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식욕이 왕성한 시기의 사춘기 아이들 둘과 먹을 것으로 티격태격하는 긴긴 방학이 지나가고 있다. 아이 셋 중에 큰 아이 둘은 비만으로 관리가 시급하다. 점심때 자기 밥을 챙긴다며 냉면기에 밥을 절반 국을 듬뿍 올려 식탁에 앉는 큰 딸, 놀라서나도 모르게 한마디 하고 만다. 딸은 "뭐 어때, 두부가 많아서 그래. 두부는 살 안쪄."하면서 더욱 세게 반항을 한다. 나는 '코끼리도 풀만 먹는다.'말하려다가 참았다. 며칠 전 늦은 저녁에 선물로 받은 치킨을 아들한테 줄까 말까 고민하다 안 먹는 게 낫지 않냐고 한 마디 했다가 급분노해서 "안 먹어." 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렸다. 그 후 아들에게 엄마는 세상 나쁜 엄마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먹는 것=사랑, 기쁨"이라고 입력된 아이들과 긴긴 방학 동안 매일 세 끼니를 가지고 실랑이해야 한다는 것은 엄마로서 애정과 사랑에 도전해야하는 난이도 최상의 고통스러운 육아다. 먹을 것을 마음대로 못 먹는 분노와 노여움을 온전히 나를 향해 품고 있는 아이들과 힘겹게 대치중인 이 와중에 아빠가족발세트를 들고 밤9시에 나타난 것이다. 기분좋게 사온 그족발 하나에 그간 모든 노력은 와르르 보기좋게 무너졌다. 실은 내가 무너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춘기 아이 둘과 쇠약해지는 40대 엄마의 번아웃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다들 힘이 들었을까. 아님 내 마음이 약해져서일까. 아이들을 열심히 키우고 기다리면 엄마를 먼저 챙기고 측은하게 여기며 자진해서 움직이는 자발성이 나올 때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행동이나 마음가짐을 억지로 밀어 넣어 가르치려 하지 않았던 내 잘못이었을까. 모르겠다.
지난 10월 갑상선암이 걸렸다고 아이들에게 말했을 때 삼 남매의 반응은 달랐다. 각각 중2, 중1인 아이 둘은아무렇지도 않은 듯했고 막내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엄마를 위로했다.
막내가 학교과제로 쓴 카드
긴 디스크치료에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며 두고 간 아이들은 그 나름대로 밥도 챙겨 먹고 학원도 시간 맞춰가면서 씩씩하게 엄마의 빈자리없이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실은 엄마 잔소리 없는 그 자유를 즐기는 것도 같은 느낌적인 느낌도. 그렇게라도 잘 지내는 것이 대견해 어떤 요구도 불만도 하지 않고 칭찬만 했다. 그것도 부족했었나. 아이들은 엄마의 아픔에 전혀 공감 못하는 것처럼 보였고 아빠가 시키기 전엔 걱정도 관심도 표현하지 않았다. 아픈 시간이 길어지니 약해진 마음에 나또한 서운함이 쌓여갔다. 삐치지말고 상대의 감정과 상태를 읽고 위로와 지지하고 표현하는 방법도 가르쳐야겠다 싶어서 엄마가 받고 있는 치료, 상태, 기분등을 가족 단체카톡에 자세히 알리며 엄마를 응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럴 때는 엎드려 절받기를 하듯 감정을 뺀 알파고 같은 말투로 "엄마 괜찮아요?" 어색한 통화를 한두번 하곤 했다. 사춘기아이들이 이게 어디냐. 엄마위로도 엄마가 셀프로 가르쳐야 하는 씁쓸함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부모노릇일테니.
아이들이 늘 이런 건 아니었다. 애들이 어렸을 땐 서로 엄마옆에 눕겠다고 해서 결국 큰 애들을 양쪽 팔에 끼고 책을 읽고 재웠다. 주말이면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보고 듣고 경험하는 나들이도 하고 즐겁게 지냈고. 초등 저학년 때까진 조잘조잘 자기 생각도 얘기하고 엄마를 끔찍이 생각하는 이쁜 감정부자들이었다.
사춘기가 되고 울퉁불퉁한 감정표현이 많아지면서 엄마에겐 유독 화를 내고 짜증을 더 냈다. 엄마가 편해서 그러려니 생각하고 격한 감정이 잦아들고 짜증이 가라앉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오지 말라고 하면 다가가지 않고 기회가 되면 얼른 칭찬하고 도움을 주면 "고맙다. 감사하다." 표현하며 도망가는 아이들 등뒤로 "사랑해"라고 말하곤 했다. 언젠가 아이들도 그들의 사랑을 나에게 표현해 줄 날을 기다리면서. 그런데 이정도의 사랑표현도 부족했었나. 시간이 지나도 엄마에 대한 불만은 그대로였고 불편함은 즉시 표현하고 격렬했으며 분노도 화도 거침이 없었다. 반대로 엄마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무심하고.
족발을 뜯으며 세상 순한 아이들이 되어 고분고분해지는 모습을 본다. 갑작스러운 배신감이 몰려온다. 족발하나가 엄마의 노력과 사랑보다 낫네. 그렇게도 엄마에겐 야박했던 웃음과 따뜻한 감정이 족발하나에 터져나오다니.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엄한 순간에 울컥해버리고 만다. 요즘 내 몸이 최근 갑상선 수술 이후로 더욱 가라앉고 몸이 힘들게 되니 인내심도 바닥이 났는지 감정 조절에 실패하고 말았다.
엄마가 암에 걸렸다 해도 괜찮냐 묻는 사람이 없고 혼자서 병원에서 치료하는 동안에도 자진해서 안부를 묻는 사람이 없어. 그래서 엄마가 스스로 어떤 상태인지 구구절절 설명하고 도와달라고 요청을 해도 아무런 대답도 진심어린 위로도 없고. 내가 누구야? 남이야? 너희들을 낳고 키운 엄마라고.
결국 폭발해 버렸다. 목놓아 울었고 했던 말을 반복했다. 안으로 미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이 있을지는 모르나 표현하지 못하는 아니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과 더디게 자라는 공감능력에 화가 나고 지쳐버렸다. 엄마는 아무리 아파도 버릇없고 무심한 아이들을 무한정 먼저 헤아리고 품어야 하는 건가.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엄마가 못 된다. 그럴 수가 없다. 아픈 엄마에게 자기가 더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아이들은 이제 나보다 덩치가 더 커버렸고 힘도 더 세졌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맞벌이로 종종걸음 치며 아등바등 키워낸 지난 세월을 들먹이며 지금은 엄마가 너희를 도울때가 아니고 너희가 엄마를 도와줘야 할 때라고 목이 터져라 울며불며 소리 지르고 말았다. 내 설움인지 분노인지 억울함인지 모를 말들을 엉망진창 내뱉고는 훌쩍이며 잠들고 말았다.
이른 아침, 진짜로 목이 터졌는지 어쨌는지 수술한 부위가 땅기고 따갑고 찢어질 듯 아프다. 결국, 새벽에 깨고 말았다. '족발 하나에 그렇게 감정적일 일인가?'뒤늦은 후회와 철부지 엄마가 된 창피함이 각성된 내 머리를 덮는다. 물 한 모금에 엄마란 사람은 어때야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답을 찾을 수 없고 비슷한 말들만 빙빙 맴돈다. 좋은 엄마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애썼던 시간과 세상이 말하는 좋은 엄마 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내 자식들에게 만들어주었던 세계는 언제쯤 아이들의 머리를 타고 가슴으로 와닿게 되는 걸까. 족발 하나에 시작한 허탈한 마음이 이른 새벽, 먹먹한 마음과 불타는 목의 통증 속에서 서서히 밝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