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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Mar 23. 2024

아침, 고요히 나를 깨우는 시간

라라크루 :화요갑분글감 (냄새 & 향기)

아침을 깨우는 소리


딱딱딱 탁탁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했던 모닝콜.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의 경쾌한 도마소리, 그리고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다. 뭉근하게 퍼지는 쿰쿰한 냄새와 아득하게 울리는 소리에 내 몸의 감각이 먼저 반응하며 몸을 뒤척이곤 했다. 놓아버리기 싫은 포근한 잠자리와 기어이 아침을 맞이해야 하는 차가운 각성 사이에 흐릿한 노곤함을 즐기고 있을 때, 누군가 "일어나!" 하는 건 정말 싫다. 늘 습관처럼 그 전에 일어난다. 나의 자유의지를 꺾는듯한 날카로운 목소리에 아득한 몽롱함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같아 딱 질색이다. 강제로 현실을 맞이하라고 신경질적으로 몰아세우는 듯한 무정한 목소리. 잔잔한 교향곡처럼 은은하고 고요하게 아침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고 즐기는 것이 나는 좋다. 


변기에 앉아 기도

겨우 몸을 일으켜 세우고 반짝이는 전자시계의 선명한 글자로 시간을 확인한다. 5시, 출근 준비 한 시간 전, 눈이 떠지기에 좋은 시간이다. 다시 한번 눈을 붙이고 고요히 머물다 화장실을 가려고 더듬더듬 실내화를 찾아 신는다. 어기적어기적 걷다 약한 불을 켜고 변기에 앉는다. 그리고 성호를 긋는다.


오늘도 이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침대에 눕는다. 먼저, 건강한 인간으로 거듭나길 약속하며 일상 속 자기만의 루틴을 공유하고 인증하는 <쑥마늘프로젝트> 단톡방에 아침인사를 다. 요즘은 유아기 아동처럼 녹초가 되어 저녁 9시면 취침을 한다. 덕분에 넘사벽 지담작가님 다음, 2등으로 일찍 일어나 기상 인사를 올릴 때도 있다. 뿌듯하다. 아침 댓바람부터 톡으로 인사하고 저녁 늦게 까지 인증하는 24시 영업 중인 톡방이라 그런지 온라인 방인데도 왠지 모르게 정이 간다. 밑도 끝도 없는 잡념의 파도타기를 하다 정신을 차리고 어제 읽었던 책을 다시 편다.



새벽 독서의 숭고함

새벽 공기, 나의 숨소리, 그리고 글자만 있는 시간.

가만히 누워 문자를 따라가는 내 머릿속엔 다른 것이 없다. 오롯이 글이 말이 되어 머릿속에 펼쳐진다. 황금 같은 시간, 집중력이 최고로 발휘되는 이다. 한 챕터를 소중히 읽어내고 되짚어가며 마음에 남는 한 줄을 다시 새긴다. 캔바앱을 열어 인용문 편집해서 <쑥마늘 프로젝트> 단톡방에 공유. 숭고한 모닝 루틴 미션 한 개를 클리어했다. 흐뭇다.



이제 출근 준비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로션 몇 개  찍어 바르면 6시.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각자의 일로 바빠서 같이 모여 밥 한 번 먹기 힘든 가족이다. 유일하게 모이는 시간, 아침식사는 꼭 챙겨 준비한다. 나도 친정엄마처럼 아이들의 경쾌한 모닝콜이 되어주려 도마 위에 양파, 감자, 파를 올려놓고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칼질을 시작한다. 보글보글 멸치, 다시물이 끓어갈 때쯤 된장을 풀고 야채를 퐁당! 구수한 냄새가 거실까지 퍼진다.


약속이나 한 듯이 눈을 비비며 아이들이 하나, 둘 나온다. 밥과 국, 반찬을 꺼내놓고 조용히 식사를 시작한다. 고1이 된 큰 딸은 학교, 학원을 오가는 꽉 찬 스케줄에 얼굴보기가 더욱 힘들다.


학교는 어때? 힘들진 않아?


잠깐이지만 아이들의 일상을 듣는 시간, 1학년이라 급식시간이 늦어 밥 먹을 시간이 부족하고 담임선생님이 이상하다는 이야기에 학원시간이 빠듯해 저녁을 못 먹는다는 불만족 사항이 대부분이지만 아이가 잘 적응하고 있구나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그래도 애쓴다며 훈훈한 멘트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식탁 끄트머리의 아이 셋의 가정통신문을 챙겨본다. 수학여행 신청서, 개인정보 동의서, 순식간에 휘리릭 읽고 사인을 하고 아이들에게 챙겨가라고 말해둔다. 아이 셋의 학년만 겨우 외우고 있는 터라 반과 번호는 각자 꼭 챙겨 으라고 염치 불구하고 덧붙인다.


EBS영어라디오를 들으며 스페셜한 아침으로

양치를 하고 휴대폰을 열어 EBS 라디오 앱을 켠다. 대학 졸업하고 나서부터 들었던 라디오 프로그램  챙겨듣는다. 7시 무렵에는 초보영어'easy english'와 중급영어'power english'가 한창이다. 뭐든 틀어놓고 들리는데로 귀는 열어두고 몸은 화장하고 옷을 입고 양말 신고 가방까지 챙겨 메면 출근준비완료! 최근 뉴스를 영어로  진행자의 설명까지 듣는 잠깐의 방송듣기가 잊었던 나의 프로 정신을 일깨워 준다.


맞다. 나 영어교사지!




하루 한 번 사랑충전, 잊지 말아요.

드나드는 가족들의 움직임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고 있는 막내, 조용히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귓속에 오늘치 애정포인트를 충전해 준다.


 

이쁜 아가, 엄마 간다.
식탁 위에 토마토 먹어.
사랑해~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가방을 들고 정신없이 출근하면서도 잊지 않는 게 있다. 굳게 닫힌 큰 아이들 방에 뜬금없이 사랑 고백하기. "엄마 간다. 사랑해!" 운이 좋은 날엔 "나도!"라는 응답을 듣기도 한다. 설사 답이 없어도 좌절하진 않는다. 변함없이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따뜻한 엄마의 온도와 향기로 혹시 모를 아이들의 어려움에 든든함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이걸로 짧고 굵은 아침 루틴 끝,
으악!  이제 출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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