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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y 07. 2024

실패하면 거짓말 성공하면 사랑

< 라라크루 화요글감 - 거짓말 >

"저 오늘 저녁 안 먹습니다~~~"

또 시작이다. 오후 3시만 되면 어김없이 오는 문자나 전화, 남편의 선언이다.


요식업계 종사하는 남편의 점심시간은 2시 반이다. 포만감이 가득한 3시경, 남편은 분명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아... 점심을 너무 많이 먹었네. 이 정도 포만감이라면 저녁은 안 먹어도 되겠어. 1일 1식을 하자. 그래야 살이 빠지지. 운동만으로는 어림없어.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을 안 먹을 거야. 혼자만 생각하면 지켜지지 않으니, 아내에게 말해두어야겠다. 그래야 저녁을 준비하는 괜한 헛수고를 안 하지. 후훗. 나란 남자. 아내를 향한 배려가 넘치는 남편! 존멋!!!"

남편은 자신의 다짐을 아내에게 선언하는 것으로써 의지를 단단히 한다.


다섯 시간 뒤. 퇴근한 남편은 어김없이 배가 고프다. 현관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오면 찌개 냄새, 반찬 냄새가 훅하고 코를 덮친다. 뱃속이 요동친다. 가스레인지 위에 있는 냄비 뚜껑을 열어본다. 다른 반찬 없이도 밥 한 공기 뚝딱할 수 있는 찌개가 있다. 별 수 있나. 한술 떠야겠다. 아내의 눈치를 본다. 아내는 눈을 흘기면서 이미 밥상을 차리고 있다. "그냥 둬. 내가 차려 먹을게~"라고 말하지만 이미 아내의 심기는 틀어질 대로 틀어진 후다.


"저녁 안 먹는다는 거짓말 좀 안 하면 안 돼? 결국은 먹을 거면서 왜 자꾸 안 먹는다고 해? 당신이 안 먹는다고 하면 진짜 아무것도 준비 안 하게 된단 말이야. 반찬거리가 아무것도 없는데 저녁 먹는다고 하면 진짜 짜증 난다고!!!"

아무리 아내가 짜증을 내도 남편은 그저 허허실실이다.

"난 김하고 김치만 있으면 돼.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문자를 보낼 때는 진짜로 저녁을 안 먹을 생각이거든? 그런데 집에만 오면 배가 고파. 그러니까 왜 그렇게 맛있는 걸 자꾸 해놔~"


거짓말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오늘은 저녁밥 좀 안 하고 넘어가나 기대해보다가, 하루 한 끼 집밥 먹는 남편을 위해 뭐라도 끓여놔야겠다 마음먹는다. 제대로 밥스라이팅 당한 나다.

남편의 저녁 금식 선언은 늘 실패로 끝나고 남편은 영락없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실패하면 거짓말, 성공하면 아내를 향한 사랑'인데, 이번 생에 사랑받기는 글렀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화요갑분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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