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실수

<삼남매 공존일기>

by 화요일
네가 세상에서 제일 잘한 게 뭔 줄 알아?
바로 엄마 딸로 태어난 것!


내가 막내 아이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우리 집 막내는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생겼다. 큰 아이 둘을 연년생으로 키우고 이젠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 찰나에 금쪽같은 내 새끼, 막내가 실수로 생긴 것이다. (막내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몸도 마음도 기운이 없어지는 40대 후반, 나를 웃게 하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막내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아침에 일어나면 나를 찾는 유일한 존재, 애들보다 먼저 나오는 출근길에 도시락을 싸놓고 나오면 "엄마 도시락 감사해요."라는 사랑스러운 문자를 먼저 보내는 것도 막내다. 엄마, 아빠가 소원해진 것 같으면 "우리 가족 다 같이 티타임 해요"라고 애교 넘치게 외치는 것도 막내고, 내가 울거나 힘들 때도 먼저 알아차리고 휴지를 들고 와 닦아주는 것도 막내다.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라는 말은 우리 집 막내를 두고 만든 말 일 것이다.


언니, 오빠는 각자의 일정으로 바쁜 오늘, 막내만 데리고 나들이를 간다. 저 멀리 인천까지 가는 길이지만 막내가 들려주는 귀에 익은 아이브의 노래와 최근 새로 사귄 남자친구이야기를 들으며 가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초3이 벌써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에 애교쟁이 막내를 빼앗긴 것 같은 서운함도 살짝 느꼈지만 그것도 잠시, 늘 생중계해주는 알콩달콩 연애이야기에 서운함은 사라지고 주말드라마처럼 그들의 연애사에 내가 더 관심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남자친구와 손까지 잡았다는 얘기에 나까지 덜컹 "심쿵!"하고 말았다.


줄줄이 사탕으로 내리 아이 셋을 낳았다. 아이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하자 다짐하면서도 아끼는 마음은 같아도 표현과 정도는 다 다르게 나오는 건 어쩔수가 없다. 중학생 큰 애들은 늘 불만에 툴툴거리고 청개구리처럼 반대로만 행동하는 통에 늙은 엄마가 대응할 기력도 의지도 점점 사라지고 없다. 반대로 막내는 있는 그대로 사랑을 주면 그대로 받고 또 나눠주기도 하니 변명같지만 막내가 제일 이쁜 건 감출래야 감출 수가 없다. 어젠 약속이 있어 저녁 늦게 들어왔는데 언뜻보니 책상 위에 막내랑 비밀리에 주고받았던 지금은 뜸한 우리만의 비밀 수첩이 놓여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펼쳐봤다.


막내의 비밀편지

역시 역시나다. '정말 이쁜 게 이쁜 짓 만한다.' 잠자는 아이의 엉덩이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게으르고 늙어버린 엄마덕에 언니, 오빠 때보다 늦게 한글을 떼고 글씨공부도 따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신통하게도 어느 순간 한글을 읽고 글씨는 또박또박 잘 쓴다. 게다가 책은 제일 덜 읽었는데도 글은 또 셋 중에 제일 잘 쓴다. 엄마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이쁜 것 투성이다.


이젠 훌쩍 자라 어른 아닌 어른처럼 세상을 냉철하게 관찰하시는 1호 큰언니는 내게 걱정 어린 잔소리를 한다.


아니, 엄마. 3호 책도 안 읽고 독후감도 안 쓰는데 어떡할라고 매일 떼쓰는 막내편만 드는 거예요?


어린 시절, 늘 책을 쌓아두고 같이 읽고 아빠의 특훈으로 독후감까지 썼던 1호는 애교로 위기를 모면하며 빈둥거리는 막내가 꼴 보기 싫기도 할 것 같다. 참으로 불평등한 모지리 엄마는 집에 오면 아무것도 안 하고 막내만 껴안고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이 1호는 얼마나 눈에 가시였을까.


테디베어샵 구경삼매경인 막내

오늘도 전시를 보고 우연히 들른 테디베어샵에서 이쁜 보라색 곰돌이에 마음을 뺏긴 막내가 떼를 쓰니 못 이기는 척 이쁜 곰 한 마리를 사주고 말았다. 잠시 후, 1호 언니가 들어오면 잔소리 한 바가지 듣겠지만.

이렇게 해맑게 웃으며 행복해하는 아이의 모습을 어찌 뿌리칠 수 있단 말인가. 아이 셋 중 막내를 키울 때는 그 흔한 독서법도, 교육법도 고집하지 않고 막내가 하는데로 따라다니며 게으른 육아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더 편한 건 기분 탓일까. 10년 전 그날밤, 엄마아빠의 택일 실수로 잉태된 딸이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이쁘고 사랑스러운 건 오류일까. 축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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