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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Jan 25. 2024

32년 여정의 끝? 아니 시작!

라라크루 : 화요갑분글감 (여행)

한 달에 한번, 선생님들과 책을 읽는 모임을 하는 날이다. 이번엔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책을 읽고 미술관에 다. 모임장소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정했다. 그리고 한 가지더, 서프라이즈(surprise) 파티도 준비했다.


우리 모임은 30대부터 50대 중반까지 연령이 다양하다. 사적인 모임으로 따로 만나긴 힘든 조합이지만 책을 같이 읽자라는 동일한 목적으로 4년째 모임 중이다. 퇴근하고 인문도서를 읽으며 산책하듯 가볍게 도란도란 책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달밤의 인문학 산책'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이름대로 즐겁게 부담 없이 책을 읽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신나게 얘기하고 나누며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


거기에 하나 더, 교사라는 동일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고충을 나누고 삶의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다는 것. 누군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누군가의 어머님이 위독하시고, 누구는 아프고, 누군가는 멀리 떠나기도 하고, 누구는 퇴직을 하고 이 모든 순간을 함께 하는 동료이자 친구가 되었다. 교사가 아닌 사람으로 서로의 희로애락을 알리고 나눌 수 있는 든든한 사조직이 되어가고 있는 셈.  


기나긴 여정의 끝을 축하하며 


오늘은 교직생활을 끝내고 명예퇴직하시는 선생님을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했다. 4~5년에 한 번씩 근무지를 이동해야 하는 공립교사는 이동하는 와중에 시작과 끝을 맞이해야 해서 축하하고 격려받아야 할 순간이 흐지부지 지나가버리는 경우가 다. 32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을 하나의 일에 매진하고 끝내는 감격의 순간만은 같은 동료이자 후배로서 꼭 챙겨드리고 싶었다. 이런 취지의 운을 떼자마자 다른 멤버들도 즉시 ok를 하고 일사천리로 준비했다. 누군가는 현수막을, 누군가는 선물을, 누군가는 꽃다발을, 누군가는 케이크를 나는 사회를 준비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파티라는 것이 정확한 목적과 의미가 있고 서로 간의 하나 된 마음만 있으면 어려울 것은 없다. 미술관에 케이크 반입이 안되고 꽃도 반입이 안된다는 난관에 부딪혔지만 그렇다고 좌절할 사람들은 아니다. 칼바람에 야외촬영을 하고 "멸치+대가리~!"구호에 맞춰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 순간을 즐길 뿐.



긴급 인터뷰


근처 커피숍을 섭외하여 휘리릭 명퇴기념식을 진행한다. 먼저 간단한 취지를 말하고 명퇴하시는 선생님과인터뷰시간을 갖는다. 급조한 일정이었지만 누구 하나 빼거나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묻고 답하는 뜻깊은 시간으로 채운다.


Q. 교직에서 가장 좋았을 때,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였나요?

저는 수업할 때가 좋았어요. 열정적으로 제 할 일(음악수업)을 하고 일 년의 마무리로 아이들의 반별 발표회시간을 가졌는데 그때는 참 뿌듯했지요. 가장 힘들었을 때는 민원 받았을 때  그땐 너무 힘들더라고.


Q.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는?

삼 년  내리 제가 담임을 했던 아이가 있었어요. 마지막 3학년 때 내가 담임인걸 알았을 때는 너무 미안하기까지 하더라고. 애는 중학생 기간 내내 담임교사로 나밖에 못 본 거잖아. 그런데 나중에 기억하고 대학에 잘 갔다고 전화를 하더라고. 그 아이가 기억에 남았지.


Q.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예전에 내가 그룹상담을 했었거든. 근데 애들이 그걸 하고 너무 좋았나 봐. 그 이후에 아이들이 나를 너무 따르고 좋아했었어. 근데 그 이후에 그중  한 명을 우연히 만났는데 너무 반갑고 좋더라고. 그때가 기억나네.


Q. 명퇴를 결심하시게 된 계기가 언제셨어요?

우연히 신문기사를 봤는데 여교사의 평균수명이 보통 여자들의 수명보다 5년이 짧고, 퇴직 이후 연금수령기간이 평균 7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길 듣고 심한 충격을 받았어. 좀 더 젊을 때 아프지 않을 때 여생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명퇴를 결심했지.


Q. 아직 현장에 있는 후배 교사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너무 자기 몸이 아프게 하면서까지 일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자신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일하는 건 정말 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어요.


Q. 퇴직 후에 뭘 하실 건가요?

할 게 너무 많아요. 근처 문화원에 클라리넷, 라인댄스, 성악 수업을 신청하고. 일주일에 하루는 남편과 쉴 거예요. 매일 이렇게 계획표를 써놨다니까. (메모지 보여주심.) 문화원까지 가는데 25분, 오는데 25분 걸리니까 하루 1시간 운동할 겸 걸어 다니려고.


퇴직은 끝이 아니라 시작!


퇴직 후 일정소개하시는 선생님의 얼굴에 설렘과 기쁨에 가득 찬 표정에 주변까지 밝아진다. 퇴직이라는 것이 매일 해야 하는 일에서의 해방이고 나를 위해 시간을 쓰는 즐거운 일상의 시작임에 틀림없었다. 퇴직을 맞이하는 샘의 밝은 기운 덕분일까. 나도 모르게 '나는 퇴직 후에 뭘 하면서 지낼까?' 머릿속에 리스트를 길게 만들며 신나게 적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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