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선물세트 같은 너.

사. 사. 모의 공존일기

by 화요일
엄마, 오늘 올 거야?
진짜 나 날아갈 것 같아~


엊그제 긴 입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말에 막내딸이 한 말이다. 집에서 나의 존재를 열렬히 맞이해 주는 사람은 딱 하나, 늦둥이 막내딸뿐이다.


막내는 찬 바닷속에 꽃다운 아이들이 한없이 가라앉았던 그 해에 태어났다. 막내가 생겼다는 기쁜 소식과 많은 아이들이 허망하게 사라졌다는 소식을 동시에 접한 나는 내 안에 들어온 생명이 더욱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연년생인 큰 애들 둘을 정신없이 키워내고 한 템포 쉬어가려던 딱 그때 손님처럼 막내가 왔다. 그때 내 나이는 30의 후반, 40대를 코앞에 두고 맞은 아기였다. 몸이 확실히 달랐다. 큰 애들을 낳고 키우던 때보다 더 피로하고 더 힘든 것 같은 느낌은 지우기 힘들었다.


그래도 막내딸은 내게 엔도르핀 같은 존재였다. 덤덤하고 건조해서 감정 표현에 서투른 우리 집에서 막내는 애교쟁이, 눈치끝판왕으로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엄마, 아빠가 미묘한 갈등이 생기는 것 같으면 "우리 티타임 하자!"며 부부와 언니, 오빠를 소환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엄마가 속상해하며 울면 휴지를 찾아와 눈물을 닦아주고 식당에 가면 허리 아픈 나를 위해 내 신발을 들어 신발장에 넣어주는 센스까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쁜 딸이다.


퇴원을 해서 집에 와서 짐을 풀기도 전에 딸아이는 얼른 자기 옆에 앉아보라고 내 손을 잡아당긴다. 자기가 배운 마술을 보여주겠다고 작은 소품들을 챙겨 나온다. 작고 이쁜 손으로 뭔가 꺼내보였다가 숨겼다가 짜잔 하고 마술을 보여준다. 너무 귀엽다.


한동안 침대에 같이 누워 뒹굴거리다 도저히 밥을 할 기운은 나지 않아 지인이 선물해 준 죽선물쿠폰을 사용해 저녁식사를 배달주문한다. 초인종이 울리고 음식이 배달되자 막내는 다람쥐처럼 빠르게 문을 열고 음식을 받아온다. 식탁에 펼쳐놓고 죽을 먹고 있으려니 세상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딸이 말한다.


엄마랑 이렇게 밥 먹으니까
너무 행복해.
이게 얼마만이야~



이 이상 바랄 게 있을까. 존재자체로 참 사랑스러운 아이다. 맛있게 밥을 먹고 소화시킬 겸 거실을 왔다 갔다 하고 있으려니 가지고 있던 돈을 다 챙겨 나와서 묻는다.


딸: 엄마,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엄마가 좋아하는 오징어 땅콩 사 올까?

나: 아니, 엄마 밥 먹어서 안 먹어도 돼.

딸: 그래도 생각해 봐. 나 돈 있단 말이야

나: 음~그럼 라면 사죠. 내일 점심때 같이 먹자

딸: 응. 그래. 좋아~


그러곤 후다닥 뛰어나가서 라면을 사 온다. 그런데 라면만이 아니다. 정성껏 쓴 편지까지 같이 내민다.

아. 어쩜 이리 사랑스러운지... 안 이뻐할 수가 없다. 병실에서 홀로 싸웠던 힘듦이 저 멀리 날아가는 기분이다. 내가 어떻게 이런 딸을 낳았는지... 감격스럽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엄마, 여기 발 담가보세요.
내가 만든 비누로 마사지해 줄게요.


이쁜 딸의 세족마사지 시간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발을 조물조물 마사지해 준다. 미끌미끌한 비누의 촉감과 따스한 손의 감촉이 어우러져 그간 피로가 싹 가신다. 그리곤 스케치북을 가지고 나온다.

존재 자체가 귀한 내 사랑스러운 종합선물세트,
엄마가 더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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