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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3시

어쩌다 마주친 그대

by 화요일

날이 춥더니

바람이 불다가

어느새 볕이 따스하다.

일요일 오후 3시

나른한 시간


문득 바람 쐬러 가자는 말에

서쪽 끝 회색 공장 언저리에

연안부두를 찾았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구조물들이

제각각 색을 뽐내는 와중에

오후 햇살은 뜻하지 않게

따사롭고


호기롭게 챙겨 온 책 한 권

어지러운 선박들과

통일성 없는 장식품들 사이에

비스듬히 푸르른 하늘과 바다

곁눈질로 흘깃거리며

겨우 책 한 장 펼쳐 넘겼는데

광장 끄트머리

돗자리에 앰프에 마이크에

연신 울려대는 트로트메들리

하필이면 한강의 책이라

읽어도 읽어도 제자리인데

떠들썩한 분위기에

엉감생심 심각한 상념에 빠질 겨를도 없이

얼른 책 장을 덮게 만드는 미묘한 힘




잔인한 여자라 나를
욕하지는 마.
잊지는 않을 거야.
잠시 너를 위해 이별을 택한 거야.
잊지는 마. 내 사랑을
너는 내 안에 있어 길진 않을 거야.
슬픔이 가기까지 영원히




연안부두 즉석 노래방 참가자들


귀에 박히는 가사와

절절한 목소리

고음불가 클라이맥스에

살짝 실망

하염없이 흘러가는 일요일을

붙들어 잡고 싶은

절박함은 매한가지라

자동반사적으로 흥얼거린다



지금 이 순간,

일요일 오후 3시로

딱 멈춰주었으면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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