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중학교 다니는 큰 애들의 기말고사 기간이다. 둘째는 중2로 중학교에서 첫 지필고사를 치르게 되었다. 학교를 마치고 또다시 학원으로 등원하는 대한민국 중학생의 비슷한 루틴에 우리 아이들도 올해부터 본격 투입되었다. 월/수/금 수학, 화/목/금 영어, 토요일은 과학. 이렇게 풀패키지로 아이들을 옳아메니 그들의 스트레스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제1막. 옴짝달싹할 수 없는 언니의 사랑
야. 이*연. 방이 왜 이 꼴이야. 독서록은 썼어? 이렇게 공부를 안 해서 어쩌려고. 쯧쯧
언뜻 들으면 엄마가 아이들 잡는 잔소리 같지만 사실은 하교한 언니가 막냇동생에게 던지는 말이다. 큰 딸은 수시로 드나들며 동생은 원하지도 않는 걱정과 사랑이 담긴 조언(?)을 쉬지 않고 해댄다. 부담스러운 언니의 과격한 사랑에 동생은 늘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덕분에 막내는 엄마를 더 찾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언니보다 6살 아래인 막내는 늘 아기 같은 특별대우를 받는다. 집청소도 열외, 공부도 열외. 애셋을 키우다 보니 변명 같지만 육아에 대한 열정도 체력도 아래로 내려갈수록 시들해지고 말았다. 엄마한테 딱 달라붙어서 공부도 안 하고 애교나 떨며 빈둥거리는 동생이 큰 언니에게 이쁘게 보일리가 없다. 가뜩이나 시험 전 스트레스가 최고로 올라가있는 상태인 데다가 왠지 모르는 분노가 차오르는 불안한 사춘기라 화풀이 대상은 가장 만만한 초3 막냇동생이 된 것일까.
아니. 언니는 왜 소리 지르고 그래. 좀 이따 다 할 거야. 왜 째려봐. 엄마~~
다다다 멀리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와락 껴안고는 큰 애한테 소리친다. "좀 좋게 소리안치고 화내지 않고 동생한테 말하면 안 될까? 왜 그렇게 닦달하듯 오자마자 잔소리를 하고 그러는 거야?"
아니. 엄마는 왜 나한테만 그래.
고정멘트다. 그 한마디를 남기고 그녀의 방으로 사라졌다.
제2막. 엄마는 치킨집 사장이 아니란다.
엄마 치킨!
이것은 둘째 아들이 왔다는 소리다. 대화의 시작과 끝이 늘 치킨이다. "아니. 치킨 말고 '다녀왔습니다.' 하면 안 될까?" 그래도 답은 치킨이다. 이쯤 되면 우주최강 고난이도 대화 상대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맥락과 주제가 있는 대화를 하고 싶다.
학원 가기 싫어.
한 단계 레벨업이다. 이 말에 적절한 대답은 무엇일까?
1번. 응. 그래 하루 쉴까?
2번. 우리 아들 힘들구나. 그래도 시험이 얼마 안 남았으니 힘내서 가자.
3번. 난 아무 말도 못 하겠는데 네가 결정해.
1번 답은 아이가 가장 듣고 싶은 말, 2번 대답은 아이를 수용하고 설득하는 말, 3번 답은 아이에게 결정을 미루는 말. 근데 나는 무슨 답을 했을까. 3번을 말하고 말았다. 1번을 말하면 "앗싸. 엄마가 가지 말랬다." 하고 말할게 뻔하니 패스. 2번이 내가 생각하는 정답이지만 아들의 대답은 "싫은뒈~"로 대략 예측 가능 또 나의 분노가 차올라 이불 킥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니 패스.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정답은 알면서도 입으로 내뱉기는 힘든 내적 갈등을 유발하곤 한다. 아들은 결국 털레털레 학원가방을 챙겨나갔다.
제3막. 나시고랭은 사랑을 싣고
2% 부족한 엄마의 표현과 거꾸로만 가는 사춘기 아이들과의 대화는 그 끝이 늘 걸쩍 지끈하다. 힘들게 공부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알면서도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하는 엄마는 돌아서면 미안하고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과는 반대로 분노를 유발하는 사춘기 아이들의 언어에화를 참고 다정하게 말하기는 정말 힘들다. 그래도 아이들의 기분을 좋게 하는 비장의 카드는 있었으니 냉장고 문을 열고 마법의 재료들을 꺼내 신묘한 처방을 준비한다. 동남아 음식을 좋아하는 큰 딸의 취향에 맞게 나시고랭 소스를 꺼내고 고기를 좋아하는 아들의 식성에 맞게 닭가슴살도 냉동에서 꺼내 놓는다. 갖은 야채와 고기를 넣고 휘리릭 먼저 볶고 소스와 밥을 넣고 한번 더 볶은 뒤 달걀 반숙 프라이를 보기 좋게 위에 얹는다.
큰 딸, 나시고랭 볶음밥 먹자.
빛의 속도로 "네!" 대답한다. 최근 듣기 힘든 한마디. 게다가 미움과 분노가 사라진 가벼운 목소리라니. 이 한마디에 감동하는 내 신세도 참 처량하지만 금방 기분이 풀린 딸아이의 모습에 바보같이 마음이 놓인다. 덩치는 어른보다 큰 데 그 안에 어린이가 있다. 딸은 수저를 들어 노릇한 달걀노른자를 탁 터뜨려 달짝지근한 볶음밥에 슥슥 비벼 먹는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공부, 동생, 엄마 스트레스도 함께 삭삭 비벼 날려버렸으면 좋겠다. 볶음밥 한 그릇에 소박한 소원 하나 빌어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