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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Oct 03. 2024

오늘, 하늘 열린 날

중년의 진로수업

아니, 엄마는 맨날 아프다면서
어딜 그렇게 다니는 거야?


오늘은 휴일,

오랜만에 가족과 같이 바람 쐬러 오이도로 나간다. 차 안에서 고등학생 큰 딸이 작정한 것처럼 나를 꾸짖는다. 다 큰 애들이랑 같이 살면 가끔 나도 어린아이처럼 이렇게 혼이 나곤 한다.  


언제부터였나

애들이 자기 밥 한 끼 정도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즈음부터 나는 내 안의 욕구를 따라 살기 시작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찾아 먹었다. 큰 병이 아니면 살살 몸을 달래가며 살았다. 이렇게 살아  나는 또 힘을 낼 수 있는데. 딸아이의 채근을 듣고 첨엔 화가 났다가  항변하기도 했다가 그래도 안 통해서 그냥 "미안해"라고 말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열심히 돌아다니다 집에 와서 피곤하고 아프다고 하니 아이들 눈엔 내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옆에서 듣던 막내딸이 작은 소리로 말한다.


엄만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은데...



'아이코, 이 녀석 제법이다. ' 제일 작은 녀석이 엄마하고는 제일 잘  통한다. 전생에 나는 숲 속에 살던 허클베리핀이었을까,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는 사냥꾼였을까. 잘은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해가 뜨면 눈을 뜨어두워지면 자고 밥을 먹으면 나간다. 집에 그냥 있으면 왠지 답답하다. 음식물 쓰레기라도 들고나가 잠깐 바람이라도 쐬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도 열심히 놀고 일하고 실컷 돌아다니다 꼭 집에는 돌아오긴 하는데 그걸로는 부족한가 보다. 


엄마의 취미는 정당한가.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많이 보여주고 많이 경험시켜주고 싶은 욕심에 부지런히 애들을 데리고 다니며 동준서주 했다. 그런데 지금은 각자 나름의 취향을 고집하며 쉽사리 엄마의 추천 코스를 따라나서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더 이상 설득하지 않고 내 취향을 찾아 갔을 뿐이다. 근데 내가 엄마여서 일까 조금 다르다. 엄마의 취향은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한가. 내 건강이 진짜 걱정되어서 딸은 나를 혼낸 걸까. 괜한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쉽지 않은 외출

 내 취향을 찾아 새로운 것을 해보고 가보는 싶은 욕구는 뭔가 힘든 일이 있거나 긴 업무 끝에 더 절실했다. 그러서인지 주말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예약해 두면 주중 업무의 괴로움과 힘듦은 훨씬 견디기 쉬웠다. 그런데 엄마의 취미생활은 쉽지 않다.  돈 말고도 많은 준비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애들이 스스로 밥을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커야 하고, 누군가 아픈 사람도 없어야 한다. 그리고 나가기 전에 미리 가족에게 말하고 허락도 받아두어야 한다. 게다가, 카레든 미역국이든 잔뜩 끓여놓고 밥도 한솥 해두어야 하고.  그런데 문득 궁금하다. 엄마 말고 다른 가족들이 나갈 때도 이렇게 많은 준비를 해야 하나?


오늘, 하늘이 열린 날

곰과 호랑이는 백일동안 동굴에 갇혀 쑥과 마늘을 먹고 견뎠다. 인간이 되고자 하는 신념으로 그 기나긴 고통의 과정을 이겨낸 것이다. 백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밖으로 나온 곰은 어땠을까. 눈이 부셔 밖으로 나오기 힘들지않았을까. 아니면 밖으로 뛰어나와 기쁨에 팔짝팔짝 뛰었을까.


나도 탁 트인 하늘아래 선다.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 뭉게구름, 높은 하늘 아래서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낀다.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인간은 자기 가축화에 가장 성공한 종족이라고 다. 야생의 기억을 고 사회 속에 어울리기 위해 질서와 매너를 지키고 스스로 길들여진 동물.


가끔 야생의 기억을 더듬는 것일까

때론 산으로 때론 바다로 때론 넓은 들판으로 나갈 때 잊어버린 자유를 찾은 것처럼 해방감을 느끼곤 한다. 여행이 그렇고 캠핑이 그렇고 드라이브가 그렇다. 질주하고 싶은 본능, 자연과 같이 하고 싶은 본능, 나를 가두고 싶지 않은 본능이 꿈틀거리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은 스스로가 만든 울타리 안에 옹기종기 모여 살며 규칙을 정하고 따르며 순응하도록 교육하고 감시하고 튀어나가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하며 살았다.



하늘바라기

경기도 끝자락 번화한 도로변 바닷가 산책 한 번, 고작 한 시간의 산책으로 받는 위로 덕분에 도시에 갇혀 일주일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놀랍도록 편리한 인간이 만든 최신식 새장 같은 도시에서 일주일을 버텨냈으면 하루 정도는 저 푸른 하늘을 날아도 되지 않을까. 눈으로 귀로 코로 느껴지는 자연의 향기는 잃어버린 고향의 기억일까.



높이 날지 않는 새

유독 아름다운 하늘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눈이 가는 데로 여기저기 바라보니 바닷물이 드나드는 선착장 갯벌에 갈매기들이 떼 지어 다닌다. 인간이 주는 새우깡을 먹고 싶어서일까, 갯벌 안에 사는 먹이를 찾으러 다니는 걸까. 멀리 높이 날지 않고 머물러 있는 새들을 바라본다. 뒤뚱뒤뚱 걸어가는 비둘기도, 새우깡을 든 사람들 주변만 맴도는 갈매기도 편리하게 얻은 먹이 덕분에 높이 나는 법을 잊게 된 게 아닐까. 인간도 먹고사는 것 때문에 도시에 살게 되는 것처럼, 알고 보면 도시에선 먹는 것도 사는 것도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떠나질 못한다. 결국 자연과 도시 그 언저리에서 우물쭈물 배회할 뿐. '문득, 비둘기, 갈매기와도 우리가 닮은 게 많구나. ' 괜한 동질감에 무리 지어 다니는 갈매기들이 측은해서 한참을 바라본다.


너희들도 날고 싶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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