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소한 짐을 싸더라도 빼먹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책 한 권.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주제의책을 가방에 쑥 밀어 넣고 집을 나선다.
책과 함께 여행하면
아침 일찍, 자기 전, 비행기를 기다리거나, 비행기 안에서 등 자투리 시간에 꺼내 읽으면 좋다. 이번에 함께 한 책은 글쓰기모임, 라라크루에서 만난 김호섭 작가님의 첫 책 <멈춤을 멈추려 합니다>이다.
이른 아침, 책모닝~
글을 쓴 작가를 알고 그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라라크루에서 나온 작가님들의 책을직접 접하는 것은정말색다른 경험이다. 매일 성실히 글을쓰시던김호섭작가님이 책을 내셨다니냉큼 사서 짐가방에 실었다.
책으로 사람 읽기
글을 먼저 읽고 직접 사람을 만나면 뭔가 어색한데 동시에 왠지 모를 친근함이 있다. 라라크루에서 만난 작가님들이 그렇다. 의리로 정으로 라라크루 작가님들의 책을 꾸준히 사서 모았다.이번에는 신상이면서 얇고 가벼운 호섭작가님 책이 먼저 눈에 들어와 읽기시작한다.
무엇보다 제목이 취향저격이다. 삶의 끝같은 온갖 시련을견뎌내고살아남은 그는 덤으로 주어진 삶을 포기하지 않고즐기며 성실히 살아낸다. 매일 인천 자유공원을 걷고 산책하고 운동하며 겪은 사람들, 에피소드는 그의잔잔한 일상에 보석 같은 깨달음을 주었고 매일 쓰는 삶을 통해 그의 생각과 믿음은 단단해져 간다. 삶을 긍정하고 즐기며 사는 일상생활자의 소소한 이야기다. 가볍게 쓴 것 같지만 전체적인 구성과 차례가 이과생답게 굉장히 조직적이고 꼼꼼하다. 털털한 듯 소소한 일상을 적었나 싶지만 치밀하게 계산된 작가의 의도와 열정만은 숨길 수 없다.덜렁쟁이인 나에게는 배울 점이 많은 책이다.
어른으로 사는 고단함
어른으로 사는 삶은 고달프다. 다양한 역할 속에서 나 자신을 잃기 쉽다. 아빠/엄마로, 회사원/교사(으)로, 남편/아내로 숨 가쁘게 바쁜 30~40대를 보내고 나면 번아웃이 오기마련이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고 지금도 그 어두운 터널 같은 시간을 관통해지나가가고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은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데 나만 불행하고 불만투성이인 느낌, 다른 사람들은 알콩달콩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는데 나만 아닌 것 느낌, 출처가 불분명한 공허감과 외로움이 지금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이 책은 나처럼 방황하는 중년어른이 가진 괴로움에 대한 동병상련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부정적인 것들을 나름의 방법으로 극복해 가는 그의 이야기를 읽는다. 몸을 단련하는 일을 귀하게 여기는 모습, 매일매일쓰는 습관을 지켜내는그의성실한 모습을보며 생각한다.
자신을 돌보고 단련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고 있구나!
부정적인 생각에서 나를 건져 올리려면 건강한 내가 먼저 필요하다. 내 감정과 욕구를 돌보지 않는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매일 써야 할 것이고. 쓰는 것은 결국 나를 돌아보는 삶이될 테니.쓴 커피 한잔 머금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남에게 맞추느라 나를 부정했던 시간들, 나를 믿지 못하고 불신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나를 괴롭힌 건 결국 나였다.
24시간이 모자라는 선미언니처럼
제주여행의 끝자락, 체크아웃 시간을 앞두고 마지막 여정인 숙소 앞 커피숍을 찾는다. 24시간이 모자라게 열심히 살아가는 호섭작가님은 '선미언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를 닮은 노래, 가수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에서 따온 별명이라고. 마침 숙소 앞'선미다방'이라는간판이 보여 반갑게 찾아간다. 책의 마지막 챕터를 읽을 때라 장소도 타이밍도 굿이다. 나도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잘 살고 있나?! 왠지 그 부지런함은 따라갈 자신이 없다.
길은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숙소 앞 소품가게 '1월 구름'에서 셀프사진을 찍었다. 혼자 하는 여행의 단점은 내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것. 실은 찍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늘가족이나 친구, 아이들이나 동료들을 찍어주는 일에 익숙했던 터라 나를 찍는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왠일인지 나도한 번쯤제대로 찍고 싶다라는 생각에용기를 내보았다. 요즘 소위 MZ 친구들은 혼자서도 자신감 넘치는 완벽한 포즈로 능수능란하게 셀카를 찍던데,나는 너무 민망해서 누구한테 부탁하는 것도 스스로 찍는 건 남의 일이였을 뿐이다. 그런 내가 용기를 내서 셀카에 도전했다.
예상했던 대로 어정정한 표정, 어쩔 줄 모르는 팔과 다리, 늘 함께하는 내 몸이지만 이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누가 어떻게 하려고 말해주면 좋으련만. 속절없이 정해진 시간이 흐르니 어쩔 수 없이 '에라, 모르겠다'하고 리모컨 셔터를 계속 누른다. 수십, 수백 장을 찍고 나니 조금씩편해진다. 어깨에 힘을 빠지고 이까지 드러내환하게웃기도한다. 급기야는 CF모델이라도 된 것처럼온갖 가증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하고.
30분의 셀프촬영이 끝나고 잘 나온 사진 한 장을 선택하면 주인 언니가 그 사진을보정하고 인화해 준다고 했다. 찍을 때는 힘들더니 막상 찍고 나니 또 욕심이 생긴다.추가요금까지 내고 두 장을 골라 전문가의 손길에 맡겨본다. 다음 날 도착한 사진, '오~ 제법 괜찮은데'.만족스럽다.
나와 친해지는 일
셀프촬영을 마치고 나니 큰 일을 한 것 같은 피로감이 몰려든다. 사진 찍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며 한 장을 골라 카톡프사(카카오톡 프로필사진)에 올린다.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친한 친구한테 전화가 온다.
우리 친구, 사진 이쁘게 찍었네. 근데 너 엄마하고 똑같아~
맞다. 난엄마 딸이었지. 멀리 도망치려 해 봤자 소용없다. 얼굴도 닮았고 성향도, 식성도 똑같다. 심지어 아픈 곳까지. 우리 엄마가 나이 들수록 외할머니 하고 비슷해진 것처럼 나도 그런가 보다.그런데 우리 엄마는 소싯적 미인으로 유명했기에 그리 기분 나쁜 말도 아니다. 다만 내가 밝게 웃고 편할 때만울 엄마의 미모가 나올 뿐이다. 내 표정을나만모른 채 살고 있지만 친한 사람들은 내 얼굴에 익숙할것이다. 때때로 그들이 전해주는 내 모습은 낯설게느껴지긴 하지만 말이다.
나를 긍정하는 삶
나와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거울도 자주보고 사진도 자주 찍고 내가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더 열심히 살펴봐야겠다. 아이들도 많이 컸고 나는 늙어가고. 언젠가는 아이들은 떠날 것이고 나는 홀로 남겠지. 어찌 생각하면지금이 나와 친해지기에딱 맞는 시기다. 그런 이유로나는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to go list, to do list"를 계속 추가한다. 세상을 넓고 할 일도 많고 갈 곳도 많다. 다만, 내 건강과 재력이 허락 준다면말이다.
역마살+오지랖+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싶은 내 성향을 인정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가정주부면서 교사인 내가 그런 성향을 드러내고 사는 것이 무척이나 눈치 보이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겐 눈꼴사나운 일일수도 있으니 자제하고 누르며 살았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니 아프더라. 몸도 마음도. 이제는 이런 나를 인정하려고 한다. 내가 나답게 살 때가장 편하고 밝아지니까 다른 이유는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고 언제 어떻게 아플지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막 50세를 코 앞에 두니 명확해졌다.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내가 행복하고 웃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뿐. '내 욕구와 바람의 멈춤'을 멈춰야 할 때인가.
다른 이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긴장하고 불안해했던 시간을 접고 나의 기준에 맞춰 나의 삶을 살아갈 때다. 그것이 하늘의 명, 지천명(知天命)인 걸 이제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