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통증이 허리부터 다리 바깥 근육을 타고 발까지 이어진다. 앉을 때마다 저릿한 느낌에 죽을 맛이다. 오늘 아침에는 발을 내디뎌 서기도 걷기도 힘들 정도로 심해졌다. 왜 이러지, 왜 이렇게 아프지? 어젯밤에 허리 통증이 있어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는데 그게 잘못되었나? 나이 먹는 게 이래서 무섭나 보다. 이유모를 통증이 하나씩 늘어나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오늘 아침에 아들이랑 영화 <한산>을 보기로 했는데 앉지도 서지도 못해 어쩌나 걱정이다. 통증이라도 가시라고 다리랑 허벅지를 주무르고 잠시 쉬니 살살 걸을 만 해진다. 약속은 약속이니 영화도 보고 점심도 원하는 데로 사준다. 앉거나 설 때 통증은 여전하지만 참아본다. 어쨌든 큰 숙제를 마치고 부리나케 정형외과엘 간다. 엑스레이, 검사가 싫어서 안 가려 했는데 통증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증상을 말하니 바로 엑스레이를 찍으라 한다. 찍은 사진을 보더니 의사가 디스크가 의심되는데 자세히 알려면 MRI를 찍어야 한다고 한다. 아, 심상치 않다. 20~30분에 걸친 힘든 촬영을 마쳤다. 의사가 말한다. 4,5번 디스크가 이상하다고 이 디스크가 빠져나와 신경을 건드려서 하지 전체에 통증이 있었을 거라고 한다. 주사를 맞고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한다. 주사를 맞으려고 누웠다. 척추에 주사를 놓는데 그 통증이 또 말도 못 할 정도다. 애들 낳을 때 맞았던 척추마취 주사 같은 것을 7번 정도 맞은 것 같다. 와. 정말 힘드네.
이 와중에 우리 집 1호님 엄마 언제 오냐고 카톡방에 난리다. 친구랑 놀기로 했는데 엄마는 안 오고 막냇동생만 있으니 발을 동동 구르며 애가 타는 모양이다. 엄마가 병원이고 치료랑 주사를 맞고 있다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참, 가르칠 게 많다. "1호야. 이럴 때는 엄마 괜찮으세요? 하고 안부와 걱정 인사를 먼저 하는 거야." 화내지 않고 하나하나 또박또박 가르친다. 세상에 거저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주사를 맞고 한동안 통증이 있어 의자에 앉아있다 힘겹게 나선다. 수납을 하고 병원문을 나서는데 시골서 갓 따온 토마토가 한 바구니 오천 원. 이런 건 흔하지 않지 하며 나도 모르게 호박잎이랑 늙은 오이까지 한아름 산다. 집에 가는 버스가 오길래 습관적으로 얼른 버스에 탄다. 오른쪽 다리가 또다시 쩌릿하다. 어쩌자고 이렇게 많이 샀을까. 자책해도 이미 늦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버스를 내려 걷는데 아픔이 계속된다. 어릴 때 엄마가 늘 '아이고아이고'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나도 그러고 있다. 우리 엄마도 이렇게 아팠을까. 아, 진짜 늙고 몸이 아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새삼 느낀다.
힘들게 집에 돌아오니 엉망이다. 현관문에서 신발정리부터 바닥에 내팽겨진 가방이며 식탁 위에 널브러진 그릇, 바닥에 떨어진 과자봉지들 나의 손을 기다리는 일거리들이 눈에 훤히 보이지만 허리를 굽혀 내 맘대로 치울 수가 없다. 대신에 짜증 섞인 잔소리가 먼저 튀어나온다.
"엄마, 이제 허리가 아파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주울 수가 없어. 바닥에 어질러진 것들 좀 주워줄래. 엄마 허리가 너무 아파." 애원하듯 말하고 일단 침대에 눕는다. 에어컨을 틀고 한동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30~40분쯤 흘렀을까. 1호가 그릇 하나를 들고 온다. "엄마, 이거!"
참기름 팍팍 죽 한 그릇
참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오. 이게 뭐야. 엄마 먹으라고 한 거야? 1호야. 고마워!" 참기름이 투머치지만 딸의 정성이라 생각하고 김치를 얹어 야무지게 한 그릇 먹어치운다. 죽 한 그릇으로 얻은 감동이 허리 통증도 살짝 잊게 하는 느낌적인 느낌도 든다. 부모는 늙고 병들어가지만 아이들은 한 뼘씩 그들만의 속도로 자라는 것일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효심을 발휘하는 그녀의 밀당을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