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요일 Feb 24. 2022

딱 나의 숨만큼 살아갈 용기

<엄마는 해녀입니다>: 포기의 가르침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이 말을 하기까지 몇 번이나 마음을 고쳐 먹어야 했나. 며칠이 걸리기도 했고 몇 개월, 몇 년이 걸리기도 했다. 왜 나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굳이 하고 만들고 온갖 모임을 만들어 스스로 상처받을 일을 자청할까. 모임을 만들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는데. 일을 진행하면서 9개를 잘하다가 마지막 하나가 튕겨져 나가 고장날 때가 있다. 그러면 '아, 아깝네'하고 그냥 마지막 조각을 버리면 될 것을 기어코 빠진 조각, 떨어진 그 한 조각을 찾아 맞추고 끼우고 고치고 어르고 달래서 꾸역꾸역 다른 것들과 맞추느라 괜한 고생을 자청한다. 사람들을 이끄는 일을 좋아하는 나는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한 곳을 향하길 바라는 욕심, 못쓸 완벽주의에 걸려 쓰디쓴 좌절을 경험하곤 한다. 뭔가를 만들거나 뭔가를 공부하는 일에 이런 철저함이 있다면 질 좋은 결과라도 기대해보겠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좀 다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생긴 것도 생각도 제 각각인데 내가 좋아 보이는 그곳으로 이끌어보겠다고 오지랖에 오지랖을 더해 애를 쓰다가 기어코 처참한 시련을 겪게 되니 말이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울퉁불퉁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춘기 아이들과 일 년을 꼬박 무탈하게 지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관심을 주고 정성을 다하고 진심으로 대하다 보면 시기나 형태는 다르지만 십중팔구 아이들은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이곤 한다. 굳었던 마음이 녹고 뾰족한 생각이 둥글둥굴 해지며 조금씩 안정적인 모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본다. 그런데 한 둘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설명하고 이끌어도 그 취지를 왜곡하거나 자기식대로 생각해서 삐딱하게 도전하곤 한다. 이럴 땐 그냥 "아. 아직 네가 변화할 준비가 안되었구나."하고 수용하고 물러서면 될 것을 나는 또 수십 가지 다른 방법과 대화 시도를 하고 애쓰다가 결국 서로의 감정에 생채기를 내고 만다. 손에 안 잡히는 하나 때문에 이미 잡고 있는 아홉을 놓치는 어리석은 실수를 번번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해녀 할머니와 해녀 딸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책 <엄마는 해녀입니다> 이야기는 에바 알머슨의 사랑스러운 그림과 해녀 할머니의 지혜가 담긴 멋진 책이다. 하루는 해녀 딸이 큰 전복을 잡겠다고 욕심을 내다가 죽을 뻔할 위험에 처한다.

<엄마는 해녀입니다> 캡쳐

 위기에서 딸을 구하고 다시 물질을 떠나는 딸에게 해녀 할머니는 말한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 있다 오너라.


 나의 숨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것. 숨이 찰 때는 멈추고, 놓고, 포기하는 것. 이 당연한 일이 나에게는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나의 욕심이 나를 잡아당겨 나의 생명을 위협하기 전에 그만두어야 한다. 나의 숨에 맞게 멈추지 않으면 물숨을 먹고 결국 심연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고 만다. 해녀 딸처럼 나는 포기하고 놓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놓아버린  전복을 아쉬워하지 않고 내가 이미 채운 광주리를 보고 만족할 줄 아는 용기, 그것은 아마도 잡을 수 없는 것들에 욕심내지 않고 이미 내 손에 쥐고 있는 작은 것들에 만족하는 행복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청춘포차 : B.T.F (feat. 동해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