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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Mar 30. 2022

코로나보다 무서운 건

사.사.모 공존일기

어머님, 00 이가 열이 좀 있고
 축 쳐져서 상태가 안 좋아 보이네요.


지난 금요일, 갑작스럽게 막내 초등학교 돌봄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아. 올게 왔나 보다. 다행히 수업이 끝난 터라 급히 조퇴를 하고 병원에 가서 코로나 신속항원 검사를 한다.


, 두줄이다.


막내가 양성으로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 막내만은 걸리지 않길 바랬는데... 초2인 막내가 혼자서 재택 치료하기란 불가능하지 않은가... 주말 내내 생각해봐도 뾰쪽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다행히 미열과 축 쳐지는 컨디션 난조만 보일 뿐 증세가 심하진 않다. 야채를 다져 넣고 닭가슴살을 잘게 썰어 죽을 만들어 먹인다. 고작 2~3술 뜰뿐이지만 어쩔 수 없다. 약을 먹여야 하니 자꾸자꾸 음식을 갖다 바치는 수밖에. 자다 깨다 몇 번을 하더니 다음 날 아침 훨씬 더 나아졌다.


또 다른 문제는 집 안의 방역이다. 마스크 쓰기야 이젠 일상이 되어 할 수 있다 하지만 식기며 욕실사용이며 온갖 집안의 물건들을 꺼내고 넣으려면 손을 타기 마련인데 막내를 쫓아다니며 감시하기 만무하고. 일회용 장갑은 크고 미끄러워서 금방 벗겨지고 만다. 그렇다고 아픈 애한테 방에만 있으라고 잔소리하고 혼내고 다그치기란 쉽지 않다. 실은 가장 큰 문제는 이다. 먹이고 씻기고 막내가 자는 것을 분명 보고 나왔는데 아침이면 막내가 내 옆에 있는 것이다. 허거덩. 마스크를 쓰고 온 것 같긴 한데 어디에 있지?

이때부터 나는 마음의 준비를  것 같다. 방역 대신에 방심으로 아이의 안정과 평화에 중점을 두는 게 낫겠다 생각하며 느슨해진게. 전염병에 걸린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없고 게다가 아픈 아이는 더더욱 엄마를 찾기마련인데 그런 본능 거스르며 철저하게 방역수칙을 강요할 수가 없었다. 나라는 사람은 참으로 매몰차기란 어려운 사람이다. 실은 혼자 자가 격리할 아이가 걱정되어 자포자기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씻고 닦고 소독하고 격리하는 방역이 힘들어 백기를 들었다고 해야 하나. 말도 안되는 변명만 늘어간다.


 일요일 아침, 혹시나 해서 막내랑 같이 보건소에 PCR 검사를 하러 간다. 두 가지 가능성을 마음에 두고서. 하나는 막내의 검사 결과가 음성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얼토당토않는 바람과 또 하나는 내가 양성이 될 수 있다는 최악, 아니 차선의 상황. 왜냐 내가 양성이 되면 막내가 혼자 격리하지 않아도 되니까 최악이 아니라 차선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월요일 아침. 막내 확진 4일째, 출근을 해야 하는데 새벽 7시쯤 온다는 검사 통보가 감감무소식이다. 출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리가 뒤죽박죽. 일단 증상이 없으니, 출근하는 것을 디폴트로 두고 출근지에서 대기하다가 결과 통보를 보고 그다음 일을 하기로 결정한다. 마침 비염으로 코를 킁킁 대는 둘째를 유증상으로 자기 진단 앱에 체크, 등교중지가 뜬다. 둘째한테 막내 약이며 밥이며 줌 수업 참가 도움 등 해야 할 일 3가지를 단단히 일러놓고 출근을 서두른다. 학교 앞에 도착, 내가 양성이 되면 내 수업 시간표며 담임반 아이들 조종례며 다른 선생님이 보강을 하셔야 하니 부장 선생님께 사정을 얘기한다. 조마조마하게 주차장에서 차를 대기하고 기대리는데 띵동 문자가 왔다.


PCR결과 음성입니다.


기뻐할 틈이 없다. 이곳저곳 결과를 알리고 부리나케 교무실에 들어가 수업 준비를 한다. 이번 주는 맡고 있는 학생자치동아리의 리더십 캠프가 있어 기안하고 준비할 게 많다. 아이들 수행평가 안내와 코로나 관련 출결 변동이 있는 아이들은 수시로 확인하고 안내하고 보고도 해야 한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부랴부랴 조퇴를 하고 집에 돌아왔다. 예상은 했지만 집은 초토화. 뭘 해 먹었는지 냉장고 음식들은 다 나와있고 설거지는 산처럼 쌓여있다. 아침에 막내 먹이라고 둔 약과 도시락은 그대로. 3가지 미션 중에 줌 수업 참가 도움만 제대로 한 것. 금쪽이 선생님이라면 아이가 한 한 가지라도 칭찬해주라고 하시겠지만. 아침부터 종종거린 터라 단전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오른다.


대체 뭘 한 거야? 집안 꼴은 왜 이모양이고... 쏼라쏼라 잔소리 잔소리


게임에 진심인 둘째에게 많은 걸 바랄 건 아니지만. 엉망진창이 된 집을 보니 이성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리고. 막내 챙겨준다며 저녁 준비하던 첫째 딸은 엄마의 잔소리 폭격에 기분이 상해서 툴툴댄다. 동생 밥 챙겨주는데 칭찬은 커녕 욕만 듣고 있으니 억울할 만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 저녁은 안 준다고 한건 좀 심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유치한 생각에 서운함까지 보태 나의 상태가 더욱 안 좋아진다. 아무튼 폭풍과 같은 하루가 지나고 화요일. 오늘은 교환 수업까지 있으니 하루 일정이 빡빡하다. 3교시가 지나고 4교시 머리가 띵하다. 수업이 많아서 그런가. 5교시가 지나 6교시쯤 되자 아. 진짜 상태가 안 좋다 느껴진다. 대충 일을 마치고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가서 항원검사를 한다.


코로나 검사 양성, 확진입니다.

아. 왔구나. 내게도 결국...


초2 막내의 확진 소식보다 내 확진 소식에 덤덤한 것은 그나마 내가 막내랑 같이 편히 지낼 수 있어서 일까. 내가 아픈 건 둘째치고 아픈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편히 할 수 있다는 면죄부라도 얻은 기분은 뭐지. 일주일간 내 수업은 보강과 교환으로 초토화되고 학교로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몇 배로 쌓여 있을 텐데, 많은 사람에게 불편을 주게 되어 미안마음이 드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그래도 엄마인 내가 확진이 되어서라도 아픈 아이 곁에 있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건 어디서 온 안도감일까. 엄마의 마음은 심란한데, 막내는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떡볶이를 먹는데 기분이 좋아 싱글벙글이다.


엄마, 이렇게 우리 단둘이 먹으니까
여행온 것 같고 너무 좋다.그치?


 난 그만 이 작은 아이를 와락 안아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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