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정한 소풍으로부터

다시 돌아오기 위한 연습.

by 블루나잇

별안간 시커먼 지구 외피 밖으로 내쫓김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누구나 각기 다른 모양으로 싹을 뿌리고 수확을 기대하며 풍작과 흉작을 넘나들듯 생을 일구어 갈 때에. 속내를 뒤흔들 정도로 사랑하던 것들로부터 아무런 이유 없이 멀어져 버린 시간이 있었다. 명백한 근원이나 사유를 모르기 때문에 없다고 믿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유수를 빼다 박은 청청한 하루들이 제 갈길 찾은 뒤에야 돌이켜 보니, 본인마저 이해할 수 없을 고단한 날들이 삶의 기저에 잔잔히 깔려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우발의 기억이 있다. 당시 특징적인 내 자아를 한 가지 꼽자면 외지인이었다. 이곳저곳 발자국을 찍어 놓고도 쉽사리 마음을 내어놓지 못한 채 홀홀스럽게 유영하는 떠돌이 신분 같았다. 집에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휴일이라도 맞을 참이면 언제나 방안에 콕 박혀있던 아집을 젖혀 두고, 한동안 나의 귀한 안식처를 수학의 정석에나 나올법한 입체 도형으로만 바라보던 적이 있었다. 물끄러미 소가 닭 쳐다보듯 했다. 물론 그에 대한 악의는 전혀 없었지만, 무심코의 어원이 새겼을 무언의 상처에 대해 의문점을 해소해 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어디서 기어 나왔는지 모를 순전한 경계심 때문에, 나는 심지어 잠조차 거실에서 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도 강요와 눈치를 던지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외부인이 되길 자처했다. 그야말로 마음 둘 곳을 잃었다는 표현이 적나라하게 들어맞을 것 같은 생활 패턴이었다. 그때 나에게 집이라는 건물은 수면을 위한 숙박업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헛헛함에 몸 전체가 붕 떠올라서 잡을 수 없을 만치 오랜 세월을 공중에 매여있는 느낌이었다. 심장과 다른 부류의 장기들이 멀어진 사잇길로 휑한 가시 바람이 드나드는 것을 은연중에 깨닫기도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꽤 긴 계절의 순환을 지켜봐 온 지금의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마득한 그림체를 접어두고 집이라는 울타리의 단란함 속에서 피어나는 살구빛깔 소음을 찬양한다. 더는 가족의 온기 없이 살지 못한다. 내 안에 머무르던 소회를 어느 외딴 저수지에 풀어두고 떠나왔는지 모르겠다만, 찰나의 역마를 몰아내어 평온한 기둥 아래 머리를 뉘인 채 쉴 수 있게 되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때때로 순간의 화에 일그러져 후회할 행위를 저지르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치처럼 느껴졌다.


지나고 나면 전부 돌이킬 수 없어지게 되는데. 그럼에도 그때는 그 순간이 가장 중요하니까, 저도 모르게 이성을 잃게 된다. 내면에 숨어있던 포악한 괴물을 최대치로 부화시켜 끄집어낸다. 그리하여 어느덧, 사람이라는 신분을 망각하게 된다. 우주와도 같은 세월의 끈질긴 매듭들이, 오직 단일 순간만 살아남을 생존이 아니라는 긴요한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현재를 즐기는 것과는 또 다른 체계의 성장 프로세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를 고스란히 즐기는 만큼, 막연히 아닌 것은 포기할 줄도 알아야 된다는 인생계 등가교환 수식이라고 해야 할까. 그 아래엔 아마도 이런 세부 목록을 채워 넣고 싶어질 것 같다. 선명하게 구분 지을 것. 착각하지 않을 것.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것.


살면서 회한 하나쯤 가슴에 품지 않을 이 없겠지만, 확신 없는 의지를 계행하려거든 용서받을 수 있을 만큼만 멀어져야 한다.


그 이상의 실수는 실수로 인정 돼서도, 그대로 잊혀서도 안 되니까. 집을 훌쩍 떠나간 뒤엔, 되돌아오겠단 기한이 있어야 여행인 것처럼. 성급함에서 돋아나는 무서운 아둔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 풀에 잔뜩 휘둘려 홧김에 지도를 찢어버리는 것도, 야밤에 꼭 필요한 손전등을 깨부수는 것도, 일생을 함께해 온 반려 사람들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우행을 벌여서도 안 될 일이다.


더 멀찌감치 두드리려는 나를 잡아주던 희미하고도 선명한 손길이 있었기에, 어쩌면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도시의 이기적인 방랑자가 되어 행방불명의 길을 되풀이할지 모르겠지만. 지나온 궤적의 자화상을 얻음으로써, 도돌이표 같은 여행이 터무니없이 길거나 어리석지 않을 것이라 되뇌어본다. 귀를 닫고 그린 막무가내의 습작들이 작품으로 손꼽힐 수 없는 것처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배회를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경험이고 여행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부디 따스한 봄볕의 소풍으로 낙인 되기를. 단 하나의 귀퉁이라도 진정으로 살고 싶어 지기를. 상심이 짙고 깊어 만물의 손을 놓고 싶을지언정 아주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만 흩날리길 바랄 뿐이다. 삶의 모든 방양과 지회는 결국 살아내기 위한 방증이므로. 열렬히 온 맘 다해 잘 살아 보고 싶다는 순결한 포효의 분신일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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