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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May 09. 2024

새빨간 거짓말

라라크루: 화요 갑분글감

거짓 없이 살면 언젠가 복 받을 거라 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매사에 진지한 곤충, 진지충이 되어버렸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말라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한 두 마디 건네었더니

남의 일에 참견하는 눈치 없는 꼰대가 되었다.


7번씩 77번이라도 용서하라 했다.

화나도 억울해도 참았더니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호구가 돼버렸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했다.

그랬더니 쥐도 새도 모르게

엄한 놈이 모든 공을 가로채갔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 했다.

야금야금 모은 돈으로 주식투자했다가

태산이 티끌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거라 했다.

좋은 날은 안 오고

계속 참을 일만 생긴다.



가끔 그런 때가 있다.

마음속에 간직한 신념이 무기력하게 새빨간 거짓말처럼 느껴질 때. 해도 해도 좋은 날은 올 것 같지 않고 세상이 무심하게만 느껴지는 그런 날. 맥없이 모든 것을 놓고 싶은 그런 순간이 있다.



어느 날 저녁,

여느 때처럼 운동하러 주민센터를 찾았다. 늘 그렇듯  최고의 러닝메이트, <나 혼자 산다>를 켠다. 러닝머신의 속도를 높이며 TV를 들여다보니 화면 속 기안 84도 헉헉대며 같이 뛰고 있었다.

<나.혼.산> 기안84

그는 42,195km 풀코스 마라톤도전하고 있었다. 결승점을 10킬로 정도 앞둔 지점, 갑작스러운 발목과 다리의 통증에 그는 너무나 괴로워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져 포기할 것 같은 표정, 안쓰럽기만 하다. 아슬아슬한 위기의 순간, 길가의 팬들은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같이 뛰는 마라토너들은 속도를 늦추고 발맞추어 같이 걸어준다. 지나가는 선수들은 그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며 그가 포기하지 않도록 기꺼이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준다. 결국 그는 완주하였다. 악으로 깡으로 힘을 얻어 어기적어기적 발걸음을 떼고 계속 뛰는 그의 모습에 나도 괜스레 눈물이 핑~돈다. 안타깝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여정이 내 인생과 닮아 보였다.




세상은 과연 공정한가.

무엇이든 참고 끝까지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살이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처럼, 다 왔다고 느껴질 때쯤  슬럼프에 넘어지고, 결승점아주 멀게만 느껴지는 마리톤과  닮았다. 나는 지금 쉼없이 걷던 길위에서 뽀쪽한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결승점이 코앞인 것 같은데 지쳐서 포기하기 일부 직전이다. 그냥 걷기만 하는 길이 인생은 아니었던 거다.


 엄마노릇이 그렇고 아내노릇, 선생노릇이 그렇고 사람노릇이 그렇다. 매일 위기의 순간이 오고 간다. 잘 참고 이해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한번 폭발하고 만다. 그러면 그간 했던 인내와 배려의 간은 없어지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은 허무한 느낌. 그땐 지켜내고 믿어왔던 모든 신념도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죄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거나 이용당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람들이 오히려 떵떵거리며 살고 있으니. 어느 순간 이건 모 대국민 사기극 내지는 음모론 같은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도 한다. 윤여정은 말했다.



인생은 불공평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과 불공정이 가득한 세상에서는 명언집에서 나오는 삶의 지침을 품고 바르게 사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비웃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세상에 상식이라는 것이 사라지고 개인의 자유와 표현을 무한정 누리게 되면서 배려와 인내의 미덕은 벽장 속에 처박힌 것 같은 고리타분한 가치가 되고 말았을까. 



거짓말과 빨강의 비유

그 당돌함과 파격에 공통점이 있다. 거짓말이 핑크나 연두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거짓이라는 것은 그 실체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한다. 쿰쿰하고 냄새나는 진실을 감추고 밝혀질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빨강이라는 강렬한 색으로 덮고 싶었을까.



새하얀 거짓말

거짓말같이 느껴질 정도로 삶의 중요한 덕목들을 지켜내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때면 모든 것을 놓고 포기하고 싶을 때쯤 구조의 손길이 선물처럼 도착한다. 마라톤에 도전했던 기안 84 곁에서 같이 뛰며 응원해 주었던 페이스메이커처럼. 과장이 섞인 긍정의 말은 새하얀 거짓말 같기도 하지만 기분 좋은 에너지를 전달한다.



 막내가 어버이날을 맞아 내 이름으로 만든 삼행시가 카톡으로 보냈다. 초4꼬마가 엄마의 애씀을 알아주는 시. 내 이름 세 글자로 어떻게든 삼행시로 만드려고 머리를 쥐어짜   고심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담임선생님 성함까지 가져와 가까스로 완성해 낸 에 웃음이 난다. 감추려고 해도 약하기만 한 내 본모습은 순수한 막내의 눈을 피해 갈 수가 없다. 우리 집에서 나와 똑같은 F성향의 막내의 응원은 언제나 센스 만점이다. 50이 다 된 엄마가 11살 아이의 달램에 창피한 줄 모르고 배시시 웃고만 있으니 선한 거짓말의 아름다운 나비효과가 대단하기만 하다.


이른 아침, 이젠 나 대신 강사선생님과 수업하고 있을 학생의 쪽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뜬다. 클릭하고 들여다본다.

가르치는 학생의 쪽지

아이들은 수업을 잘 받고 있다가 이게 웬일인가 했을 거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조용히 병가만 내고 나온 터라 아이들은 어리둥절했겠지. (물론 다른 선생님들이 설명해 주셨겠지만) 샘이 보고 싶다고 얼른 돌아오시라고 떼쓰는 아이의 메시지가 싫지 않다. 나를 찾는 이가 있다는 것은 단 한 명이라 할지라도 그 말에 과장이 더해졌다 할지라도 지친 나에게 풀파워 새로운 에너지를 전해준다.


거짓말 vs. 희망의 말: 한 끗차이

생각해 보니, 거짓말도 희망의 말도 한 끗 차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결국 그 한 끗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내겠지만. 거짓말엔 나쁜 욕망이 숨어있고 희망의 말엔 긍정의 기대와 믿음이 담겨있다. 말은 주문과도 같아서 그 말속의 숨은 뜻이 상대나 나 자신에게도 엄청난 기운을 전해주곤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 이젠 더 이상 달릴 기운도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거친 말들이 나를 무시하고 이용하려는 차가운 거짓말처럼 느껴질 때, 따뜻한 긍정의 한 마디는 경직된 나를 녹이고 쓰러진 나를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울 힘을 준다. 거친 말 한마디로 쓰러졌던 나. 결국 또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말에 죽고 말에 사는 나. 참으로 나약한 인간이다. 지금 나는 내 인생이라는 마라톤, 긴 여정의 어느 지점까지 와 있을까. 과연 결승점까지 안전하게 잘 도착할 수 있을까.  뿌연 안개와 거친 돌밭길과 가파른 오르막길을 다 지나고 나면 다시 신나게 뛸 힘이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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