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엔 퇴근송

엄마를 응원해

by 화요일

보컬레슨 두 달째,

이번 달 연습할 곡은 박재정의 <헤어지자 말해요>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스타일로 기승전결이 있는 드라마틱한 노래다. 최근 나온 노래 중 챗GPT에 좋아하는 스타일을 입력하고 추천받은 곡 중 하나. 2~3주 동안 보컬수업을 받으며 고음과 발음, 숨 쉬고 올라가는 부분, 강조해야 할 파트까지 챙기며 꼼꼼하게 반복 연습했다.


연습 또 연습

아침에는 출근길에 연습한다. 2~3 정거장 먼저 내려 가을길을 걸으며 작은 목소리로 흥얼거린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감상에 젖어 노래하면 세상이 다 내 것 같은 기분, 너무 좋다. 내게 노래는 약이고 밥이다. 저녁을 먹고 운동할 겸 연습실에 간다. 집에서 소리 지르며 연습하다가 큰 딸의 잔소리를 몇 번 듣고는 의기소침해져서 이젠 고민 없이 연습실로 직행한다. 보컬학원에 등록하면 24시간 연습실 사용은 무료라서 부담 없이 갈 수 있지만 요즘은 너무 추워서 선뜻 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가려고 노력한다. 작은 방, 작은 모니터와 의자 두 개, 아무도 없는 방에서 한 시간쯤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소리 내서 노래하면 한 주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확~풀린다.

작고 소중한 연습실

퇴근 후에는 퇴근송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퇴근송은 같은 학원 수강생과 강사샘,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열린 무대다. 지난 11월엔 나도 처음으로 도전. 퇴근 후 저녁 8시에 시작한다. 15분쯤 일찍 도착해서 목을 풀고 연습을 짧게 한다. 옹기종기 모여 무대 시작을 기다린다. 작은 무대지만 아기자기한 것이 정감 있다. 참가자들은 중고등학생부터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앳된 엄마까지 거기에 나까지 포함하면 그 연령대가 꽤나 넓다. 드디어 시작, 사회자의 간단한 소개가 끝나고 순서대로 한 명씩 참가자들이 나온다. 수줍게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의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그리고 그 끝에 내 이름이 호명된다. 그런데 무대에 오르자 갑자기 떨린다. 학교 축제에서는 500명이 넘는 아이들 앞에서도 떨지 않았는데... 낯선 사람들과의 첫 무대여서 그런지 긴장과 떨림이 느껴지는 가운데 노래 반주가 시작되었다.


헤어지자고 말하려 오늘
너에게 가다가 우리 추억 생각해 봤어

처음 본 네 얼굴
마주친 눈동자
가까스로 본 너의 그 미소들

손을 잡고 늘 걷던 거리에
첫눈을 보다가 문득 고백했던 그 순간
가보고 싶었던 식당
난생처음 준비한 선물
고맙다는 너의 그 눈물들이
바뀔까 봐 두려워


고음파트로 넘어가는 그때, 떨림도 최고조. 두 손은 갈 곳을 잃고 보컬샘이 알려주신 피드백도 까맣게 기억이 안 난다. 그저 내 멋대로 부르고 끝냈다. 고음에서 최대한 배에 힘을 주고 입과 머리의 공간을 최대한 크게. 턱에 힘은 빼고 하라고 했었는데... 연습과 실제는 다르다. 어쨌든 마치고 내려오는데 큰 박수로 응답해주는 관중들이 고맙기만 하다.


어색하고 부끄러웠던 첫 무대, 그래도 마쳤음에 만족한다. 너무 잘했다며 피드백 해준 직원분의 친절한 멘트에 마음을 놓고 자리에 앉아 긴장을 푼다. 그리고 나온 다음 참가자, 2~3살쯤 된 귀여운 아이를 데리고 온 앳된 엄마다. 노래하려고 아이를 두고 일어서자, 아이가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아이를 안아 무대 옆 의자에 앉혀둔다. 금새 칭얼거리는 아이, 이젠 아이를 안고 노래를 시작한다.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대단하다고 느낀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면서도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엄마,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짜증 한번 내지 않고 결국 완곡했다. 그 열정과 끈기에 뭉클하다. 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전전긍긍했을 보이지 않는 노력이 그려지며 진한 감동이 느껴진다. 응원의 마음을 가득 담아 큰 박수로 전해주었다.



엄마들의 재능은

아이들 육아 속에도 빛났다. 부대끼는 일상의 번잡스러움과 수많은 임무 속에서도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잊지 않았다는 그것만으로 눈부시다. 자신의 꿈, 재능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고 또 대견스러웠던 퇴근송. '일+육아+내 취미'가 나란히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노래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그 자리에 참가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모두 일등이고 대상이 될 수 있지않을까. 문득, 자신의 재능과 취미를 지켜내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두 손 모아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잊지말아요. 우리
우리에게도 꿈이 있었고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음을



#라라크루13기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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