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구멍

중년의 진로수업

by 화요일
구멍이 점점 뚜렷이 보인다면 환영할 일이야. 이제야 자기 모습을 제대로 본다는 거니까. 이젠 받아들여. 네가 너의 구멍을, 네가 너를. 지금 너의 문제는 구멍이 났다는 게 아니라 구멍이 나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하는 거야.
그런데 말이야. 신은 그렇게까지 대책 없는 구조로 인간을 설계하지 않았거든. 인간의 영혼은 벽돌담이 아니라 그물 같은 거야. 빈틈없이 쌓아 올려서 구멍이 생기면 와르르 무너지는 게 아니라 그들처럼 구멍이 나서 '무엇'이 새로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거야. 바로 그 '무엇'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가. 그렇게 조금씩 영혼이 자라는 거지.
사람의 영혼은 자랄수록 단단해져. 구멍이 난 채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 오히려 그 덕에 더 잘 살 수 있어. 정말이야. 믿어도 좋아.

<유선경(2023), 구멍 난 채로도 잘 살 수 있다, 사랑의 도구들, 콘택트, 101p>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날이 있다.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느낌

사람들의 말은 흩어져 날아가고

덩그러니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은


그런 날 나는 구멍 안으로 들어간다.

앨리스가 땅 속 구멍으로 한 없이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내 안으로 한없이 침잠해 들어간다.

바닥으로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나를 좀 꺼내달라고

여기는 어둡고 무섭다고 외치지만

듣는 이가 없다.


삶은 때때로

잘못 들어간 터널이나

검은 굴 속 같은 미로를 만나기도 한다.


소리치며 울면

누군가 꺼내주겠지만

어리석은 나는

당장 그 어둠을 뿌리치고자

기어이 움직이고 만다.

컴컴한 굴 속을, 깊은 터널을 더듬더듬 걷고 엉거주춤 기어간다.


사방으로 막힌 벽에 미련한 삽질을 반복하다가 결국은 뚫고 기어나가고 만다.


누군가는 밤새워 술병을 비우고

누군가는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누군가는 엄한 사람에게 화를 내기도 하면서

그 구멍을 메우려 안간힘을 쓰지만

난 미련한 삽질만 반복한다.

그냥 두면 될 것을


마음에 구멍이 생기면

차라리 바람이 드나들게 내버려두자.

채우려 말고

감추려 말고



꽉 찬 숨에 헐떡이기보다는

그저 구멍을 드러내고

긴 숨 한번 크게 내쉬고 쉬었다 가자.


참으로 바보같은 나는 그 구멍이 숨을 쉬게 하는 분수공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꽉 채우려고 애쓰며 사는 완벽함 삶이 때때로 멈추고 비워내는 허술함보다 못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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