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라는 말의 뜻은 같이 모여 밥을 먹는 사이라는데 최근에 우리 식구는 같이 모여 밥 먹기가 힘들어졌다. 특히나 중학생이 된 큰 애들 둘과는 머리 맞대고 앉아 밥 먹기도 힘든 요즘이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학원 시간에 맞춰 서로 다른 시간에 왔다 갔다 하는 데다가 각자 취향껏 먹고 싶은 걸 해 먹고 후다닥 나가고 만다.
라면을 두 개를 꺼내놓고 냄비물을 끓이는 아들에게 너무 많지 않냐고 한 마디 하면 "아닌뒈~ 안 많은 뒈~" 세상 제일 얄미운 입을 하며 놀리듯 말하고는 제멋대로 라면을 끓여 자기 방으로 휙 들어가 버린다. 그 뒤로 릴레이를 하듯 큰딸이 들어온다. 냉장고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냉장고 속 음식을 스캔한 후 밥통문을 연다. 커다란 대접을 꺼내 밥을 푸고 마음에 드는 반찬을 그득 쌓아 또 방에 들어간다. "밥이 너무 많은 거 아니니? 대접이 아니라 밥그릇에 먹으.."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사람이 없다. 나 혼자 뭐 하는 거니?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려면 여러 가지로 참선할 일이 많다.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에 익숙한 나이지만 세상 이런 푸대접은 처음이다. 밥 해주고 키우고 돈 주고 무시당하는 이런 부당대우는 어디에 민원을 넣어야 하나. 그저 빈 한숨에 육두문자 혼잣말에 가끔 진짜 열받으면 억울함을 토로하는 카톡문자 몇 줄이나 가족 단톡방에 덩그러니 보내놓기나 할 뿐이다. 읽음을 표시하는 숫자는 줄어드는 데 답이 없는 상황까지 보면 아. 정말 참을 수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1000% 실감하고 만다. 땅굴 파고 지하 100층으로 내려가는 기분이랄까.
충분한 수면으로 에너지가 완충된 아침에는 제대로 된 밥이라도 먹여보려고 돈가스도 튀겨보고 갖가지 야채를 총총 썰어 접시에 이쁘게 담아본다. 서너 번 부르니 겨우 나와 앉는 아들은 고기만 깔끔히 먹어치우고 샐러드는 까치밥 마냥 그대로 내놓고 당당히 일어선다. 그 뒤로 "야채도 먹어야지." 말해봐야 이미 사라지고 없다. 허망한 독백으로 흩어지는 소리가 될 뿐. 남은 샐러드를 내 접시에 와르르 쏟아놓고 씹어먹는데 문득 쓸쓸함이 몰려온다.
오후 2.3시,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린다. 밝은 목소리로 막내가 묻는다. "엄마 어디예요?" 내 안부를 묻고 관심을 갖는 해맑은 목소리에 우울한 기분이 싹 사라진다. 놀이터에서 놀고 들어온다는 말에 알겠다고 하고는 냉장고 문을 열어 저녁을 준비한다. 이것저것 야채를 씻어내고 샌드위치를 만들 준비를 한다. 저녁때가 되니 상기된 목소리로 막내가 들어온다. 준비한 재료를 내어놓고 마주 앉아 자꾸만 높아지는 내 멋대로 샌드위치를 만들어먹는다. 그리고는 해맑은 얼굴로 함박 웃으며 막내가 말한다.
아니, 엄마 이거 너무 맛있는데. 엄지 척!
편애는 선택이 아니라 자동반사였다. 이렇게 달콤한 말을 듣고 꼴딱 넘어가지 않을 강심장이 어디 있으랴. 엄마 귀에 대고 야채 씹는 소리를 ASMR까지 들려준다. 아삭아삭 씹는 그 소리보다도 막내가 엄마와 함께 하려 하는 그 모든 행동이 이쁘다. 소스가 묻고 야채가 쏟아져도 와그작와그작 야무지게 훔쳐가며 벌써 샌드위치 한 개를 뚝딱 먹어치운다.쓸쓸했던 내 마음도 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