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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Jan 06. 2022

인테리어 어벤져스가 우리 마을에 떴다!

결정장애 인테리어 도전기

인테리어의 1도 모르는 내가 내 집 꾸미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인테리어를 위해 나에게 주어진 예산은 1000만 원.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기저기 묻고 알아보고 하다 보면 1000만 원이라는 그 큰돈은 인테리어의 고급진 세상에서는 작고 미미해 보이는 착시현상이 생긴다. 여차저차 일정이 맞지 않아 2~3달을 눈팅만 하며 취향만 고급지게 높여두었다가 결국 이사 전 10일 만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인테리어를 해치웠다. 고민한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그동안에 쌓아온 정보는 안드로메다로 가고 간단하고 심플하게 결정했다. 집 앞 도배 집 사장님의 인맥을 통해 싱크대, 필름, 타일  사장님들을 뵙고 일사천리로 일주일 만에 어설픈 인테리어를 마쳤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몇 가지 포인트는 붙잡고 진행하였다.

요즘 대세는 그레이와 화이트

주방

주방 before/ after

먼저, 주방의 부담스러운 블랙 앤 화이트의 강렬한 조합을 확 바꾸고 싶었다. 화이트와 그레이를 기본으로 필름으로 시를 보정, 어수선한 유리장을 싱크대와 같은 문짝만 바꾸어 통일감 주었다. 그레이로 싱크 하부장을 할까 했으나 금방 질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레이로 몰딩, 테두리만 해서 화이트의 지루함을 없앴다.

거실

거실 before / after

거실도 화이트와 그레이로 통일. 오래된 갈색 벽지를 다크 그레이로 하고 필름으로 우드톤을 더하니 따스함이 느껴진다. 바닥은 바꿀까 고민하다가 도배 사장님께 여쭤보니 "쓸만하네. 나중에 코팅만 해서 써" 하시길래 찰떡같이 알아듣고 그대로 실행. 청소하고 코팅하니 반짝반짝 새것처럼 광택이 흐른다. 무조건 갈아엎는 것도 낭비고 환경오염이고. 덕분에 돈도 굳어서 1석 3조다.

복도

복도장 before / after

안방과 작은 방 사이의 복도장은 양주와 상장 등을 전시하는 검은색 유리장이었는데, 정성 들여 짜 놓은 수제 장식장이었지만 올드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과감하게 교체한다. 우드톤 여백을 중간에 둔 화이트 서랍장으로 심플한 인테리어 효과를 노려본다.

신발장

신발장 before / after

그리고 우리 집의 마지막 인테리어 포인트 현관 신발장. 저 굴곡진 갈색 신발장과 반대편 벽을 현관 입구에서 처음 맞닥뜨렸을 때, 왠지 모를 칙칙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필름을 덧씌우고자 문의하니 굴곡을 작업하기 힘들다 하시고 거울 벽면을 전체 교체하자니 목공 작업이 추가되어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래서 신발장 문짝만 교체하고 나머지는 필름으로 마감하기로 결정. 필름 사장님께 특별 요청하여 거울 벽면 굴곡진 면의 필름 처리를 어렵게 허락받았다. 완성하고 나니 깔끔하고 밝은 입구가 마음에 든다.


어쨌든 끝낸 내 돈 내산 어설픈 인테리어

 비용을 아껴보고자 어쩔 수 없이 인테리어를 도전했고 결정장애, 우유부단 끝에 평범하고 무난한 우리 집 꾸미기가 완성되었다. 전체 인테리어를 총괄하는 업자가 없이 혼자 결정하고 초보자의 눈으로 진행상황을 체크하려니 눈뜬장님처럼 보고 있어도 보이는 게 없는 답답하고 외로운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도 틈틈이 눈팅으로 캡처해두었던 내가 원하는 인테리어 사진들이 업자들과 소통하는데 그나마 큰 도움이 되었다. 꼼꼼하지도 세심하지도 않은 내가 인테리어를 억지로 하고 나니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첫째, 전체적으로 통일감과 이음을 맡아주는 것이 없다는 것. 필름 업자는 필름만 하고 실리콘 마감을 안 한다거나 복도장 중간에 포인트 조명 하나를 달기 위해 전기업자를 따로 불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던 것. 일의 양이 많지 않은데 업자를 따로 부르려니 각각의 인건비가 만만치 않았다.


또 하나는 공사의 순서. 예를 들어 필름을 하고 도배를 해야 하는데, 필름, 도배 사장님께 서로 일정 조율해서 해주십사 부탁을 드렸는데도 성격 급한 도배 사장님이 필름보다 먼저 도배를 다 해놓아 버린 것. 이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모르겠지만 필름 업자가 주방에 필름 공사를 하시면서 새로 바른 벽지를 뜯고 훼손해 버린 것. 이 일로 두 사장님끼리 살짝 얼굴 붉히는 일이 발생했다. 동네장사다 보니 견적서 하나 제대로 작성하지 않고 구두로 대충 일을 해서 생긴 일이 었나. 나와 각 업자들끼리는 그나마 핸드폰 문자로 금액과 작업내용 확인을 해두었으나 업자들끼리는 그런 절차가 생략되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도배 아저씨는 분노를 삭이시고 2~3번 왔다 갔다 하시면서 하자보수를 깔끔히 해주셨다.


마지막으로 나의 발품이 곧 돈이다. 각자 다른 업자들이 따로 작업하다 보니 수시로 보고 챙기고 그때그때 하자보수를 요청해야 한다. 우리 집은 도배, 싱크대, 필름, 타일, 이사청소업체(줄눈

, 코팅시공포함) 그리고 전기랑 실리콘 처리 등 잡다한 마감처리를 하는 총 6개의 업체와 작업을 진행했다. 그래서 각각 다른 날짜에 진행되는 작업을 수시로 확인하는 것은 필수다. 원래 살던 곳과 이사 갈 곳의 거리는 도보 5분 거리. 공사가 진행되는 10일 동안 이 두 집을 왔다 갔다 했는데 매일 만보가 넘는 양을 걸었다. 아침에 아이 등교시키고 작업 시작할 때 가서 보고 작업할 곳과 색상이 맞는지 확인한다. 공사하시는 분들에게 "잘 부탁드립니다" 살갑게 인사드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오후에 또 한 번, 인부들의 음료수를 챙겨드리고 중간과정을 체크한다. 이때 하자보수가 필요한 곳을 바로 말해야 한다. 안 그러면 크게 후회할 일이. 왜냐면 다시 올 때 또다시 인건비를 요구하는 업자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 동네분들이라 금방 오셔서 하자보수를 처리해준다. 그래서 집근처 인테리어 업자들을 알아보는 것이 매우 유리하다. 그리고 저녁에 또 한번, 작업이 잘 끝났는지 마지막으로 꼼꼼히 확인하고 공사비를 입금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몸으로 일하시는 분들의 소중함

스스로 인테리어 과정을 진행하면서 평소에 보기 힘든 분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기간을 가졌다. 공사를 진행하면서 몸으로 일하셨던 아빠가 생각났다. 금은방을 하시다가 접으시고 철거와 인테리어를 하셨는데 먼지 쌓인 옷으로 집에 들어서던 모습, 1.5톤 트럭에 장비와 철거한 쓰레기들을 싣고 나르시던 모습이 겹쳐져 생각났다.

공사하시는 분들을 만나면서 내가 몰라서도 그랬지만 참 많이 여쭤보았다. "혹시 사장님 생각에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여기 이곳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장님이 추천해 주시면 그중에 제가 골라볼게요." 하면서 수시로 묻고 도움을 청했다. 사장님들은 내 마음을 아셨는지 좋은 조언을 해주셨고 예산도 적고 아는 것도 없었던 인테리어 과정이었지만 큰 갈등 없이 일이 마무리되었다.

집을 꾸미는 과정에서 또 하나 얻은 깨달음은 '도시 사람들 정말 할 줄 아는 게 없다.'라는 것. 벽에 못하나 박는 것도 쉽지 않았다. 벽의 재질이 무엇인지에 따라 못의 종류도 다르고 못질하는 방법도 다 달랐다. 실리콘 하나를 바르는 것도 기술자들이 하는 걸 보면 그렇게 쉬워 보일 수가 없다. 근데 막상 해보면 수전증이 걸렸는지 지 맘대로 떨리는 손을 어찌할 수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사하러 오시는 분들은 아주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이지만 세분화된 영역이 각각 있고 경험에서 오는 숙련되고 노련한 기술이 있어 멋있어 보인다. 그래서 더욱 고개를 숙이고 잘 부탁드린다 몇 번이고 말씀드렸 던 것.


세상은 최첨단 기술과 AI가 미래사회의 일자리를 대신한다하지만 못하나 박지도 못하고 커튼봉 하나 달기도 어려운 평범한 도시인들을 보면 이런 이야기는 요원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내 돈 내산 나의 첫 인테리어 도전은 최첨단 기술을 무색하게 만든 손기술이 최고인 인테리어 장인들의 도움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굴곡진 벽면을 깔끔하게 마무리한 필름 집 사장님, 두 번 세 번 도배해도  처음 한 것처럼 깔끔한 마무리를 해주신 도배 사장님, 전자제품과 혼연일체로 딱 들어맞는 싱크대를 짜주신 싱크 사장님, 이쁜 타일 고르라고 추천 모델 계속 보내주신 타일 사장님. 유튜브에서 핫한 업자도 방산시장에서 본 엄청 싼 견적도 없었지만 우리 마을 인테리어 어벤저스 군단의 도움으로 인테리어 잘~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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