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기를 포기한다는 것
더 많은 사랑을 품에 안기 위하여.
누군가 써 내려가는 긴요한 마음의, 첫 번째 애독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결심을 단번에 빼앗기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찬란하고도 아낌없는 삶의 흔적을, 살아있는 동안 기억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의 글이라면, 손으로 적어내는 문장이나 문단으로만 묶어두기에는 아쉽다. 그것은 만물이 가진 피워냄의 확장일지 모른다. 어떤 손짓이나 몸짓이 담긴 일부를 넘어, 사욕 혹은 사념 없는 일상과 조우하기를 꿈꾸는 것. 그의 삶에 들어선 뒤, 주변에서 중심으로 서서히 다가가는 일. 시리도록 아름답기에, 이를 담아낼 마땅한 용기가 필요한 일들이다.
나는 요즘, 책과 친해지기 위해 남몰래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다. 가족들이 의문을 가지면, 공부를 한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 시간이 더 어렵기만 하다. 좋아하는 일을 놀듯이 해야 뒤따르는 결과가 행복할 것이라 말해도, 나는 그럴 수 없는 경직된 사람이다. 그 안에서 나에게 필요한 자양분을 반드시 습득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소담한 글씨 한 톨이라도, 교훈 한 소절이라도 더 얻기 위하여. 공부하듯 책을 읽는다.
나는 화분을 키울 때, 깊은 연모에 빠져 종일 그 애를 업고 뒹굴고 한 치도 떨어지지 못하다가, 결국 홀로 나자빠지는 사람이다. 간절하게 바라는 것을 눈앞에 마주하면, 힘을 뺄 수 없어 후회를 남기는 사람이다. 힘을 빼기는커녕 오히려 정강이가 덜덜 떨리고, 꾹 쥐어든 손톱이 손의 마디마디를 괴롭힌다는 사실도 모를 정도로 긴장하는 사람이다. 그러다가 한순간 허무하게 툭 부러져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이다. 이것은 비단 책이 주어일 때만 성립하는 나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토록 마음 근육이 쇠약한 사람에게, 커다란 서사를 안고 있는 책들이 다가오니, 나는 또 감당해내지 못하고 언젠간 그것들을 와르르 놓아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장르를 불문하고 관심 있는 분야든 그게 아니든, 책은 일정한 간격으로 나에게 곤혹이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그렇다면, 그건 책이 어려운 걸까, 감히 그를 이해하려 했던 내 마음이 어려운 걸까. 어떤 감정인지 잘 모르겠지만, 첫 장부터 흥미를 느끼는 책을 만날 때면, 너무 좋아서 더 곱씹어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첫 장부터 나와 결이 반대인 책을 만날 때면, 어떻게든 이해하고 넘기기 위해 또다시 곱씹어 읽고 싶어졌다. 이러니, 책 한 권도 부드럽게 읽을 수 없는 내가, 독서라는 취미를 새로 들였다 말하는 것은 여간 창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예전에 다니던 헬스장에서 일일 체험으로 필라테스 수업을 받은 적 있다. 잘은 모르지만 코어 힘을 기르게 해 주고, 몸의 밸런스를 맞춰준다나 뭐라나. 휘황찬란한 지식인들의 속삭임에 넘어간 나는 호기롭게 그곳에 발을 들였다. 시작하고 5분은 지났을까. 도저히 내가 견딜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마음이 덜컥 들었다.
하나의 자세를 취한 채로 일정한 시간을 버텨야 하는데, 그 순간마다 온몸이 배배 꼬이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무언가 내 목을 조르는 듯한 갑갑함에, 결국 나는 도망치듯 강습실을 빠져나왔다. 사람은 살던 대로 살아야 탈이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호박이 왜 수박처럼 살려고 했단 말인가.
그런데, 책을 읽을 때도 나는 이러한 감정을 느낀다. 어서 지금의 문장을 마무리 짓고, 다음 문장을 눈에 담으려는데, 종이는 넘어가지 않고, 시간만 자꾸 넘어간다. 하나의 문장을 훑어내고 마른 헝겊으로 잘 닦아서, 따사로운 바깥 빛에 바싹 말려내고 싶은데, 훑어내는 것에서부터 막혀버렸다. 굴뚝같은 마음에선 초조함이란 감정이 정체를 숨기지 못하고 매캐한 연기를 뿜어댔다.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나고, 숨이 평소처럼 잘 쉬어지지 않았다.
나는 소중한 것과 함께일 때 종종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리곤 했다.
바보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에 깊이 몰두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은연중에 숨을 참고 있는 순간들이 있었다. 아마 이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도 나는 숨을 참고 있을지 몰랐다. 죽어있는 채로 살아있는 것. 그런 몸짓으로는 어떤 상념들을 돌이킬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러다 한번 숨 쉬는 간격을 의식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할 일이 늘어나 버렸다. 내가 사랑하는 것에 집중하기도 모자란 시간에, 나는 숨 쉬는 훈련까지 이어가야 했다. 여간 방해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것들은 황홀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숨조차 멎게 만들 만큼. 그렇기에, 매번 생사를 책임지는 숨쉬기의 간극을 유지하지 못하면서도 내가 그것들을 지속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혹여나 지독한 인연으로 이어져 나를 마비시킨다 해도. 미흡하고 부족한 숨으로 구성된 내 영혼이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더 자주 더 많이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무언가를 읽는 것은 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어쩌면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해도 완전히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기에 더 그리운 마음이 드는 건 아닐까. 보고 있을 땐 밉지만, 떨어져 있을 땐 또다시 안고 싶어지는 얄궂은 변덕. 모든 것을 금방 손에 쥘 수 있다면, 부러움이라는 영롱한 불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와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이토록 동경하지는 않을 것이다.
때때로 만나는 광활한 세계에서 발가벗겨진 내 모습을 깨닫노라면, 나는 그 구절들을 햇살이 잘 드는 네모난 창틀에 가두어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폭신한 담요를 덮어주고 싶다. 하루에 세 번씩 들여다보며 관심의 눈빛을 보내고 싶다. 그러나, 모자란 내 기억력으로는 한 문장도 제대로 톺아보며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모르는 청량한 설렘을 싣고 있는 책들은, 요즘의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 준다. 언젠가는 숨 쉬는 법을 잊지 않고, 자연스럽게 종이를 매만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고귀한 마음을 담아 적어낸 비단 같은 한 편을, 내 인생처럼 아껴주고 싶다. 그래야만 비로소 더욱 순결한, 사랑다운 사랑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