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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천개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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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Mar 17. 2024

모방을 너머 창조로

All Right English : 일상수업에 철학 얹기

올해도 중2를 맡았다.

작년 아이들도 너무 착하고 이뻤는데 올해는 더 이쁘다. 올망졸망 큰 눈을 하고 집중하는 눈이 여간 귀엽지 않다. 오늘은 듣고 말하기 파트를 공부하는 날이다. 조언하는 말 "What can I do~?"와 제안하는 말 "How about~?"을 익히고 배운다.



Step 1. 대화문 듣고 주제 찾기


자, 오늘은 친구들의 고민에 조언하는 대화문을 들어보자.
주인공이 어떤 고민이 있는지,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지 한번 찾아볼까?


"세상에. 친구한테 강아지처럼 귀엽다고 하다니 Kate가 화낼 만했다. 그렇지? 화난 친구의 마음을 풀어줄 방법으로 Brian은 어떤 해결책을 말해주었지?"


Sending her a message!


"맞아. Kate가 왜 화가 났는지 그 이유를 적어볼까? Kate는 화가 났어. 미나한테. 영어로 하면? 스스로 생각해서 적어보자. 틀려도 좋아. 나만의 답을 생각해서 쓰고  정답을 확인해야 진정한 내 공부가 되는 거야.


Kate is mad at Mina 왜냐하면??

미나가 새로 한 케이트 머리가 자기네 집 강아지를 닮았다고 했기 때문이었지? 영작해 보자.


"Because Mina said 뭐라고 말했지?"

"Her new hair is cute just like her dog's."

오케. 잘했어. 이 문장을 모두 이어 적으면 근사한 답이 되는 거야."

더듬더듬 단어를 찾고 문장을 이어나가는 과정, 한 번에 할 수는 없고 긴 문장을 의미단위로 조금씩 나누어 천천히 붙여나가며 영작해본다.


Step 2. Dictation
대화문 듣고 빈칸 채우기


"자, 우리 대화문을 다시 듣고 빈칸을 채워볼까? 빠르기는 진라면 순한 맛, 보통, 1단계로 할까. 아니면 신라면 맵기 2단계로 할까?"  

"1단계요!!"  아이들은 단숨에 이구동성으로 답한다.

"그래, 1단계로 들어보자. Guys. Ready?"

"Yes.Ready!"

조용한 가운데 펜이 움직이는 소리만 가득하다. 두 번 듣고 최대한 빈칸을 채워본다.

"자, 채웠으면 우리 신라면 맵기로 한번 들어볼까." 쏼라쏼라 빠르게 읽는 속도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학습을 위해 조정된 느린 속도로 각자의 수준에 맞게 천천히 듣고 배우는 것도 좋지만 원어민이 하는 자연스러운  속도와 발음에 자꾸 노출시킬 필요도 있다. 이런 속도에 익숙해지면 실제로 영어를 할 때도 놀라지 않고 그대로 흘러가듯 리듬을 타며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실제 영미권에서 말하는, 진정성 있는 속도와 억양에 노출되는 것은 실제 사용능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미드(미국드라마), 영드(영국드라마), 영화 등을 자주 접하는 것도 좋다.


Information Gap
: 십시일반 협력하기

"자, 이제 친구들과 비교해서 다른 점, 같은 점이 있나 답을 비교하고 채워볼까?"

답을 쉽게 안 가르쳐주는 건 배움의 숙성과정을 허락하는 행위이다. 각자가 듣는 단어가 다르고 그래서 소통하고 나누어야 대화문이 완성되고 서로 다른 답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 더해져서 나눔의 수업이 된다. 듣고 쓰고 친구들과 비교하고 답을 찾는 과정이 길어질수록 배움이 더욱 깊게 스며든다.


동그라미를 크게. 자신을 칭찬해 주세요.

자, 대본을 같이 볼게요. 대화를 다시 들으면서 각자의 정답을 체크해 주세요. 자기가 쓴 답이 맞으면 크게 동그라미 하고 자신을 칭찬해주어야 해요. 혹시 틀렸으면 고쳐 적고 다시 공부하면 돼요.


너희들은 배우는 과정에 있으니
틀리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지금은 실망하고 포기할 때가 아니라
어떤 때라고 했지?

시작할 때요!  

맞아. 틀린 것을 고쳐 적고 연습하고
나의 것으로 만들면 돼.
시험은 나의 배움이 어디까지 왔는지 보여주는 좋은 자료일 뿐이야.



쓱쓱. 동그라미를 그리는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린다. 자신의 배움을 확인하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체크하는 것은 효율적인 공부의 첫 단계다. 공부라는 것은 결국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내는 과정이다. 내가 뭘 모르는지 뭘 아는지 모르는 애매한 상태는 공부의 효율성을 떨어진. 이렇게 아이들이 하는 공부의 과정의 이유와 의미를 더 붙이면 아이들은 더욱 열정적으로 배움에 참여한다. 답을 체크하면서 아이들은 자신의 학습 과정을 인식하게 되고.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정확하게 알게 되면서 구체적으로 다음에 무엇을 공부할지 파악할 수 있다. 공부하는 방법을 알게 되니 자기주도 학습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고 자신감이 쭉쭉 올라기면서 성적도 쉽게 올라간다.


Brian, Mina처럼 말하기
: 위대한 모방의 힘

"자. 이제 우리 Mina와 Brian이 되어볼까? 절대로 읽지 말고 들었던 대로 말하는 거야. I am Brian. You are Mina. Guys Let's go~"

최대한 실제 대화처럼 억양과 느낌, 속도, 쉼표까지도 들었던 그대따라 한다. 모방하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나 싶지만 나도 모르게 읽고 연습한 문장은 언제 어느 때든 툭 튀어나와 든든한 무기가 된다. 영어를 배운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자동반사 인사말 세트가 있지않은가."How are you?"에 대한 우리나라 전 국민의 대답은 단 하나.


I'm fine. Thank you. And you?




대화문을 보며 들리는 대로 말하니 아이들 말소리는 우렁차고 자신감이 넘친다. 원어민 녹음으로 들은 말을 연기하듯 따라 하니 지루함도 없어 좋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상황에 맞는 표현이 튀어나올 때를 기대하며 요리조리 궁리하며 말하고 연습하는 레시피를 개발하고 시도한다.



몸을 움직여 말해볼까요?

"자. 이제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Brian과 Mina를 찾아 짝대화를 해보자. 지금 이곳은 미국은 뉴~욕스트릿. Ok. Let's do this! 몸을 움직여 배운 문장을 익히고 써본다. 여기저기서 Hi Brian. Hi Mina~소리가 깔깔 거리는 웃음과 함께 진다.


다음은 눈치게임.

남자친구들은 Brian의 대사를 외우고 여자친구들은 Mina의 대사를 외운다. 선생님의 Ready GO! 소리에 맞춰 순서대로 한 문장을 벌떡 일어나 외치면 된다. 동시에 몇 명이 일어나면 모두 아웃. 책을 보고 말해도 아웃이다. 빠르고 정확하게 순서에 맞는 대화문을 외치는 사람은 산다.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르고 눈치를 보다가 여기저기서 일어나 빠르게 외운 문장을 말하고 몇 번의 아웃이 외쳐진 뒤 가까스로 대화문이 완성된다. 마지막 남은 두 사람은 첫 번째 시작 문장을 외친 사람이 정한 벌칙을 받는다. 이번에는 딱밤 맞기와 장기자랑. 왠지 모르게 이마의 손가락 터치가 닿는 전, 그 짧은 순간엔 왜 그리 긴장감이 도는 건지. 딱! 찰진 소리가 이어지고 아이들은 재밌다고 깔깔거린다. 다음 벌칙은 장기자랑, 수줍은 듯 고민하던 여학생은 팝송 '2002'를 노래방 반주에 맞춰 야무지게 부른다. 즐거운 벌칙시간이 끝나고 다음 라운드가 이어진다. 아이들은 이번에는 꼭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이 정도 몰입도라면 웬만한 예능 프로 저리 가라다. 나도 점점 유재석 마냥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재미도 점점 고조되는 순간.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아. 재밌었는데~



아이들의 아쉬운 목소리에 나 또한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인사하려고 아이들을 불러 세우고 다음 수업 예고를 한다. "얘들아. 다음엔 오늘 배운 대화문을 우리만의 스타일로 각색해서 발표해 볼까?"


네~!!


과연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100번 옳은 명언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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