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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Aug 19. 2024

선생님, 숙제 안 하면 어떻게 돼요?

All Right English : 방학숙제의 참맛

요즘은 방학숙제가 거의 없다.

아이들이 대부분 학원을 다니거나 사교육으로 바쁘기 때문에 방학숙제를 내주는 건 아주 센스 없는 행동라는 걸 암암리알고 있는듯 하다. 하지만 나는 반대다. 사교육이  당연히 존재하는 것 으로 생각하는 것이 불편하다.


애들아.
방학숙제는 두 개야.
하나는 영어문법책 1권 풀어오기.
다른 하나는 영어원서 1권을 읽고 독서록 쓰기.



영어를 공부하는 두 가지 방향


1. 정확한 지식

2. 풍부한 어휘와 독해력


언어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알기 위해서는 문법지식이 필요하고 그 언어지식을 자유자재로 쓰기 위해서는 독해력과 맥락에 맞는 어휘력이 필요하다. 그런 능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영어원서 읽기다.  이 모든 걸 쉽게 풀어 설명하고 아이들에게 뜻깊은 방학을 보내라고 작별 인사를 했었다. 그리고 한 달 후.


선생님. 숙제를 못했는데 어떡해요?
숙제 잘하면 뭐 있나요?



보이지 않는 그 무엇

개학과 동시에 질문이 쏟아진다. 숙제를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하면 뭔가 선물이나 보상이 있는지. 숙제를 한 아이들보다 숙제를 안 하고 질문하는 아이들이 더 많다. 질문을 가만 듣고 있다가 아이들 눈을 보고 이야기한다.


얘들아,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누군가 벌을 주거나 때리거나 점수를 깎지 않아.
그리고 숙제를 했다고 해서 상을 주거나 보상을 주지도 않고.

그런데 숙제를 성실히 다하면 분명히 달라져.  수업시간에 샘의 설명이 훨씬 더 잘 이해가 될 것이고 본문의 글을 읽는 게 조금 더 수월해지겠지. 이렇게 너희들의 영어실력에 도움이 되니까 샘이 숙제를 내준 것뿐이야. 할지 말지 선택하는 건 너희들의 몫이고.

샘은 너희들의 노력을 보고 칭찬을 해주고 격려를 해주지. 스스로 뭔가를 해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니까.
샘이 그 노력을 기억할 거야.
그것뿐이야.



아이들을 조정하는 쉬운 방법은 보상과 처벌이다. 지금 당장 하기 싫은 일을 하도록 하려면 때때로  보상과 처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 계속 이용하다 보면 아이들은 교육의 본질적인 즐거움과 의미를 찾기 힘들다. 아이들을 내 맘대로 빨리 바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교직경력 20년이 넘었다. 이제 진짜를 가르치고 싶다. 쉽고 편한 길을 택하는 것 대신 정공법으로 아이들이 진정한 배움의 즐거움, 그 자체를 맛보게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어렵고 힘들긴 하지만 것이 진짜다. 정말 중요한 것을 말할 때는 아이들의 눈을 보고 진심으로 말하면 아이들은 듣는다. 그리고 하나 둘 아이들이 변하기도 한다.



숙제검사를 한다.

많지는 않지만 영어원서를 읽고 독서록을 내미는 아이들이 있다. 어떤 아이는 <노인과 바다>를 원서로 읽었다고 한다. 그 책을 읽고 어땠냐고 물으니 열심히 노력해서 잡은 참다랑어가 모두 사라져서 허무해 보였지만 그래도 그 행동은 의미 있었다고 아이는 담담하게 말한다. "정말 큰 깨달음을 얻었구나"라고 격하게 피드백해 준다

 그리고 어떤 아이는 두꺼운 문법문제집을 혼자서 다 풀었다고 한다. 아이 어깨를 토닥이며 "너무 애썼다. 고생했다"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기분이 어땠냐고 묻는다.


뿌듯했어요.



바로 이거다. 이게 공부의 참맛이다. 나는 그저 이렇게 숙제를 해 온 아이들에게 다 한 소감을 물을 뿐이다. 힘들게 숙제를 스스로 한 아이는 보상이나 처벌과는 다른 차원의 선물을 가슴에 새기고 기억한다. 스스로 노력한 것이 진짜라는 것. 그것이 더 오래간다는 것을 몸으로 새기고 머리로 기억하고 마음으로 담게 된다. 멋쩍게 웃으며 말하는 아이의 등을 한번 더 토닥인다. '너의 노력을 나는 기억하고 칭찬한다'라는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가  아이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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