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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Oct 13. 2024

헛수고의 가르침

중년의 진로수업

교수님께서 박사과정 수료생들까지
다 한번 뵙고 싶다고 하셔서 연락드렸습니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나긋나긋한 목소리, 친절한 말투, 전화하신 분의 신원과 목적까지 차근차근 전하는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던 선생님은  대학원 지도교수님께서 박사과정에 있는 사람들과 수료생들까지 모두 한번 만나는 자리를 가졌으면 하신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지도교수님의 호출과 너무나 친절한 선생님의 설명에 그만 '네~'하고 금방 답하고 말았다. 그리고 어제 그 어색한 만남을 가졌다.


수료하고 10년이 지났지만

2013년 박사과정을 시작하고 아직까지 졸업논문을 못 썼다. 박사과정의 모든 수업과 공부는 재밌었지만 논문은 또 다른 문제였다. 문제의식과 탐구의지는 충만했으나 통계라는 벽에 부딪혀 멈추고 말았다. 지독히도 문과생인 나는 숫자 앞에서는 얼음이 되고 만다. 교육의 효과는 수치나 한 번의 평가로 가늠할 수 없다고 둘러대면서. 실은 통계가 어려워 포기한 거면서 그걸 인정하긴 싫은가 보다. 졸업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수료 이후에도 각종 연구회를 꾸리고 독서회를 만들어 계속 나만의 연구는 이어나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무슨 말씀을 싶으셨을까.

교수님은 어렵게 말씀을 꺼내셨다. 적체된 박사과정생들이 하나씩 논문을 쓰고 나갔으면 다고. 장수생인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오랜만에 뵌 교수님의 모습에서 10년의 세월이 먼저 느껴졌다. 한결 부드러워진 교수님의 말투와 온화해진 분위기는 그간 있었을 여러 가지 삶의 굴곡들을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다. 4년 전에는 많이 편찮으셨고 지금은 회복하셔서 대학원 현장에서 많은 실무를 하시느라 바쁘시다고 하셨다. 그래도 여전히 수료생으로만 남아있는 박사과정 선생님들은 꼭 챙기고 싶으셨다고 진심 어린 말씀을 덧붙이셨다. 나이로 따지자면 나와 비슷한 연배, 남편과 나이도 같은 교수님이지만 세월의 흔적은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예전의 날카로움 대신에 둥글둥글 해진 교수님의 모습이 왠지 내겐  편안하게 느껴진다.


눈에 익은 그림 한 점

교수님께선 사모님의 눈치를 살피시면서 새로 이사한 집에 10여 명의 제자들을 급 초대하셨다. 몇몇 학생들은 예상한 터라 작은 선물도 미리 준비하긴 했지만. 그래도 사모님께 폐를 끼칠세라 잠깐만 있다 나오자며 결의에 찬 눈빛을 교환하고 그 어려운 교수님 댁에 조심스레 발을 들였다. 교수님 댁은 강남의 한 아파트였다. 도심 한 복판에 이렇게 멋진 조경을 가진 조용한 주택단지가 있을 줄이야.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넓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장식한 깔끔한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갈한 모습이다. 하지만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따로 있었다. 눈에 익은 그림 한 점, 이우환의 그림이었다. 미술관에서나 던 그림이 볕 좋은 거실 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교수님께 아는 척을 하자, 교수님의 어머님이 주신 거라 말씀해 주셨다. 부러웠다. 그림 한 점을 집 안에 들일 수 있는 여유와 안목이.

아트조선, 2021.02.26 캡쳐


냉큼 달려온 갤러리

마침 이우환, 로스코가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에서 하고 있다는 걸 기억해 냈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바쁜 일을 끝내고 한 달음에 달려갔다. 이우환 한 명만으로도 벅찬데 로스코까지 같이 선보이는 전시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먼 길이지만 바로 달려왔다.

저 선명한 붉은 간판에 압도되어 설렐 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경비원의 무심한 한 마디. 


일요일은 휴관입니다.



청천벽력... 무턱대고 부지런을 떨다 망연자실. 그저 이우환의 작품을 보고 싶어 왔을 뿐인데. 괜한 부러움과 부주의한 의욕의 결과.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낯설지도 않지만 허탈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멀리 이태원까지 왔으니 인터내셔널 푸드 하나는 먹고 가야지 어설픈 차선책으로 케밥을 먹기로 한다.



한 입에 들어가지도 않는 케밥을 욱여넣는다. 한심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난 건지 크게 한입 베어 물고 우걱우걱 격하게 씹어먹는다. 기왕 이렇게 됐으니 힙한 한남동 거리라도 거닐기로 한다. 날이 좋고  바람이 시원해 어디든 좋다.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합리화하지만 나는 참 바보 같다.


무작정 직진

 일단 뭔가를 결정하면 직진이다. 무작정 길을 가다 벽을 만나면 돌아 나올  뿐 좌절하지는 않는다. 길을 잃는 것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의욕에 넘쳐 실수가 잦은 편이지만, 실행하면서 수십 번 수정하고 바꾸고치면서 결국 나만의 길을 찾아간다. 먼저 지도를 보고 공부를 하고 계획을 세워 길을 나서는 것이 아니라 길을 먼저 나서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스타일.


 박사과정도 그렇고 미술편력도 그렇다. 그냥 해보고 배운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 재밌다. 길을 잃고 헤매도 뭔가를 하는 게 좋다. 남들 눈에는 헛수고로 보이는 무도한 시도를 수십 번하지만. 모임 말미에  나의 생각을 궁금해하시는 교수님께 서툰 내 생각을 전했다.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제 나름의 공부를 했습니다.
슬로리딩을 실천하고 샛길독서를 만들고 그 과정을 글로 써서 책이 곧 나오긴 할 건데
그런 제 생각을 뒷받침할 이론적 근거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교수님을 다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 근거를 찾는 일이 논문이 될지,
저널이 될지, 책이 될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저는 계속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과 고민의 과정을 같이 공부하는 분들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마침 교수님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Ambiguity Tolerance (모호함에 대한 관용성)

공부를 쉽할 환경도 조건도 아니지만 시간을 쪼개 공부하는 것이 좋고 그게 박사과정이든 연구모임이든 독서모임이든 상관이 없었다. 뭔가를 통해 배우면 그뿐이다. 아직 모르는 게 있다는 걸 발견하는 게 재밌고 그걸 도전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좋았다. 잘 모르는 상황이 내겐 전혀 스트레스가 아니고 오히려 큰 자극이 된다. 실수도 힘들지는 않다. 모르는데도 가만있는 게 더 힘들 뿐.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아무것도 못하는 게 더 큰 난관이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미술을 배우고 익히고 공부할 생각과 이유를 찾기보다는 그저 작품을 즐긴다. 그림 한 점을 집에 들이고 취할 환경도 상황도 아니지만 그저 그림이 주는 모호한 메시지를 내 식대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즐겁다. 박사라는 졸업장도 위대한 그림 한 점도 가질 수는  없지만 그저 그림을 찾아보고 그 시간과 보는 과정을 즐긴다. 예술을 추앙하고 다다를 수는 그 지점을 동경할 뿐이다.  이런 과정이 모두 헛수고일까.


헛수고의 가르침

섣부른 실행력은 종종 용두사미의 종적을 남기곤 한다. 졸업논문이든 미술관 관람이든 멀리 돌아 결국 종착지에 다다르긴 할 거다. 계획보다 다소 늦거나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리긴 하겠지만. 실수도 헛수고도 없으면 좋지만 그건 너무 비인간적이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나의 헛수고를 치장한다. 아까운 주말 오후를 허비해 놓고는 괜한 민망함에 이렇게 글쓰기라도 충실하게 완수하려는 걸까. 문득, 마왕 신해철의 말 한 마디가 떠오른다.




흔히 꿈은 이뤄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고

또한 그 꿈이 행복과

직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

네가 무슨 꿈을 이루는지에 대해서

신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꿈을 이룬다는

성공의 결과보다는

자신의 행복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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