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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천개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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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Nov 01. 2023

포기하지않음에 대한 감사

뜬금없는 사랑고백에 기분좋은 날

자. 오늘 8과 단어시험이다. 모두 준비~


즐겁고 재밌는 단어공부가 끝나면 마무리 활동으로 단어퀴즈를 본다. 한 과에서 배울 단어와 표현을 30개 정도 추려서 빈칸 채우기 형식으로 간단히 보는 시험이다. 40개의 단어를 먼저 제시하고 충분히 연습하고 다양한 활동을 한 터라 조금만 더 연습하면 가뿐하게 20개 이상은 맞을 수 있는 정도인데.. 그것조차 버거운 아이들이 있다. 한 시간, 아니 두 시간씩 외워도 단어 5개를 외우기 힘들고 5번, 10번, 20번을 쓰고 또 쓰며 외워야 겨우 한 두 개의 단어를 더 암기할 수 있는 느린 아이들.


40개의 단어를 10번씩 써오는 아이들

30명의 아이들이 한 교실에 있으니 느린 아이들을 다 챙겨주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다. 그래서 별도의 숙제로 10번씩 틀린 단어를 써오도록 숙제를 내주곤 하는데, 아이들이 그 숙제를 찰떡같이 알고 해 온다. 영어단어와 뜻을 공책에 가지런히 써서 들고 교무실 문을 노크한다. 다른 아이들은 한 두 개쯤  틀리고 가뿐하게 3번씩 쓰고 끝날 숙제지만 이 아이들은 적어도 몇 시간을 꼼짝없이 앉아 썼겠지. 그 노력과 시간을 알기에 포기하지 않은 아이들이 고맙다. 그리고 안쓰러운 마음에 물어본다.

공부해도 잘 안 되는 거지?

네...

그래. 그래도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숙제해오고 멋져. 수고했어~
(곰돌이젤리 슬쩍)


한 문장, 한 문장 모아 쓴 10 문장

영어기초학력부진아 수업, 학기 초 진단평가결과로 영어실력이 안 되는 아이들은 원하면 방과 후에 수업을 개설하여 보충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고맙게도 영어수업을 선택한 아이는 4명, 그 중 하나는 중도 포기, 나머지 3명과 매주 한 번, 한 시간씩 수업을 한다. 초등학교 문법책을 하루에 한 챕터씩 풀어오는  숙제, 학교에서는 숙제검사를 하고 간단한 테스트를 한다. 각자 틀린 문제를 고치고 보충 설명을 하면 한 시간이  훌쩍 간다. 몇 주전부터는 글쓰기 수행평가 준비를 한다. 주제는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추천하는 글쓰기> 각자 좋아하는 책, 영화, 음악 중에서 한 작품을 선정해서 그 작품에 대한 정보 3가지, 감상이나 의견을 2 문장이상 포함한 글을 10 문장으로 써야 한다. 초등 수준의 문법도 안된 아이들이라 2.3주 전부터 한 문장씩 아이들이 쓰고 싶은 문장을 찾아 적고 고쳐주고 쉽고 간단한 문장을 만들도록 돕는다. 기초가 없어 느리지만 열심히 한다. 3명씩 돌아가며 개인지도를 하고 연습했더니 실전인 글쓰기 수행평가에서 눈에 띄는 향상을 보였다. 그중 한 명은 무려 만점을 받았고. 뿌듯하고 고맙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연습했던 아이들이 어찌나 대견한지.


얘들아. 너희들이 영어문장을
10 문장이나 썼어. 정말 대단하지!
이게 다 누구 덕분이지?

선생님이요~~

ㅋㅋ그렇지.  근데 그거 알아. 샘이 아무리 노력해도 너희들이 열심히 할 마음이 없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이게 다 너희들과 샘이 다 같이
 노력한 값진 결과다. 고생했어!



사랑고백으로 가득 찬 답안지

수행평가를 볼 때는 아이들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답안지는 절대 빈칸으로 내지 말고 정말 간단한 문장이라도 써서 내라고. 그래도 한 반에 한 두 명은 안타깝게도 백지를 내거나 이렇게 뜬금없는 사랑고백을 잔뜩 적어낸다. 남편에게도 받아본 적 없는 세상 달달한 멘트에 피식 웃음이 난다. '참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다. 공부는 못해도 앞으로 세상 잘 살겠네.' 혼잣말을 하다 뒷자리 수학선생님에게 보여주니 자기도 답안지에 러브레터  받았다고. "에잇. 요 녀석 전 과목 샘한테 다 썼구먼. 이 정성으로 공부했으면 참 좋겠다." 한 마디 던지니 교무실에는 웃음이 퍼진다. 공부는 못해도 선생님한테 애교 섞인 아부편지라도 보내는 순수한 마음이 고맙다. 한 줄이라도 영어 비슷한 문장이라도 써주니 또 고맙다.


사랑고백이 담긴 스윗한 답안지


매일 학교에 오는 평범하고 또 대단한 일에 대하여

하루에 6, 7시간이나 꼼짝없이 앉아, 하루가 다르게 크는 긴 다리도 몸도 삐져나오는 작은 책상, 딱딱한 의자에 앉아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 답답하고 네모난 교실, 제한된 공간에서도 늘 밝게 웃는 아이들. 시험진도에 쫓겨 한 시간 꽉 차게 수업해도 늘 밝게 나를 맞아주는 아이들, 수업시간에 딴짓히다 발표순서를 놓쳐서 벌칙으로 장기자랑을 하라 해도 "싫어요" 하지 않고 아이유의 3단 고음 <좋은 날>을 멋지게 불러주는 사랑스러운 아이들. 아파도 힘들어도 힘내서 아침마다 학교에 오는 고맙고 또 평범한 아이들이다.


수행평가날, 누구 하나가 아파서 못 오면 그 아이들을 나중에라도 챙겨서 시험을 보게 해야 한다. 근데 그런 아이들 숫자가 한 두 명이 아니라서 그 모든 아이들을 챙겨서 시험을 보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반에 한 두 명만 빠져도 6반이니 금방 10명이 넘고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 찾아다니느라 진이 빠지곤 한다. 그래서 더욱 매일 무사히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이 고맙다. 그냥 평범하고 조용한 아이들이 참 대견하다. 교사의 사기가 떨어지고 민원에 무기력해지는 일들이 만연한 요즘,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고 별일 없이 매일 등교하는 그 당연한 일을 해내는 아이들의 성실함과 순수함이 더 절절히 고마운 하루하루다.



#라라크루6기

#11월2번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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