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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월령 Sep 12. 2023

시작


돈 잘 버는 작곡가는 없다

#2 시작


< 아니 베토벤도 처음엔 바로 못 쳤을 텐데? >



        음악을 시작한 건 아주 사소한 계기였다. 고등학생 시절 체육 시간이었던가. 친한 친구가 학교 강당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걸 보았다.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라 겉으로 티를 많이 내진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연주할 수 있다는 게 참 부럽기도 하고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다.


   나는 보통의 아이들의 취향과 달리 연주 음악, 게임 음악을 좋아했다. 그렇기 때문에 피아노에 더 쉽게 빠져들지 않았을까? 편협한 생각일 수 있지만 보통의 십 대 취향이라면 발라드 같은 가요, 아이돌 음악, 힙합 등을 많이 듣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 마니악한 것들만 골라 들었던 건 아니다. 게임 테일즈위버의 배경음악이나 일본의 유명 작곡가 DJ Okawari 등.. 당시 쉽게 접할 수 있는 연주음악들을 많이 들었다. 또 리듬 게임을 엄청 좋아하기도 했다. 한 리듬 게임에서 <무반주 첼로곡>이라는 음악이 마음에 들어 종일 플레이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어디서 별로 꺼낸 적 없는 이야기인데 실제로 피아노를 사기 전엔 컴퓨터 키보드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게 해주는 <키피>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음악을 시작했다. 부모님께 바로 피아노를 사 달라고 말할 형편도 안되고 사더라도 바로 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키피를 이용해 양손을 따로 움직이는 방법을 어렴풋이 배웠고 손의 움직임에 따라 어떻게 음악이 연주되는지를 조금씩 익혀나갔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전자 피아노를 항상 눈여겨봐두고 있었다. 허름한 연립에서 어쿠스틱 피아노를 어설프게 연주했다가는 층 간 소음으로 싸움이 날 게 불 보듯 뻔하니까.


컴퓨터 키보드로 1년 정도의 연습을 마치고 이젠 진짜 피아노를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아빠와 함께 음악인들의 성지 낙원상가에 가기로 했다. 며칠간 인터넷에서 열심히 검색해 골라둔 모델이 있었는데 직접 가서 만져보니 카시오라는 브랜드의 피아노가 누르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카시오라 하면 지금은 시계나 전자 제품으로 유명한 브랜드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뭐 하는 회사인지 전혀 몰랐다. 피아노가 있으니까 악기 브랜드라고 생각했겠지. 조금만 더 찾아봤다면 그래도 악기로 유명한 브랜드를 골랐을 텐데 말이다. 여하튼 내가 고른 카시오 전자 피아노의 가격은 100만 원이 넘어 원래 계획보다 많이 비쌌다. 결국 금액의 절반은 아빠가, 나머지 반은 내가 부담해 사버렸다.


그렇게 종로 낙원상가에서 본가 경기도 안성까지, 기대에 가득 차 피아노를 차에 싣고 돌아오는데 제법 가까운 그 거리가 참 게만 느껴졌다.



   피아노를 샀지만 막상 바로 연주를 하진 못했다. 자신 있게 사놓고 바로 못 친다고 부모님의 구박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니 베토벤도 처음엔 바로 못 쳤을 텐데?


당연한 결과였다. 그 흔한 피아노 학원 한 번 다녀보지 못한 데다가 학교에서도 제대로 배운 것이 없었기 때문에. 보통 그 정도는 학원에서 배워오니 제대로 안 알려준 건지 내가 안 들은 건진 잘 모르겠지만 처음엔 건반에서 도가 어디인지도 잘 몰랐다. 계이름을 모르는데 악보를 읽을 수 있을 리도 없었다.


낯설지만 내 것이 되어버린 피아노는 내가 누르는 대로 좋은 소리가 나기도, 이상한 소리가 나기도 했다. 그렇게 점점 빠져들어 깨어있는 시간 내내 혼자서 생각하고 연습했다.


첫 연습 곡은 이루마의 그 유명한 <River flow in you>였다. 아까 설명한 키피로 끝까지 연주할 수 있게 된 첫 곡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조금은 자신 있었다. 처음 마주한 악기를 영화에 나오는 천재들처럼 현란하게 연주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유튜브로 연주 영상을 켜놓고 손가락 위치를 보고,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더듬더듬 따라 쳤던 것 같다. 솔직히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지만 내가 좋아하는 곡을 내 손으로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즐거웠다. 비록 잘 치진 못했어도.


   학교 수업 시간에도 손가락 연습을 한다며 손을 꼼지락거리다 선생님 눈에 띄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피아노 생각만 하면서 살았으니 그래도 꽤 좋아하는 일본어 수업이었는데도 제대로 안 듣고 그랬던 것 같다. 뭐 하고 있는 거냐고 질문하셔서 솔직히 혼나는 줄 알았다. 피아노 연습이라 했더니 선생님께서 뜬금없이 "학교 축제에 나가보지 않을래?"라고 제안하셨다.


축제까지 약 3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얼떨결에 하겠다고 해버렸다.


피아노를 연습 한지 두 달, 많은 전교생 앞에서 그리고 자신이 부러워했던 그때 그 친구의 자리에서 서툰 연주를 하고 내려온 나는 처음으로 음악의 꿈을 꾸게 되었다.


그 친구에겐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아직도 작곡가라는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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