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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Apr 07. 2024

볼 빨간 40대, 콘서트장을 접수하다.

이문세 콘서트 후기

결혼하고 난생처음

내가 보고 싶은 가수의 콘서트를 내 돈 주고 표를 사서 벚꽃이 한창인 광화문 네거리, 세종문화회관 공연장에서 게 되었다. 갑작스레 콘서트에 온 이유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가수도 볼 날이
얼마 안 남았구나.



10만 원이 넘는 비싼 가격, 먼 거리, 긴 공연 시간, 아이들만 두고 나가도 될까. 가면 안 되는 이유는 늘 넘쳤고 그저 한번 가보고 싶다는 내 바람항상 뒷전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을까.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것이.  더 늦기 전에 꼭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 하나가 그동안 미뤄왔던 일을 단숨에 하게 만들었다. 물론 혼자는 아니었다. 육아에 갱년기에 같이 희로애락을 나누는 동네 엄마들과 의기투합했다. 덕분에 난생처음 광클릭 티켓전쟁에 참가, 운 좋게 구입에 성공했다. 그래서 진짜 오랜만에 서울 한 복판, 콘서트장에 오게 된 것이다.


하필 이문세였던 건

겨우 아이티를 벗어나던 때, 좁은 방 한 구석, 라디오는 감성 어린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밤새 노래를 들으며 방송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카세트의 붉은색 녹음버튼을 급히 눌러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테이프어설프게 만들었었다. 그리고 그 테이프를 듣고 또 듣고 테이프가 늘어져 노래도 길게 늘어질 때까지 들었다. 찐 아날로그 시절이었다. 지금은 화려하고 자극적인 영상들이  전성시대를 이루고 있지만 그때는 TV만큼 라디오도 인기 있는 대중매체로 자리매김하고 있을 때 있었다. 특히, <별이 빛나는 밤에> 줄여서 '별밤'이 단연 으뜸이었다. 내가 중,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때, 진행자는 이문세였고 그는 최고의 가수이기도 했다. 긴 얼굴에 또 길게 뽑아내는 창법에는 왠지 모를 애수와 서글픔을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더 중독성이 있었다. 전주만 들어도 나도 모르게 자동반사적으로 따라 부르게 되는 노래가 꽤 많다. '소녀, 광화문 연가, 사랑이 지나가면,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 붉은 노을 등등'. 그는 내가 가사를 알고 또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는 몇 안 되는 가수 중 하나였기에 그의 공연을 고민 없이 선택했다.



세 번 놀라는 콘서트

첫 노래는 <애수>였다. 복잡한 찻 길을 자동차 한 대가 미로 같은 길을 따라 움직인다. 그러다 어느덧 공연장에 도착한다. 화면이 커튼이 걷히고 브라스 밴드가 깊고 꽉 찬 음악으로 큰 공연장을 휘감는다. 그리고 가수 이문세가 나타났다. 65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몸과 여전한 음색으로  단번에 대중을 압도한다. 무대를 여는 두 곡이 끝나고 인사를 하는 그. 그는 역시 언어의 마술사였다. 매끄러운 말솜씨, 빠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지루하지 않은 밀당 화법에 3000명 관객이 웃겼감동시켰다 한다. 그의 말로는 공연장에 온 관객이 3번 놀란다고.


첫 번째, (기대 안 했는데) 이문세가 멋진데~

두 번째, 20~30대 관객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

세 번째, 의외로 내가 아는 노래가 많네.


진짜로 60대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과도하지 않은 그렇다고 밋밋하지 않을 딱 좋은 안무가 힙한 대중가수로써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편안하고 유머러스한 입담이 청중의 관심과 집중력을 적당히 유지시켜 주었다. 그리고 감성적이고 아날로그식 편지글 같은 대화로 만들어진 자료화면이 전체적인 흐름의 강약을 적당히 조절해 주어 완성도가 높은 공연이 되었다.


관객들은 주로 중년 여자가 대부분일 거라 생각했지만 나이 지긋한 중년 남성도 꽤 보였고 20대 젊은 관객들도 많이 보여서 신선했다. 재밌는 건 모두 일어나 떼창을 할 때도 몇몇 남성은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신기한지. 그러면서도 비싼 표를 사서 나름의 방법으로 즐기고 있는 거겠지? 쓸데없는 생각도 잠시 하며 열심히 공연을 즐겼다.



익숙한 목소리, 옛사랑의 초대

그만 노래 한 소절에 울컥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감성 어린 노래 한 곡을 부르겠다며 소개하고 곧 이어졌던 그 노래. <오늘, 하루> 듣는 순간 무장해제됐다.


밥 한 그릇 시켜놓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오늘 하루 내 모습이
어땠었는지

창가에 비치는 건
나를 보는 내 모습

울컥하며 터지는
어떤 그리움

그리운 건 다
내 잘못이야.

잊힐 줄 만 알았었는데



쏟아지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며 노래를 듣는다. 눈을 감아도 깊게 스며드는 그 무언가에 꺽꺽 거리며 목메어 혼자 숨죽이며 울었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맘껏 꺼내놓게 되는 묘한 힘. 그동안 숨겨왔던 고독감이었을까.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상실감이었을까. 딱히 주소를 찾지 못한 정서가 나를 건드리고 감정의 출구가 열려버렸다. 그의 목소리는 그렇게 나의 눌러둔 감성을 감미롭게 불러냈다. 익숙한 음색으로 편안하게 옛사랑의 추억처럼 어린 나를 소환해내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가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
그대 내 곁에 있어요.
떠나가지 말아요.
나는 아직 그댈 사랑해요.


그냥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는 것과 공연장에서 듣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었다. 그림을 책으로 영상으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이 차이가 있는 것처럼. 직접 듣는 노래는 미세한 떨림, 숨소리와 정서, 가수의 표정과 움직임으로 공기를 압도하는 분위기라는 것이 더해진다. 그것이 모든 차이를 만들어낸다. 가사 하나, 하나가 더 깊이 심장에 박히고 더 빠르게 감성을 건드리고 잊혔던 각자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니 국민학교 6학년이었던 나, 아빠의 가게 안쪽 작은 쪽방에 혼자 라디오를 듣는 내가 보인다. 공부한다고 앉았지만 라디오를 켜고 가사를 따라 적으며 노래하는 작은 목소리가 점점 커져 지금 50이 다 된 내가 되었다. 훌쩍 시간을 거슬러 현재에 도착한다. 그렇게 노래는 절절히 흘러갔다. 속절없는 세월처럼.



노래가 건네는 작은 위로

그는 세월의 풍파를 다 겪은 성숙한 한 인간으로 돌아왔다. 두 번의 암 수술과 턱 수술, 그럼에도 계속 노래를 놓지 않았던 그는 이렇게 노래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했다. 제주도에서 걷고 또 걸으며 생각했다고 했다. 노래에 대해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 그렇게 단단히 견뎌내 준 노래 부르는 사람, 이문세가 내 앞에 다시 서 있는 것이 내가 더 감사했다. 10대 소녀가 50대 중년이 되어 다시 찾아도 그 자리에 있어주어 내가 더 고마웠다. 어린 시절 부모님들이 남진이며 나훈아, 조용필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노래를 그렇게 절하게 따라 불렀던 건 알고 보니 그들과 자신의 추억을 같이 나눠서였다. 지금의 나이가 되고 보니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노래는 각자의 추억과 함께 봉인되었다가 시간이 흘러 그 노래를 들으면 처음 들었던 그 시절의 내가 소환되어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걸. 그래서 노래는 강한 향수와 그 시간를 같이 산 사람들의 연대의 힘을 품게 되나 보다.



동네 오빠가 말을 걸듯

편안하게 관객에게 말을 걸고, 마이크를 넘겨 그의 노래를 관객이 같이 부르게 하는 여유로움에서 친밀감을 느낀다. 그는 나를 모르지만 나를 알고 나에게 말을 걸고 있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은 아이돌급 팬심은 아니더라도 은은한 정과 따스함이 있었다. 그 기분좋은 옛 기억을 더듬에  이곳에 다시 온 것이 참 잘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붉은 노을을 끝으로

공연장 좁은 객석에서 일어나 소리 지르고 떼창으로 노래를 부르며 손뼉 치고 몸을 흔드는 나를 발견한다. 누구 엄마도 누구 아내도 아니고 그저 내 이름만으로 불렸던 어린 내가 되어 한껏 즐기고 나니 2시간이 넘는 공연이 다 끝나있었다.


상기된 표정의 엄마들은 서로 너무 재밌었다며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발그레한 두 볼로 흥분된 모습이다. 돌아오는 내내 뜨끈하고 시원한 두 개의 온도가 내 몸을 관통하였음을 느꼈다. 긴 공연 후 피로감은 뒤로 한채, 후기를 나누느라 쉬지 않고 얘기하는 엄마들 표정에는 10대 소녀 같은 즐거움 만개한 벚꽃처럼 핑크빛으로 수줍게 빛나고 있었다. 


P.S. 앗. 공연마치고 이문세님에게 온 문자. 오~진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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