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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천개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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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Dec 12. 2024

두 번의 결혼식과 두 번의 축사

제자와 나 : 같이 익어가는

다음 책은 20대 제자들과 한
독서모임 이야기로 써보면 어떨까요?


첫 책이 아직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출판사 사장님은 다음 책을 제안하신다. 반가운 마음지만 일단 첫 책을 마무리하고 천천히 준비해 보겠다고 했다. 겸사겸사 청춘독서클럽을 같이 했던 20대 제자 멤버들 소집해 볼까.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으니 한동안 잠잠했던 톡방에 노크를 한다.



얘들아, 잘 지내니?
우리 얼굴 한번 볼까~~
출판사 사장님이 우리 이야기가 궁금하시다고 다음 책으로 만들어보자시는데~



 졸업한 20대 제자들과 했던 독서모임 B.T.F (Book, Talk, Friends)는 청춘들의 인생상담소였다. 책을 읽고 질문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2022년 7월 정기모임을 마지막으로 하고 그 이후에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모임을 한다. 다들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6개월에 한 번씩 어쩌다 보니 정기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도 아이들은 느닷없는 선생님의 소집명령에도 당황하지 않고 휘리릭 모인다. 1차는 맥주, 2차는 찻집 그것도 취칙한 제자가 쏜다고 당당하게 외쳐서 못 이기는 척  얻어먹었다. 제자들이랑 오래 인연을 이어가면 이런 뜻밖의 선물을 받기도 한다. 제자가 사준 밥을 덥석 얻어먹고는 뿌듯해하는 나. 아직도 나는 철부지 선생인가 보다.  



첫 번째 제의


선생님, 저 이번에 이직에 성공하면
00이랑 결혼하려고요.
프러포즈도 했어요.
그래서 말씀드리는데,
선생님께서 주례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아니, 이게 무슨 일이고?! 둘이 잘 어울린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결혼이야기가 이렇게 빨리 나 올 줄이야. 게다가 나에게 주례까지 부탁하다니. 반가움, 고마움과 동시에 고민에 빠진다. 내가 결혼에 대해 뭔가를 얘기를 할 만큼 잘 살고 있나. 아직도 결혼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도 많은데. 게다가 제자는 아직 20대 후반, 결혼하기엔 조금 이른 나이인데 괜한 걱정에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조심스레 묻는다.



이 친구는요.
제가 어떤 모습을 보여도 그냥 편하게 다 받아줘요.
이 친구옆에선 춤을 추든 노래를 하든 창피하지 않아요.



아, 그런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내 모든 걸 보여줘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 역시 내 제자답다. 아니, 나보다 훨씬 낫다. 나는 좋은 것, 멋진 것만 보여주했었는데... 참으로 어리석은 나였다.


그 친구는 제가 무모하게 장사를 한다고 했을 때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며 전적으로 믿어주었어요.



그래, 진짜 서로 잘 만났다. 자신의 가능성과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이라면 그걸로 된 거다. 나는 나한테 하는 말인지 제자한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되뇌다 결국 주례제의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래, 잘 결정했다.
결혼 미리 축하해.
샘이 주례는 좀 힘들 것 같고
 축사는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겠니?



이 한 마디를 내뱉고는 아직 날짜도 정해지지 않은 결혼식의 축사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실은 그때 뭘 입고 갈까 가 더 큰 관심사긴 하지만. 정말 큰 영광이고 감격스러운 일이다. 20년을 보아온 제자의 결혼식의 축사를 맡게 되었으니.


제자는 워낙 사회성이 좋아서 목사님이며 선생님들에게도 인기가 좋은 아이였다. 그런데 그 모든 쟁쟁한 실력가들을 제치고 내가 주례를 맡게 되다니 진짜 가문의 영광이다.


두 번째 제의
선생님 저 결혼해요.


나의 첫 학교, 담임반 아이의 톡이다. 연달아 두 번이나 제자들의 결혼소식을 듣다니. 기쁘면서도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정말 잘 되었다고 축하부터하고. 실은 몇 달 전 만났던 때는 결혼 얘기는커녕 "제가 결혼할 수 있을까요?" 하며 푸념하던 그녀였다. 그래서 궁금한 게 많았던 나는 어찌 된 일이냐며 어떻게 만났고 뭐가 좋고 등등 폭풍 질문을 쏟아냈다. 제자는 기다렸다는 듯 핑크빛 사랑에 빠진 생생한 연예이야기를 신나게 전해주었다.



선생님, 저 남자친구랑
한번 뵈러 가도 될까요?


반가운 제안이다. 언제든 오라고 바쁜데 괜찮냐고 물으며 날짜를 잡고 만났다. 상기된 표정의 깨발랄 예비신부 제자와 흐뭇한 미소로 편안해 보이는 예비신랑감. 첫눈에 잘 어울리는 한쌍이라고 직감했다. 실은 만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결혼 얘기가 오가서 노파심에 조금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고 보니, 둘의 조화가 찰떡이다. 제자 예나는 솔직하고 거짓이 없다. 좋으면 무조건 퍼주고 싫으면 딱 잘라 선을 긋지만 좀처럼 그런 일이 없기에 내숭 떨거나 과장 없이 발랄하고 진실한 아이다. 장점이 많은 아이였지만 거친 사회생활 속에서 많이 지쳐 보였었는데. 그랬던 아이가 남자친구를 옆에 있으니 얼굴이 환해지고 더욱 명랑해졌다. 짧은 연예기간에 어쩜 그리 할 얘기가 많은지 조잘조잘 신이 나서 얘기하는 그 모습이 참 예쁘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다른 제자도 결혼소식을 전해주었다 샘이 주례 아니 축사까지 맡게 되었다고 말하자, 이 친구도 냉큼 묻는다.


샘! 제 결혼식에도
축사해 주시면 안 돼요?


대번에 웃음이 터진다. 엉겁결에 축사를 두 번이나 하게 생겼다.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고 일을 하며 사는 쉽지 않은 결혼생활을 어기적어기적 간신히 하고 있는데 이런 내가 이렇게 앞장서서 누군가한테 축사나 조언을 할 수 있을까. 짧은 고민이 또 한 번 스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제자의 급제안에 철딱서니없이 또 오케 하고 말았다.

예쁜 예나, 멋진 신랑


그 이후로 나는

어쩌다 보니 가장 아끼는 제자 둘의 결혼식에 두 번의 축사를 맡게 된 나는 두 가지 고민에 빠진다.

 

하나는 결혼이 뭘까?

다른 하나는 뭘 입고 갈까?


너무나 추상적인 질문과 너무나 현실적인 고민을 지난 몇 달 동안하고 있다. 읽는 책마다 결혼에 대한 글에 밑줄을 쳐가며 글감을 모으고 있고 내 결혼 생활을 돌아보며 내 인생에 결혼은 무슨 의미일지 꼽씹어보고 있다. 과연 제자는 교사의 스승이다. 이렇게 나를 또 성장시키고 있으니... 비밀 메모장에 제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몇 번이나 쓰고 지우며 그럴듯한 축사를 준비하고 있다. 또 동시에 주말이면 근처 아웃렛을 서성이결혼식에 어울리는 옷을 스캐닝하고 결혼의 설렘을 되새김질하며 결전의 그날을 또박또박 준비해 본다. 


나, 잘할 수 있을까?




#라라크루10기

#2-1미션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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