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힘

알맹이는 가고, 껍데기만 남았다.

by 블루나잇

와신상담. 섶에 누워 쓸개를 맛본다. 원수를 갚거나 마음먹은 일을 이루려고 오랫동안 괴롭고 어려움을 참고 견딘다는 뜻으로, 익히 알려져 크게 생경하지 않은 사자성어다.


그런데, 한때 ‘와신상담’은 내 인생을 뒤틀었던 옹졸하고 처절한 나만의 복수법이었다.

남녀노소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 있다.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아 보이고, 온화한 성품이 특징이며 볼 때마다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의 속내가 겉모습과 일치할지 모르겠으나, 대체로 원만한 사회생활을 이룰 수 있는 유형에 해당하곤 한다. 나 또한 겉으로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었다. ‘겉으로’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다 괜찮고 행복해 보이는 겉면과는 반대로, 종종 악마 같은 내면이 꿈틀대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좋은 게 좋은 거지 웃고 넘기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일에 수차례 좌절을 거듭하다 보니 사람이 참 무서워지더라. 누군가에겐 나도 그런 사람으로 비칠 것을 알기에, 타인에게 생채기를 남길 바에야 차라리 내가 손해를 보자는 신념으로 인생을 살아왔다. 삶이 굴곡져 어느덧 난파선이 되어버린 가엾은 내 모습에 처연함이 더해지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결국,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품고 있던 ‘좋은 마음’들이 ‘악’이라는 아프고 뜨거운 것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언제 갚게 될지 모를 복수의 칼을 품고서, 사람에게 잘해주는 행위 속에 영악한 계산을 섞게 되었다. 훗날 내가 후회하지 않도록, 나를 무시하는 사람에게도 낯짝하나 바꾸지 않고 내내 좋은 사람이 되어줬다. 그리고 관계가 가까워졌을 무렵이면, 나는 은연중에 갑의 자리에 서있었다. 모든 마음을 주고 나니, 관계가 끊어진다고 해도 큰 아쉬움이 없었다. 그러나 갑작스레 폭풍 같은 통보를 입은 상대는, 몸속 회로 하나가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고 거짓의 마음을 건넨 건 아니었다. 최대한 진실다운 마음을 쏟아부어야만, 뒤끝이 남지 않았다. 나만의 방식으로 누구에게나 최선을 다했고, 더 이상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냉정하게 떠났다. 잔인한 방식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떠나는 이가 받은 상처 또한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에. 많은 마음을 건네 본 사람은 알 수 있다. 누군가 최종적인 무언의 결계를 넘게 되었을 때, 그 관계는 더 이상 이어갈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나는 ‘와신상담 복수법’을 직장에서 유용하게 활용했다. 의도했다기보다 마음 가는 대로 하던 행동에서 무심코 알게 된 방법이었다. 처음엔 내가 원해서, 열정으로 두 배 세 배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다 보면 베일에 감춰졌던 회사의 성격이 드러났다. 필요한 인재라는 생각에 가족처럼 잘 챙겨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 내 노력을 쉽게 평가하고 더 박하게 대우하는 곳도 있었다. 후자의 경우라고 해도 나는 최선을 다해 일을 했다. 대신 그 순수한 마음은 나 자신과 약속한 기간까지만, 딱 그때까지만 사용했다.


그리고 내가 정한 데드라인이 되면, 정중하게 퇴사 소식을 알렸다. 그들은 백이면 백, 당신 같은 직원이 회사를 나가서 아쉽다며 붙잡았다.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끝까지 여유로운 미소를 유지하는 게 포인트였다. 이렇듯 잘 그만두고 나면 높은 확률로, 퇴사 이후에도 나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가 남겨졌다. 이게 어떻게 복수가 되는 거냐 묻는다면, 재난 같은 퇴사 통보에 이어 ‘나’라는 성실한 사람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그 회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어린 날의 내 오만일 뿐이었다. 작은 복수심에 불타 내가 이긴 거라고 착각하며 적정 기간을 일하고 퇴사해 버리는 방식은, 나도 모르는 새에 내 삶을 좀먹고 있었다. 남을 위한 행동이었기에, 내가 행복할 수 없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하여 남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상대는 알지도 못할 미움이라는 감정 때문에, 아파하게 될 사람은 정작 나 자신임을 잊지 말라는 뜻일 거다. 그러나 그땐, 내 상처가 너무 커서 추악한 대못을 어떻게든 되갚아주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나 보다.


어딘가 모를 공허함으로 크게 앓았던 나는, 이 복수법을 자기 계발법으로 바꿔 활용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상처 입히는 목적이 아닌 나를 성장시키는 모습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작 단계에서는 먼저 내 마음부터 활짝 열어놓아야 했다. 세상엔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다는 생각을 마음에 새기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마음가짐을 그 위에 덧씌웠다.


나는 오로지 나를 위해, 내 일만 했다. 때때로 싫은 것은 싫다고 적당히 표현할 줄도 알아야 했다. 어려웠지만 연습해 나갔다. 그저 수긍만 한다면 내 안에 있는 검은 먹구름들이 또다시 터져버릴 것이기에. 내 진중한 태도에도 누군가와 잦은 트러블이 생긴다면 내가 복수를 품지 않아도 어차피 끝나게 될 인연이었다.

힘들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 당장 고통을 주며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본다면 훗날의 나를 더 탄탄하게 만들어줄 담금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라고. 물론 정신적인 아픔을 남길 정도로 나에게 해를 입히는 사람에게선 빠른 이별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견뎌보자는 생각이 든다면 그 일은 내가 뛰어넘을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신은 인간에게 이겨낼 수 없는 고통을 쥐어주지 않는다고 했다. 나에게 나쁘고 힘든 일이 자꾸만 주어진다면, 나 자신이 그 일들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비로소 이를 잘 버텨냈을 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눈부신 ‘전화위복’을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 나에게 건네는 질타나 쓴소리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간혹 납득할 수 없는 일도 있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의 정신을 기름지게 해 줄 거름들도 분명 있었다. 화살 같은 날카로운 말들을 모두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거르고 걸러 나를 크고 견고하게 만드는 데 활용하면 되었다. 이때,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게 중요했다. 덧붙여, 내 주관을 흩트리는 두려운 자격지심이나 열등감에 욱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깨달음을 겪은 뒤부터, 부정보다는 긍정으로 타인의 말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로 인해 가장 편해진 사람은 단연 나 자신이다. 물론 아직도 누군가의 말에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하며, 속이 쓰리기도 하지만, 전처럼 복수에 불타는 감정은 가라앉힐 수 있게 되었다. 남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행동하면, 좋은 행동들도 착한 마음들도, 간혹 원망 섞인 회의감이 되어 돌아온다. 그러나 시선을 나에게로 돌려놓으면 마음에 잇따른 평화를 부를 수 있다.


무언가 답답하고 견딜 수 없을 땐, 이렇게 생각해 보자.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나를 위한 ‘와신상담’은 내 성장이 움트는 시간들을 섬세하게 기록해 줄 것이다.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나는 뭐든 해낼 수 있는 강인하고 단단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이전 01화숨 쉬기를 포기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