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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Dec 09. 2021

안양천, 세 번의 봄

나. 탐구생활 : 내가 좋아하는 그곳



매일 아침 9시, 막내를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참새가 방앗간을 드나들 듯 들리는 곳이 있다. 학교 앞 사거리를 지나 육교를 지나면 펼쳐지는 안양천변의 가로수길이 그곳이다.


봄에는 향긋한 벚꽃과 개나리가 만발하고 여름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더해준다. 가을에는 노랑, 빨강 형형색색 단풍이 인사하듯 맞아주고, 겨울에는 고즈넉이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곳, 안양천. 난 그곳을 좋아한다.

첫 번째 봄. 저녁 설거지를 하는 데, 전화벨이 울린다. `언니 뭐해? ` 친하게 지내는 동네 친구의 호출 신호다. ` 무슨 일 있구나. 안양천이나 걷자. 10분 후에 봐.` 씩씩거리며 나온 그녀는 할 얘기가 많은 모양이 이다. 시댁, 남편, 아이들, 건강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혼하고 싶다, 어쩐다 진지하고 속상한 이야기가 왔다 갔다 이렇게 한동안 수다의 늪에 빠져 걷다 보면 기분이 벌써 업. 쫙~가라앉았던 그녀의 목소리에 있던 짜증과 서러움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깔깔 웃으며 허공 속으로 날아간다. 안양천에 엔도르핀 충전소가 있는 걸까? 너와 나의 웃음 충전소. `안양천, 고마워!`


두 번째 봄. 사랑스러운 반을 맡았다. 누구 하나 튀어나오지 않고 긍정적인 기운이 감도는 반이었고 1학년 때부터 봐온 아이들이라 내 품에 착 안겨 정말 재밌게 지낼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 반에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있었던 것. 어떤 날은 한 아이가 사라져 혼비백산하여 온 학교를 뒤지니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그런 날이 있었고 어떤 날은 지각한 아이의 모습이 심상치 않아 얘기하다 보니 허벅지와 팔목에 수십 번 그은 면도칼 자국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차마 말할 수 없는 불안하고 힘들었던 시간. 하루에도 몇 번씩 교실을 드나들며 아이들의 공부가 아닌 생사를 확인하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무거운 책임감이 나를 누르고 이들의 아픔과 상처를 내가 해결 줄 수 없어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그런 날, 안양천은 신선한 바람으로 나를 쉬게 해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안아주었다. 그렇게 안양천은 나에게 치유의 길이 되어주었다.

세 번째 봄. 코로나로 모든 일상이 멈춰 버린 그때, 학교는 너무 많은 변화를 맞고 그 변화에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나야 했다. 선생님들은 어리둥절하고 머뭇거릴 틈도 없었다. 매일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야 했고, 그러한 변화에 교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새로운 기술, 새로운 방역지침을 읽고 또 읽고, 바뀌는 정부지침에 따라 학사일정과 계획을 바꾸기를 수십 번 반복해야만 했다. 이때 나는 이 엄청난 변화의 선봉장으로 혁신부장을 하고 있었다. 원격수업, 쌍방향 수업, 실시간 수업. 연수 때나 들었던 새로운 수업의 방법을 모든 교사가 전면으로 빠른 시간 안에 다 해내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답답할 때면 저녁을 먹고 찬 밤바람을 맞으며 안양천 나무 길을 찾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어떻게 하면 선생님들이 마음의 부담 없이 이 모든 변화를 이겨낼 수 있을까?' 고민의 답은 걷고 걷는 가운데 번개처럼 나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굵직굵직한 계획안의 틀이 머릿속에 형체로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수업이 답, 해(解)가 되는 해(解)바라기 수업나눔콘퍼런스'. '팍팍한 일상의 MSG , 교사 혁신 융합 연수 조.미.료.(조화로 아름다움을 요리하는 연수 프로그램)' , '부모님과 쌍이 되어 함께 하는 쌍방향 수업공개 쌍쌍 클래스'등등의 아이디어가 모두 안양천 길에서 나왔다. 이렇게 나온 이름들은 친근하고 편한 의미 전달로 선생님들께나 학부모님들께나 미소와 공감을 끌어내며 변화의 부담을 낮추고 더욱 신나게 변화를 맞도록 하는 유연제가 돼주었다. 안양천은 나에게 아이디어 뱅크였다.

오늘도 나는 안양천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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