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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Jun 12. 2024

늙은 부모 조련사, 그녀

막내의 변신은 무죄

힘겹게 한주를 보낸 주말,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저 눕고만 싶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언감생심 누워있는 건 꿈도 못 꾼다. 한없이 게으름 피우고 싶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있었으니 그것은 푸른 하늘, 향긋한 꽃향기, 좋은 날씨, 아니다! 그보다 강력한 이 있다. 그건 바로 우리 집 늦둥이, 막내다. 토요일 아침, 피곤에 찌들어 퍼져있는 늙은 부모 앞에서 기대에 찬 간절한 눈으로 그녀는 말한다.



어딘가 재밌는데 놀러 가고 싶다.
집에만  있는 건 좀 그런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지난봄, 어딜 갈까 고민하다

 과감하게 벚꽃이 한창인 여의도에 가기로 결정한다. 복잡한 게 싫어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이다. 비장한 각오로 지성인답게 차는 집에 고이 모셔두고 버스를 타고 가볍게 나선다. 사람들이 모여들기 전 오전 9시쯤, 그 유명한 여의도 벚꽃길에 들어선다. 명성답게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우릴 맞이한다.


국회앞 벚꽃길


캬. 나오길 잘했다.



어기적어기적 마지못해 나오긴 했는데 꽃길을 걸으니 또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웨딩마치를 들으며 걷던 예식장이 생각날 정도. 그때의 몸매도 나이도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때의 마음만은 그대로라고 말하고 싶다. 한참을 착각과 환상 그 어디쯤 나만의 생각의 빠져 즐기다 슬슬 다리가 아파온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나. 마침 근처에 뷰가 좋은 카페가 보여 재빠르게 찾아간다. 뜨끈한 커피를 시켜놓고 앉아있으려니 막내가 눈앞에서 재롱을 떤다. 어디서 찾았는지 카페에 비치해 둔 머리띠란 머리띠는 죄다 한 번씩 쓰고 나와 포즈를 취한다.



창피해하는 사춘기 오빠의 눈총은 아랑곳하지 않는 그녀, 그녀만의 막간 패션쇼를 즐긴다. 나는 발불출처럼 그 순간을 놓칠세라 이쁜 모습을 찍고 또 찍으며 딸바보 엄마가 되고 만다. 한심하게 우리를 쳐다보던 아들은 지겨운지 음료 다 마셨으니 나가자고 성화. 어떻게 왔는데 그냥 갈 수 있나. 무시하고 한동안 막내의 재롱쇼를 즐기고 꽃길, 인파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참 뒤에나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세상은 계획대로 안 되는 것투성이다.

연년생 남매를 낳고 육아성수기가 지나고 좀 쉴 만해진 때, 내 나이 서른 끝자락에 새 생명이 덥석 생겼다. 셋째가 생겼다는 기쁨보다 계획에 없던 에 걱정이 앞서던 나. 막상 낳고 보니 그간 걱정이 무색해  정도로 이뻤다. 하는 짓도 이쁘고 생긴 것도 이쁘고 공부를 안 해도 이쁘고 생떼를 부려도 이뻤다. 신이 주신 뜻밖의 선물은 늙은 애미가 북적이는 여의도 벚꽃놀이를 나오게 만큼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세상은 계획된 일로 평화롭고 사고처럼 느닷없이 찾아온 일들로 또 재밌어진다. 이렇게 세상은 울퉁불퉁 둥글둥글 돌아가나 보다. 폴짝폴짝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는 막내 곁을 든든히 지켜주는 아빠와 오빠의 뒷모습을  보며 조화로운 세상이치를 새삼 깨닫는다.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늙은 애미는 오늘도 막내 조련사의
뜻대로 잘 놀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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