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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Feb 20. 2022

드라마 속 모든 것이 나였다.

<그해 우리는> 내 멋대로 후기

좀처럼 TV를 보지 않는 나지만 최근 흠뻑 빠진 드라마가 있다. 그것은 <그해 우리는>. 포스터만 봐도 알겠지만 상큼하고 풋풋한 연예 이야기다. 전교 1등에 자신감 넘치는 여주인공 국연수, 누워있기를 좋아하고 한심해 보이는 전교 꼴등 최웅의 사랑 이야기. 이들 사이에 교묘히 엉켜있는 애달픈 짝사랑의 주인공 최웅 친구 김지웅까지. 흔하고 흔한 스토리지만 정감 넘치는 인물들이며 수원 행궁, 삼청동, 한옥마을 등의 배경이 좋다. 인테리어가 멋진 최웅의 집을 감상하며 우리 곁에 있을 법한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아. 내 이야기 같다'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김지웅과 나

매너 좋고 배려심 많은 친구, 김지웅. 늘 자신의 감정보다 다른 이들의 감정을 먼저 살피는 다정다감한 성격이다. 나, 친구의 여자 친구를 짝사랑하고 티도 못 내는 가슴 아픈 캐릭터이다. 그는 늘 차가운 엄마의 냉대 속에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짜증도 응석도 사랑도 그 어떤 정서적 교감도 없는 관계 속에서 철저히 자신의 감정을 감추어버린 모습이 잘 그려진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남. 사. 친(남자 사람 친구)가 있었다. 그는 나에게 편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잘했고 가끔 편지도 주고받으며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나는 점점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만.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는 내 짝꿍과 사귀게 되었다고 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내 짝꿍은 연예인급 외모에 미술을 전공하고 성격까지 털털했다.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라 고백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그저 여. 사. 친(여자 사람 친구)으로만 자리를 지켰다. 오랜 시간 우정으로 포장한 애닮픈 짝사랑의 주인공이었던 그 시절이 불현듯 스쳐 지나간다.


#국연수와 나

정말 가난했던 국연수. 빚쟁이들이 훑고 지나가고 난 뒤, 엉망진창이 된 집안을 보며 포효하듯 절규한다. "제발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가난하면 안 되냐고..." 이런 그녀는 관계 속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소비조차 사치처럼 부담이 됐고 오히려 철저히 자신을 소외시키고 혼자 있기를 자청하면서 10대를 외롭게 지낸다. 이런 그녀에게 최웅이 나타났고 그녀가 가까스로 지켜내던 관계의 장막이 깨지고 부서지면서 마음대로 되지 않게 된다. 최웅은 그녀의 억눌린 감정을 실타래를 풀어 자유롭게 춤추게 한다. 조모와 단둘이 빚을 떠안고 꿋꿋하게 살아온 그녀는 강한 책임감으로 개인적인 감정표현을 철저히 자제하고 센 척 강한 척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이런 면이 나의 모습을 닮았다. 결국 얼마 안 가서 무너질 감정이지만 감추고 속이고 삭히는 모습이 내게도 있기 때문이다. 여주인공의 외모도 닮으면 좋은데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다.


#최웅과 나
 나무 그늘에 누워있기 좋아하고 세상 욕심 없이 사는 최웅.  그런 그가 돌변하는 때는 책과 그림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국연수를 대할 때이다. 천진한 모습이 돌연 바뀌어 진지하게 몰두하는 그 모습이 멋지다. 나는 그의 느긋함을 닮고 싶다. 욕심 없이 흘러가는 데로 사는 모습은 내가 언젠가는 닮고 싶은 모습이다. 잘하려 애쓰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참 편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아하 것에는 진심인 그의 모습은 내게도 있는 모습이다. 모임을 좋아하고 아이들의 성장을 돕고 싶어 하는 순수한 열정만은 드라마 속 최웅과 닮았다.

드라마 <그해, 우리는>에서 킬링 포인트는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개인들이 결국 그 상처를 드러내고 받아들이고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이다. 실제 우리 일상에도 이런 드라마 같은 해피엔딩이 되면 좋으련만 결국 우리 인생은 지루한 갈등과 오해가 수없이 엉키고 꼬이는 진지한 다큐가 되고 만다. 가끔은 이 드라마 속 주인공의 속마음을 얘기하는 내레이션이 내 주변 사람에게도 별도의 오디오 장치로 들렸으면 한다. 그렇게 각 개인의 서사를 잔잔하게 들려주면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도 사라지지 않을까. 실제 우리 삶 속에선 차분한 설명이나 평화로운 내레이션 없이 갑작스러운 화, 슬픔, 먹먹함을 무방비상태로 맞이하곤 한다. 결국 당황하고 상처받는 안타까운 감정싸움으로 커져버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모든 주인공이 나인 것 같은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준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동안은 국연수, 어느 날은 김지웅, 가끔은 최웅이 되어 달달한 드라마 속에 푹 빠져서 지낼 것 같다. 지금도 내 귓가엔 드라마 배경음악이 은은하게 퍼진다. 푸르렀던 주인공들의 모습과 내 젊은 시절이 오버랩되는 아련한 기분을 만끽하며 몇 번이고 같은 음악을 듣고 또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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