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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Dec 09. 2021

김칫국 아니, 김치향이라도 맡아보겠습니다.

사. 사. 모 공존 일기

우리 집에서 가장 어려운 분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당연히 중1인 1호 님이다. 태어나서 2돌이 되기도 전에 연년생 남동생을 보고 이것저것 늘 나누어 쓰고 뭘 하든 비교하거나 경쟁이 되는 상황에서 컸다. 그나마 그때는 엄마, 아빠가 따로따로 1호와 2호를 1:1 마크를 해서 외로움이라도 덜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갈 때쯤 또다시 6살이나 어린 막냇동생이 태어나면서 그녀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 거다. 1호에게는 혼자 온전히 독차지하는 부모의 사랑은 언제나 부족하고 목말랐던 것.

올해 막내가 초1이 되어 엄마는 쉬지만, 막내는 아직도 엄마 껌딱지로 필살기인 애교로 엄마 사랑을 독차지한다. 그것도 꼴 보기 싫은데 만사가 불만인 사춘기까지 와서 1호는 항상 억울함 투성이다. 근데 그녀는 다행히도 나름의 선호를 확실히 밝히는 성격. 트와이스와 해리포터를 좋아하고 태국이라는 나라를 좋아하며 아로마 오일, 즉 향기를 좋아한다. 그래도 자신만의 취향과 색깔이 확실한 1호가 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생들만 생각하고 이타적이고 양보하기만 하지 않고 자신만의 것이 확실한 모습이 더 아이다워 좋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한 의사 표현을 하는 그녀가 부럽기도 하고.

방학을 맞이해 많던 잠이 더더욱 많아져 걱정스러운 차에 어느 날 아로마세러피를 혼자 해보겠다고 필요 물품 링크를 십몇 개를 깨톡으로 보낸다. 하지만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물품만 사면 나중에 무용지물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래서 며칠에 걸쳐 근처에 배울 만한 아로마세러피 수업을 알아봤다. 혼자 듣는 수업이고 재료비나 강의료가 비싸서 큰 비용이 든다 해서 잠시 주저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나만의 진로와 개성을 찾아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하고 사춘기 소녀가 본인이 좋아하는 걸 하면 더 행복해고 가족들에게도 더 친절해질 거라고 기대를 하며 과감한 투자를 했다. 그래도 공부를 시작하면서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수업을 열심히 듣고 매일 후기를 정리해서 가족밴드에 올려주기로~.' 오~그런데 이게 웬일!'  귀찮아서 하지 않을 줄 알았으나 매일 정성스럽게 후기를 올린다.

'아, 좋아하는 걸 하니, 다르구나!'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는다. 한번 들어도 외우지도 못 할 향 이름과 약품 이름도 줄줄 말하고, 방학이라고 여태 늦잠을 늘어지게 자더니 수업시간에 맞춰 시간 되면 재각 재각 일어나 준비하고 나간다. 놀랍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다.

실은 요즘 엄마들을 만나면 애들이 뭘 좋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종일 휴대전화만 들고 시간만 보낼 뿐 도대체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하다고. 그냥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겪어보시라~중1 아이들에게 "뭐하니? 뭐 하고 싶니?"라고 하면 무슨 대답이 나오는지…. 무시하거나 알 수 없는 방언을 하기 일쑤인데, 이 정도의 열정을 보인다는 건 거의 센세이셔널한 사건이다. 게다가 한 가지 더 놀라운 건 그녀가 나에게도 직접 만든 향수를 선물한 것이다. 향수 이름도 본인이 직접 생각해내서 짓고 그에 맞는 향수 향을 골라 조합하여 만든 것이라 한다.

작품명: 숲 근처 노을진 바다

' 아 드디어 우리 딸이 엄마의 노고를 알아주는구나.'감동이 밀려온다. 기대가 크지 않아서 그런지 더욱더 기쁜 맘이 커진다.
"1호야. 고마워. 엄마를 위해 만들었구나"
"아니, 00이 줬는데 걔가 필요 없다 해서 엄마 준거야"

'아~~ 그런 거야.... 그랬구나.' 충격이 크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긍정적으로 내부의 충격 완화장치를 작동시켜본다. '그래~. 그냥 버리는 것보다 재활용이 나아. 응. 그래. 김칫국, 아니 김치향이라고 해도 맡아보니 좋네. ' 아직도 내 방 한구석에 포장도 그대로인 그녀의 향수는 내 맘대로 해석한 기분 좋은 김칫국 향기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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