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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Aug 06. 2022

유영국, 그 찬란한 단순함에 대하여

국제갤러리 (~2022.08.21)

 화가 유영국을 좋아한다. 그의 그림도 좋지만 그의 삶의 이력도 멋져서 다. 화가라는 선입견에 반하듯 궁색하지 고 사업수안도 좋아서 하는 마다 잭팟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런 그는 그림도 잘 그렸다. 아주 심플한 그림이지만 색이 대담하고 화려하고 세련되기까지 하다. 그의 작품이 지금 국제갤러리에서 전시 중이다. (2022.08.21까지) 그의 작품만 모아진 미술관이 따로 없으므로 그의 전시가 있다면 무조건 가보는 게 이득이다. 게다가 무료다.

다채로운 산의 향연

 추상화를 고집했던 그는 후기 작품에 이르러 산을 그리는데 집중한다. 그에게 있어 산은 변화무쌍함 그 자체다.

산에는 뭐든지 있다. 봉우리의 삼각형, 능선의 곡선, 원근의 면,
그리고 다채로운 색. (유영국)


산은 내 밖에 있는 타자가 아닌,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존재임을 깨닫는 경지. 내가 곧 산이고, 산이 곧 내가 되는 경지.
영국과 세잔은 그야말로 '산 자체'가 되어  산을 그립니다.
(방구석 미술관 2,178쪽)


그는 복잡하고 의뭉스러운 색이 아니라 명료하고 확실한 원색을 쓴다. 색의 조화, 단순한 도형의 겹침만으로 서로 다른 산의 느낌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무수히 많은 시간 동안 관찰하고 고민하고 그리고 지우고 생략하고 또 그리는 과정에서 탄생한 그 무엇이리라. 그의 깊은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초보 감상가의 무모한 느낌을 따라 계절별 산의 그림을 모아서 감상해 본다.

사계절의 산, 같은 산 다른 느낌
겨울산의 느낌

 겨울산이다. 차가운 느낌의 회색과 흰색 낮게 깔린 파란색이 돋보인다. 계절별 느낌을 나타낸 그의 산은 서로 다른 색과 형태로 다른 계절의 느낌을 보여준다.

연초록과 노란색이 봄의 싱그러움과 푸릇한 새싹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화가 유영국도 봄의 산을 생각하며 그렸을까. 창의적으로 산을 표현한 작가의 노고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청명한 하늘과 초록이 한창인 여름 산의 느낌, 울창한 숲의 느낌과 삼각산 뾰쪽한 모양으로 나무를 품은 모습이 딱 녹음이 푸르른 여름이다. 

바다를 품은 산

그림으로 해수욕을 할 수 있는 그림이 있다면 바로 이 그림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사진을 찍고 보니 캔버스 안에 내 실루엣이 비친다. 진정 바다서 수영하는 그림 그 자체다. 시원한 그림들로 미술관에 가서 피서를 즐겼다면 누가 믿을까.

 붉은색 나뭇잎이 산을 다 뒤덮었나? 빨간색, 주황색, 핑크색까지 따뜻한 색깔로  산이 화려하다. 극도로 생략하였지만 중요한 하나는 살려낸 그림이라 정확히 가을산의 느낌은 그대로다.

그림도 사업도 예술적으로 요리해낸 화가
돈은 살아가는데 수단이 되어야지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유영국)


가정을 지키는 가장으로 필요한 경제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애쓰고 책임감 있게 사업을 이끌고 성공시켰던 그. 하지만 그런 성공에 압도되어 예술이라는 작업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그의 태도는 예사롭지 않다. 삶의 문제를 쥐락펴락하며 마음대로 요리하는 그의 능력이 완벽해 보이기까지 한다. 고향 울진에서 양조업을 성공시킨 후, 사업 전반을 직원에게 맡기고 그는 다시 그림에 몰두한다. "돈이 없어도 그림을 못 그리지만 돈이 너무 많아도 그림을 못 그린다."는 그의 신념에 따라 과감하게 인생을 운영한다. 시대나 상황에 끌려가지 않고 주도면밀하게 삶을 통제하고 상황을 이용하면서도 좋아하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대담함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마지막까지 꺼지지 않았던 순수한 열정

일본 침략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녹록지 않은 인생을 살았던 그. 2002년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어. 세상에 태어나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간섭받지 않으면서,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면서, 평생 자유로운 예술을 할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한국의 추상화가 자리잡기 전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화풍과 한국스러운 추상화를 이어나갔던 그는 결국  한국 미술계에 큰 획을 긋고 사라졌다. 그러면서도 그림을 그리는 화가 본연의 작업을 소홀하지 않았다. 그의 순수한 열정과 부단한 노력은 그만의 조형언어로 새롭게 태어나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흔들리는 시대의 바람 속에서도 거센 삶 속에서 응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 속에서도 고집스럽게 자신이 좋아했던 그것을 기억하고 적절한 시점에 잠자던 욕구를 끄집어 내 행복한 삶을 살았던 그. 행복함은 실로 없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했던 그것을 찾고 만들어내는 그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용기는 복잡하지않고 심플하게 그의 작품이 말하듯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늘 묻고 그것을 따르는 과정 속에서 생겨나지 않았을까. 내 안의 욕구를 따르는 단순한 여정은 욕심내지 않고 꼭 필요한 것만 그리는 그의 작품속에서도 충분히 드러난다.


문득 내 안의 욕구와 즐거움에 따라 사는 것은 안된다고 단속하고 가둬두었던 어리숙함에 미안한 마음이 든. 푸르른 산을 배경으로 흐릿한 하얀빛으로 묵묵히 서있는 한 그루의 나무가 슬그머니 나에게 말을 건다.

 그래, 가끔은 네가 하고 싶은 걸
따라가 해보렴. 그래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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