는 것은 물론이고 익힘 정도, 굽는 방법까지 세심하게 알아차리고 적당한 육즙과 식감을 추구하는 미식가 스타일이다. 그렇다고 양이 적고 절제하는 타입은 절대 아님. 다다익선, 고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해하는 영락없는 중학생이다. 나도 먹는 걸 좋아하는데 그냥 좋아하는 게 아니라 최상의 궁합을 만들어먹는 데 치밀함을 보인다. 떡볶이가 있으면 순대와 튀김을 곁들여야 하고 비 오는 날엔 부침개, 고기반찬엔 야채무침을 빼놓지 않고 소박한 메뉴에 가짓수는 적어도 딱 맞는 음식궁합을 찾아 최대한 맞춰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바쁘다고 대접에 모든 음식을 다 섞어먹는 건 절대 반대. 국은 국그릇, 밥은 밥그릇, 보는 사람 없이 혼자 먹어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 플레이팅에도 최선을 다한다. 먹는 것에 이리 진심이니 늘 한결같은 몸매는 덤이다.
초3 갈등해결사, 친화력 갑! 막내
막내는 사람을 좋아한다. 유치원시절, 막내를 데리고 놀이터를 나가면 웃지 못할 광경을 목격하곤 했다. 막내는 알고 서로는 모르는 친구들을 만나면 서먹한 친구 둘의 손을 잡고 소개를 시켜주며 "we are the world"정신으로 모두를 친구로 만들어 같이 논다. 혹시 누군가가 속상해 울고 있으면 자기가 보다 덩치가 큰 친구도 어린아이처럼 달래서 금방 마음을 녹인다.
00아. 왜 그래? 뭐 속상한 일 있어?
하며 안아주고 위로하며 친구의 마음을 풀어주고 속마음을 들어준다. 어린이집 시절에는 상담을 가면 "**이는 친구들 옷을 다 기억해서 척척 찾아줘요. 눈썰미가 대단해요."라고 선생님이 말씀해주시곤 했다.
실은 나도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직업상많은 아이들의 이름을 외워야 하는데, 명렬표의 번호와 이름으로 기계적으로 외우지는 않는다. 시간이 걸리지만 그 사람의 행동, 말투, 걸음걸이, 옷차림 등으로 그 사람을 기억하고 저장한다. 이렇게 알게 된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는 법이 없다. 멀리서 그 사람의 뒷모습만 보아도 알아차리고 복도 끝에서 누군가의 소리만 들려도 누군지 알아낸다. 그래서 누군가 아프거나 힘들 때도 금방 눈치챈다. 반대로 누군가 연애를 시작했거나 좋은 일이 생겨도 바로 캐치해서 넌지시 물어보면 10명 중9는 맞다.
샘~ 좋아하는 사람 생겼지?
헉! 어떻게 아셨어요?!!!
그래서 자주는 아닌데 중매를 해도 성사율이 높은 편이다. 20대 후반 때 아는 지인들끼리 소개팅을 연결해 주면 애프터(첫 만남 이후 만남)는 100%였다. 그중 결혼한 커플도 몇 있다. A라는 친구를 만나면 B라는 친구와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온다. 그래서 둘이 만나는 자리를 주선하면 느낌이 좋다며 애프터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비슷해 보여도 훨씬 진화된 삼 남매
하고 싶은 게 많았던 나는 두려움도 많아서 20대 어른이 되어도 많은 걸 할 순 없었다.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돈도 용기도 부족했다. 그런데 1호는 다르다. 벌써 가고 싶은 대학 학과도 있고 외국 유학을 기회만 되면 가고 싶어 한다. 아마도 해리포터 영화를 자주 봐서 기숙사학교에 대한 로망이 있고 자주 데리고 다녔던 해외여행의 친근한 기억 때문도 있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뭔가 원하는 일을 할 때 주저하거나 거침없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태도를 보인다. 부럽다. 난 왜 그렇게 눈치를 보고 살았는지.
둘째는 똑똑하지만 게으르다. 나는 덜 똑똑하고 성실하고. 이런 것을 보면 공평하다고 해야 하나. 때때로 나는 늘 뭔가를 추구하고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곤 하는데 우리 2호 아들은 큰 꿈이 없다. 그저 매일 주어진 즐거움을 찾고 그걸로 만족할 뿐이다. 그래서 여유롭고 게으를 수도 있고. 소박한 즐거움을 찾는 것도 일상 속 행복을 찾는 방법이니 아들의 태도를 보면서 때때로 배운다. 나는 늘 뭔가 새로운 것을 찾느라 바쁘고 분주하다. 그런 나를 묵묵히 따라다니며 도와주는 일을 2호가 한다. 구시렁하긴 하지만 필요할 때 지원자가 돼주니 고맙고 또 든든하다.
막내는 나보다 훨씬 더 쾌활하고 애교가 많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표현보다는 행동이 빠른 나는 때때로 오해를 받거나 무뚝뚝해 보이지만 막내는 다르다. 표현이 너무 풍부하다. 엄마가 힘들어 보이면 "엄마, 괜찮아?"를 먼저 외치고 따뜻한 차를 준비해서 깜짝 티파티를 준비해 나를 초대하곤 한다.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다.
아이 셋은 나와 닮았지만 또 다르다. 엄마보다 훨씬 낫다. 엄마에겐 없는 것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업그레이드하고 없으면 없는 데로 즐기며 산다. 어떤 문제에 부딪혀도 포기하거나 멈추지 않고 나아갈 자신만의 해결 방법이 있다. 엄마는 유효기간이 다 된 한 가지 해결책으로 세상과 싸우느라 애쓰고 있을 뿐인데. 아이들은 다르다. 첫째는 무소의 뿔처럼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소신대로 당당하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뜻을 펼쳐 심플하고 편하게 살고, 둘째는 현재에 충실하게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면서 여유롭게 산다. 막내는 사람들과 행복하고 즐겁게 주변의 친구들의 마음을 읽고 걱정되는 마음, 고마운 마음을 그때그때 잘 표현하며 즐거움을 찾는다.
아이들을 이쯤 키워놓고 다시 돌아보니, 다시 배워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삼 남매의 세 가지 맛 삶의 태도를 열심히 배우고 따라 해야할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세상은 변했고 아이들은 진화했고 나는 그대로였으니 말이다. 이제라도 딱딱해진 생각과 고정된 행동을 유연하게 하고, 원래 하던 대로의 편안함을 물리치고 바보엄마가 되어 아이들이 이끄는 데로 편안하고 즐겁게 살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