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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Apr 10. 2022

어느 날, 엄마가 사라졌다.

나 탐구생활

 작년 이맘때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한 4월. 난 갑자기 사춘기 아들의 별 것 아닌 반항에 울컥 화가 치밀어  그 길로 바로 제주행 비행기를 타버렸다. 아무 계획도 없이 혼자서...  그래도 행선지는 있었다. 이중섭 미술관과 이왈종 미술관. 작년 한 해는 국내 미술관을 두루 둘러보기로 마음먹은 터라 내 머릿속에는 위시리스트가 항상 준비되어있었다. 주저함 없이 공항 가는 버스를 타고 버스안에서 비행기표도 사고 숙소도 예약했다. '엄마 잠시 휴가 다녀올게.' 카톡 한 줄만을 남긴 채.


휴직이라 평일 여행은 가능했지만 단 하루밖에 용기 낼 수 없었다. 그래도  시간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것. 서귀포 근처 저렴한 호텔방에 도착해 창문을 여니 제주 바다가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아. 제주다." 보자마자 사진을 찍어 친한 지인에게 보낸다.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섬이 섶섬이라고 제주도가 고향인 그녀가 알려준다. 한동안 창밖을 바라본다. ,  근데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단숨에 미술관을 찾아간다.

제주 바다가 보이는 숙소


 먼저 찾아간 곳은 '이왈종 미술관'. 제주의 풍경을 화려한 빛깔과 아기자기한 나무와 꽃으로 채운 그림들이 나를 반긴다. 경쾌한 빛깔과 섬세한 표현이 제주의 싱그러움을 잘 담아내고 있다.


 미술관 건물은 제주 앞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는데 정원과 옥상도 조각품과 하늘, 바다, 자연이 어우러져 새로운 캔버스가 되멋스러운 풍경을 선사한다. 한층 한층 전시실을 돌며 작품들을 감상한다. 작가 이왈종의 사진이 보인다. 실은 사진보다 왈종의 한 마디가 나의 불편한 마음을 달래준다.

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위로의 한마디

시간도 있고 하루 이틀 훌쩍 떠날 만큼의 돈도 있지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나였다. 엄마 없이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삼각김밥 먹으며 즐거워할 아이들이지만 무슨 욕심으로 밥 챙겨주고 제시간에 학원 챙겨 보내는 것이 엄청 큰 일인 양 쉽게 나설 수는 없었을까. 그들의 끼니를 챙기는 것이 내 한 몸 편히 떠날 만큼의 여유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날들이 더 많았다. 누구도 막진 않았지만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의 여행. 그 억누른 감정의 굴레가 스스로에게 감옥이 되어 호시탐탐 탈출을 시도했었나.  아무튼 불편한 나의 감정에 한 줄 위로가 되어 전해져 온다. '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갈치회 덮밥

혼자 온 여행이지만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기에 밥 한 끼, 커피 한잔이라도 정성을 다해 내 욕구에 충실히 답하며 움직인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갈치 회덮밥. 야채에 초장을 쭉 짜내어 밥을 슥슥 비벼 한입 넣으니 그 어떤 호사도 부럽지 않다.

이른 저녁을 먹고 해변 산책길을 걷는다. 붉은빛과 푸른빛이 오묘한 조합을 선보이는 노을을  감상한다. 이 절묘한 시간에는 뜨끈한 차 한잔의 여유가 필요한 법. 근처 커피숍을 찾아  좋은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루프탑에 자리를 잡는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는 오직 하늘과 바다 그리고 내가 있다. "아. 정말 좋다!"


유동커피

이튿날 아침, 오늘은 이중섭을 만나러 가는 날. 근처 커피숍에서 뜨끈한 차와 크로플로 허기를 달래고 이중섭을 향해 걷는다. 거리는 좁고 추억이 깊은 것 같은 골목길 끝에 이중섭미술관을 만날 수 있었다. 허나 그의 작품의 수는 너무나 적었고 소박한 규모여서 실망하고 말았다. 그의 고단한 삶의 무게에 눌려 남은 작품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일까.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서울 석파정 미술관에 더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중섭 미술관으로 가는 골목

화가 이중섭은 부인 마사코(이만덕)와 아이들을 무척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의 그림에는 새, 게, 복숭아 등 소박한 것들이 많이 등장한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의 애틋한 가족 사랑은 그의 그림 속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는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려 결국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살게 되지만 가족을 향한 애정은 그의 작품 속에 서 언제나 주된 소재였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아빠는 아빠 이기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온전해야 하고 엄마는 엄마로 살기 전에 자신의 이름 석자로 온전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여행은 엄마의 이름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이름을 찾아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 엄마는 사라졌지만 엄마 이전의 자신의 존재 그대로를 찾는 아주 소중한 여행이었다. 지금도 우리 아들은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아. 그때 엄마가 우리 버리고 혼자 놀러 갔잖아."라고 비난인지 서운함인지 모를 말을 한다. 나는 아들이 이해할 것 같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는다. '엄마도 휴가가 필요해. 엄마가 너네를 버린 게 아니라 엄마도 쉬고 잠시 떨어져 있어야 너희를 더 잘 볼 수 있게 돼. 산속에 있으면 산의 형상을 알 수 없듯이 가끔은 조금 떨어져 가족을 봐야 각각의 좋은 점도 고마움도 행복함도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거란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아들에게 들리지도 않을 말들을 주저리주저리 중얼거리고 있다. 


엄마는 사라진 게 아니라
더욱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잠시 멈추고 떨어져
엄마 자신을 볼 시간을 가진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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