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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Jun 16. 2024

나는 정혜인이 아닙니다만,

라라크루 화요갑분 (헤어스타일)

나의 숏컷은 고등학교 1학년때 부터였다. 무슨 이유였을까 단발머리가 촬랑 거렸던 그때 반듯한 교복을 챙겨 입고 미용실을 찾았다. 머리를 짧게 잘라달라는 말을 하고 가운을 입고 자리에 앉았다.


"귀밑 3cm 맞지 학생?"

"아니요. 그것보다 더 짧게요" "그럼, 컷트가 될 것 같은데" "네, 컷으로 해주세요"

그렇게 촬랑 거렸던 머리는 미용실 아주머니의 손놀림에 따라 싹둑싹둑 잘려 나갔다. "학생 요 정도면 되려나" 아주머니가 내민 거울 속에는 단발도 아니고 커트도 아닌 어중간한 머리 길이의 버섯돌이가 보였다.


"아니요, 이것보다 더 짧게요" "학생 그러면 아주 짧은 숏컷이 되는데 괜찮겠어."

"네" 짧은 대답과 함께 다시 미용실 아주머니 손놀림이 빨라졌다.

"너무 짧은 거 아닌지 모르겠네" 확신 없이 흘러내는 말소리에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니 스포츠머리의 남자아이가 정면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문득 예전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고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무척 맘에 들어요" "학교에서 괜찮겠어?" 아주머니는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계셨다.

괜찮다고 맘에 든다는 말로 아주머니를 안심시키고 미용실에서 나왔다.

빡빡머리에 체크무늬 치마 교복을 입고 있는 키 작은 남자아이, 사람들 눈에 그렇게 보였을 것 같다.


사람들의 시선, 무슨 연유였는지 시선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와 저기 쿨이다" (쿨 : 추억의 90년대 혼성그룹 (여자 가수가 짧은 스포츠머리였다)

멀리서 나를 보고 소리 지르던 여학생들 ㅋㅋ 나를 유명 여가수로 착착했던 모양이다.



다음날 교문 앞에서 두발 불량으로 선도부 선배들에게 걸려 학생과로 불러 갔다.

무릎 꿇고 두 손을 바짝 들고 학생과에서 벌을 받고 있을 때쯤 "뭐야, 아침부터 복장, 두발 불량이 왜 이렇게 많아" 툭, 툭 우리 앞을 지나가던 선생님들은 출석부로 아이들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그땐 그게 체벌이기보다는 터치에 가까운 선생님만의 관심 표현이었다. 지금은 큰일 날 일이지만) 어쨌거나 머리가 출석부에 닫기 전 "어, 네가 여기 있어?" "그리고 머리가 그게 뭐야?"


"주말에 자다가 껌이 정수리에...." 차마 거짓을 다 말하기 전에 "껌이 머리에 붙어서 머리를 밀었구나, 교실로 돌아가" "이 학생은 문제 학생 아닙니다. 제가 보장해요"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국어 선생님은 이미 내 등을 떠밀고 있었고 당분간 얌전하게 학교 다니라며 어서 가라고 손짓하셨다.


그렇게 나의 내면과 외면에서 울부짖던 반항은 껌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해프닝으로 끝나가려 할 때 2명의 여학생이 나처럼 스포츠머리를 하고 등교를 했다. 여학생 스포츠머리 주동자로, 다시 학생과로 불러 갔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학생주임 선생님과의 친분으로 주동자에서 모범생이 되어 교실로 복귀했다.


나의 일탈이 되어준 숏컷은 남편을 만날 무렵 나의 헤어스타일이었다. 숏컷으로 형제처럼 우정을 쌓았던 남편은 어느 순간 짧은 머리가 싫다며,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길러 주길 원했다.


둘째를 낳고 마음의 일탈을 이기지 못해 숏컷을 감행했었다. 며칠 동안 얼굴 마주칠 때면 진심으로 화냈던 남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남편을 닮은 아들도 엄마의 짧은 머리를 싫어한다. "엄마, 남자 같아서 싫어"

아들의 그 말을 듣고 난 후 더 이상 숏컷을 고집하지 않고 있다. 만약 내가 정혜인처럼 눈이 땡글하고 갸름한 얼굴에 하얀 피부였다면 그랬다면 아직도 숏컷을 고집하고 있지 않았을까, 우리 집에 사는 두 남자를 위해 마음에서 일렁거리는 숏컷의 욕심을 폭탄 머리로 풀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그 폭탄 머리 언제 풀 거야, 나 엄마 그 머리 너무 싫어"

사춘기 딸이 던진 한마디에 며칠 고민하다 폭탄 머리를 차분하게 풀고 돌아왔다.

"엄마, 잘했어" 딸이 칭찬했다.


그리고 나는 차분해도 너무 차분한 머리를 보며 숏컷도 폭탄 머리도 하지 못하는 마음을 글로 풀어가고 있다.


좋아하는 배우 정혜인


한 줄 요약 : 뭣이 중한디, 가정의 평화기 중하지!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화요갑분#헤어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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