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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월령 Sep 13. 2023

서른 살, 돈 못 버는 작곡가


돈 잘 버는 작곡가는 없다

#3 서른 살, 돈 못 버는 작곡가


< 자신만의 음악을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누군가는 알아줄 거라 생각했다.
내 수준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



        피아노와 함께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서른 살이 되었다. 크게 노력한 것 없이 얼떨결에 서른이 되어버렸다고 하는 게 맞겠다.


스무 살 때 상상하기로 10년 뒤면 이루마 님처럼 엄청 유명하고, 돈 잘 버는 작곡가가 되어있을 줄 알았다. 사실 이루마 님이 돈을 잘 버는지 못 버는진 내가 알 수 없는 거지만 "그분 정도면 엄청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쉽게 될 줄만 알았다. 막연한 목표를 좇았고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엔 부모님과 선생님의 조언을 무시해 버렸다. 취업을 포기하고 음악을 선택했다.


   돈 못 버는 작곡가, 한 3년 전만 해도 이 처참한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를 인정하기가 참 어려웠다. 2017년에 데뷔해 지금까지 앨범도 꾸준히 내고 활동도 비교적 열심히 하는데 왜 10만 원 벌기가 이리도 어려운 건지... 유명한 사람들을 보면 "분명 나랑 별 차이도 없는 것 같은데"라 생각하며 저들은 이유 없이 잘 나가는 것 같아 괜한 질투심을 느꼈다.


   최근 부업으로 간단한 배경 음악을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다. 죽어도 안 할 것만 같던 일인데 정작 내가 하고 있다는 게 가끔 신기하기도 하다.


다 돈 벌려고 하는 짓이다.


이전의 나는 이런 작업을 하는 일이 부끄럽다고 느꼈었다. 작곡가의 자존심이랄까? 내 감정과 영혼을 담지 않은 작품은 수준 떨어지는, 작품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공장식 음악이라 취급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한 마디 할 수 있다면 배경 음악 작업은 최대한 빨리 시작하라고 설득할 것 같다. (설득이 안되면 쥐어 패서라도 시킬 것이다.)


배경음악은 하루에 많으면 세 곡 정도 작업한다. 하다 보니 이것도 숙달이 되더라. 작업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요새 한 곡을 녹음부터 마무리하는데 보통 1시간 정도면 끝난다. 현재는 이 부업이 '청월령'보다도 훨씬 많은 수익을 내고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시작의 방향성이, 첫 단추가 잘못됐다고 느낀다. 자신만의 음악을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누군가는 알아줄 거라 생각했다. 내 수준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솔직히 이는 시작 단계에 있는 대부분의 음악인들 혹은 예술인들도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피아노를 배우지 않은, 독학으로 작곡하는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앞에 내세웠다. 마치 다섯 살 먹은 어린아이한테나 어울릴만한 그 어쭙잖은 수식은 프로의 세계에선 통하지 않았다. 배움의 기회가 있었건, 있지 않았건. 출발선이 다르더라도 프로의 세계에 나서면 모두 같은 프로였다. 작품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작곡 활동 초기 네이버 블로그나 카페, 유튜브에 취미로 올릴 때까지만 해도 내가 내세운 이 타이틀은 타인과의 차별점이자 눈에 띄는 장점이었다. 그땐 뉴에이지 자작곡 만드는 사람도 얼마 없었기도 했다. 그러나 앨범을 내고, 음악 시장에 직접 부딪혀야 하는 시점에 와선 단지 '기본이 없는, 부족한 작곡가'가 되어버렸던 것 같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으니까.


그렇다. 냉혹한 현실의 앞에선 배우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노력하지 않은, 부족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 후로 노력은 않고 질투만 하던 나를 고쳐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낀다. 청월령에만 매달리지 않고 배경음악도 만들고 책을 쓰는 등 이것저것 시도해 보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가는 중이다. 내가 질투하던 그들과의 괴리를 따라잡을 순 없어도 결국 지금처럼 나만의 방법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사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지 못한 건 부족했던 가정환경 때문이다. 집이 정말 어려울 때엔 라면 하나에 물 많이 넣어 끓여 셋이서 나눠 먹었다던 이야기를 엄마한테 들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저 학년 때는 반에서 키가 거의 제일 작았고 지금과 달리 몸도 비쩍 말랐었다. 그러니 피아노든 뭐든 학원은 꿈에도 못 꾸는 상황이 나에겐 당연하지 않았을까.


지금의 나는 누구 하나 원망하지 않는다. 부모님이 가난한 건 나의 잘못이 아니었고, 엄마 아빠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원망한다 해서 과거가 변하진 않는다. (그래도 비교적 크지 않은 키는 조금 아쉽긴 하다.)


오히려 피아노를 배우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긴다. 작년까지 피아노 입문자를 대상으로 작곡 레슨을 했었는데 거기서 어린 시절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운 사람들의 공통적인 모습 중 하나를 발견했다. 대부분 수 십 년이 지나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틀리면 혼나거나 맞았던 기억을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업 중 내가 "틀려도 된다, 마음 가는 대로 혹은 대충 눌러도 된다"라고 얘기를 해봐도 이전의 기억 때문에 틀리는 걸 두려워하고, 잘해야 된다 생각하며 흥미도 많이 떨어져 있는 듯했다. 작곡에선 자유로움이 가장 중요한데 참 아쉬울 따름이다.


나라도 어린 시절 그런 식으로, 강제로 배웠다면 그게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라 할지라도 조금 싫어지지 않았을까?


나는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틀리는 걸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하고 싶을 때 즐겁게 연주하며 새로운 것들을 배워갈 수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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